[단독] ‘회사망서 검색’ 신당역 살인사건 서울교통공사 책임은?…1심 “책임없어” VS 유족 “항소”

추재훈,배지현 2024. 9. 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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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튿날인 2022년 9월 15일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 (사진 제공: 연합뉴스)


2년 전 오늘, 2022년 9월 14일 밤 서울지하철 신당역.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서울교통공사 여성 직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의 흉기에 찔렸습니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입니다.

전주환은 피해자를 스토킹하던 범죄자였습니다. 피해자가 자신을 고소해 재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자 협박 메시지를 보내며 합의를 종용하다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살인범은 처벌을 받고 사회에서 격리됐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안전해졌을까요?

■ '직위 해제' 상태로 내부망 접속, 피해자 신상 파악…서울교통공사 측 책임은?

피해자와 같은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하던 살인범 전주환은 범행 당시 직위가 해제된 상태였습니다. 범행 2년 전부터 스토킹을 시작했고 고소를 당해, 그 사실이 공사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직위가 해제된 상태에서도 직원의 권한을 이용해 피해자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살인범은 6호선 증산역에서 일하는 척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과거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곳에서 피해자를 만나지 못하자 다시 6호선 구산역을 찾아 피해자의 근무 장소를 파악했고, 스토킹 범죄 관련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서울교통공사를 조사했습니다. 위원회는 공사가 직위 해제된 직원의 접근권한을 지체 없이 말소하지 않고, 다른 직원의 주소지를 검색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고 봤습니다. 과태료 360만 원을 처분하면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개인정보보호 강화 대책을 수립·이행토록 하는 개선 권고도 내렸습니다.

유족 측은 이처럼 공사가 개인정보보호·안전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니, 살인범과 함께 10억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 판단은 어땠을까? 지난 8월, 1심(서울중앙지법 제34민사부)에서 원고(유족 측)는 패소했습니다.

재판 당시 공사 측은 "살인은 극도로 이례적이라 이를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걸까요?

■ 1심 판결문 단독 입수…재판부, "개인정보 유출됐지만, 살인 예측할 수는 없었다"

KBS는 1심 판결문을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이 판결문을 보면, 법원 또한 '살인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며 '공사가 질 책임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34민사부(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사가 살인범의) 내부망 접속 권한을 말소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살인범이 피해자의) 근무지를 확인해 사건 범행에 이를 것까지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정보 유출로 통상 예상할 수 있는 건 정신적·금전적 피해지, 살인 사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살인범의) 범행 결단이나 그 실행행위에 피고(공사)가 직접 관여하거나 개입한 바는 없고, 개인정보보호의무 위반행위가 범행에 관한 공동불법행위 내지 방조행위로서 피해자 및 원고들에게 발생한 손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부연했습니다.

'2인 1조 근무제'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법원은 "(공사가) 그러한 조치를 통하여 이 사건 범행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 살인범이 직위 해제된 건 스토킹 관련 고소 때문이었는데, 그 고소 관련 피해자가 신당역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었는지를 공사가 알 수 없었다며 "특별한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다거나, 이 사건 범행이 피해자의 직장 내에서 발생할 것을 예측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도 부연했습니다.

2022년 9월 18일, 신당역 추모 공간 입구에 붙은 메모지(사진 제공: 연합뉴스)


■ 유족 측 "회사 내부망 정보 없었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접근조차 못 했을 것"…항소

'살인까지 예측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따지면서 예측 가능성뿐만 아니라 보호 의무의 목적이나 법익, 가해 행위의 형태나 피해 정도까지 고려한다면, 예측 가능성만 강조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지난 11일 논평에서, 판결에 관해 "가해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공사 사내망을 통해 열람한 정보는 다름 아닌 범행이 이루어진 시간과 장소였다"며 "개인정보를 적법하게 관리하였더라면, 안전관리시스템만 온전히 작동하였다면, 고인의 사망은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족 측 대리인인 민고은 변호사 또한 KBS에 "근무 장소·시간 등 정보가 없었다면 가해자는 고인에게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며 "상당인과관계를 넓게 인정하는 기존 판례 법리에 반하는 것으로 매우 부당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유족 측은 "민사소송은 단순 금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발생해서는 안 되겠지만, 추후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유족이 회사와 길고 고된 다툼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일 항소장을 제출한 유족 측은 법정에서 법리 다툼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건, 엄중한 처벌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스토킹범죄의 재판실무상 쟁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스토킹 범죄와 살인 범죄가 병합된 사건은 17건입니다. 그중 피해자가 피의자를 스토킹 행위 등으로 이미 신고했던 경우는 8건으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됩니다.

스토킹과 살인 범죄가 같은 피고인에게 저질러졌어도 사건이 병합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작성한 탄원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가,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것은 판사님께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벌을 호소하며 힘든 시간을 오래 버틴 피해자는 이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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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훈 기자 (mr.chu@kbs.co.kr)

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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