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접경 1400㎞에 ‘3중 철조망’… 북한은 거대한 수용소
중국 랴오닝성(省) 단둥시(市)에서 지난 3일 철조망 사이로 북한 평안북도의 황금평 일대가 훤히 보이는 도로 구간에 진입하자 중국 공안 차량 한 대가 굉음을 울리며 따라붙었다. 이 차는 5분 동안 ‘추격전’을 이어가다 철책 너머 북한 땅이 멀어지는 지점에 이르자 비로소 시야에서 사라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북·중 국경은 중국의 이중 철책을 포함해 세 겹이었다. 중국과 북한 양측의 보안 카메라는 마주 보고 있었다. 단둥 소식통은 “북한 측 철책을 보면 카메라가 이전보다 촘촘하게 설치돼 있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수를 크게 늘린 것이다. 특히 황금평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집중 설치했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6일 북한과 중국이 수교 75주년을 맞았지만 1400㎞에 이르는 북·중 국경의 장벽은 유례없이 높아지며 북한 주민들의 발을 꽁꽁 묶고 있다. 남·북한 군사분계선(248㎞)의 다섯 배가 넘는 길이인 국경이 겹겹의 철조망, 촘촘히 깔린 보안 카메라와 여기 연동된 AI(인공지능) 감시 시스템으로 어느 때보다 견고해졌다. 중국을 거쳐 동남아 등 제3국으로 탈출하던 북한 주민들은 이제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꼴이 됐다.
실제로 2009년 3000명에 육박했던 한국 입국 탈북자 수(통일부 기준)는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1000명대로 줄었고, 지난해엔 19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105명에 불과하다. 최근 탈북자들은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참사와 같은 ‘해외 엘리트’ 비율이 높아졌다. 보통의 북한 주민들은 잠겨버린 북·중 국경을 뚫을 방법이 거의 사라졌다는 의미다. 단둥 도로 곳곳에는 ‘국경 사수는 곧 국가 수호(固邊就是固國)’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북한과 중국이 일제히 국경 봉쇄 강화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은 핵 개발로 인한 유엔 제재 장기화와 홍수 등 재해에 따른 경제난으로 탈북 행렬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은 탈북자를 북송하는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 국경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탈북자 원천 차단에 힘쓰는 중이다. 특히 작년부터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중국과의 ‘거리 두기’를 본격화하고,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을 우려해 북한 퍼주기에 인색해지면서 양국 경제 교류가 얼어붙고 국경 장벽이 더욱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경 지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에선 전역에 깔린 AI(인공지능) 안면 인식 보안 카메라 감시망과 기차만 타도 두 번의 전자 신분증 검사를 하는 보안 시스템 때문에 탈북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 국경을 넘더라도 중국에서 공공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AI의 눈’이 ‘신분 불명 인물’로 포착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된다. 탈북자들이 브로커의 개인 차량을 타고 중국 동북 지역에서 동남아 국가의 국경 지역까지 이동에 성공한다고 해도, 국경을 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따라붙은 공안에게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랴오닝·지린성에서 탈북자들을 겨냥한 공안의 집중 ‘거리 단속’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단둥에서 바라본 황금평(11.45㎢)은 한때 중국과 북한이 공동 개발을 약속했던 경제특구였다. 개발 사업이 좌초된 이후엔 북한 주민들의 탈북 창구 역할을 했다. 이곳의 사각지대를 가로질러 수만 명이 중국으로 넘어왔다. 탈북·밀수를 단속하던 북한 국경 경비대 군인이나 보위부 간부들조차 황금평과 단둥을 넘나들며 식량·자재 밀수로 돈벌이를 했다. 코로나 기간에도 막을 수 없었던 북한 주민들의 ‘숨통’으로 여겨졌던 이곳은 이제 북한 측의 촘촘한 보안 카메라와 50m마다 불 밝힌 초소에 막혀 완전히 고립됐다. 단둥 공안 당국도 2021년 압록강 순찰 강화를 위한 전담 조직을 만든 데 이어, 2022년엔 황금평에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을 체포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3년 초까지의 북·중 국경 위성 이미지 분석 결과(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에 따르면, 최소 489㎞ 구간에 철조망이나 콘크리트 방벽 등이 국경에 새로 설치되거나 확장됐다.
중국 동북 지역에선 북한 측이 두만강·압록강변에 전기 철조망이나 지뢰를 새로 설치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북한 군 당국은 지난 1월 중국 접경 지역 중 경비가 취약한 곳을 골라 지뢰를 매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과거 국경에 매달았던 ‘경보용’ 깡통들이 ‘살상용’ 지뢰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쪽에서도 북한으로부터 오는 월경자(越境者)를 가로막는 철책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단둥 압록강 변의 ‘이부콰(一步跨)’라는 지역에선 지난해 3~4월 5m 높이 철책이 새로 설치됐다고 한다. 이부콰는 ‘한 걸음만 내디디면 북한으로 넘어간다(跨)’는 뜻에서 지어진 명칭이다.
북·중을 잇는 모든 기반시설 건설 사업은 2012년 김정은 집권과 이듬해 친중파 장성택 처형을 기점으로 멈춰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과 중국의 육로 무역을 대폭 촉진할 새 다리로 주목받았던 신압록강 대교(2014년 준공)는 지난 6일 수교 75주년을 맞아 개통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무산됐다. 2011년 본격 추진됐던 북한 황금평·위화도 공동 개발은 13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중국인의 북한 관광도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해제된 이후 1년 9개월째 재개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강물도 막히고 있다. 북한 측은 보위부 간부들을 두만강·압록강을 따라 운항하는 배에 태우는 등 탈북 시도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강 양쪽을 오가던 밀수꾼들은 이제 관례적으로 상납했던 돈의 10배를 보위부 간부에게 뇌물로 줘도 체포를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북·중 관계의 이상 기류가 국경 봉쇄 강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6주년 기념행사에는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불참했고, 북한은 지난 6월 관영 매체 송출 수단을 중국 위성에서 러시아 위성으로 교체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에 대항할 카드인 북한이 자국에 온전히 의존하길 바라고 7차 핵실험 가능성도 통제하길 원하지만,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경제 협력마저 강화하며 거리를 벌리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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