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 '밀수' '모가디슈'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휴민트'로 관객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는데요.
지난달 11일 개봉한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특히 최근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박정민과 신세경의 키스 장면이 담겨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데요.
'베테랑2' 이후 2년여만에 작품을 선보이는 류승완 감독이 '휴민트'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박정민과 신세경의 키스신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요? 직접 류승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Q1. '왕과 사는 남자'에 비해 다소 아쉬운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실제로 내가 느끼고 있는 체감은 간만에 극장에 활력이 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설하고만 비교해도 완전히 달라진 거라 감사하다. 그리고 장항준 감독이 잘 돼서 좋다, 진짜.
'왕과 사는 남자' 촬영감독도 나와 평생 같이 일하던 감독이고, 유해진도 친하다. 커피차도 보내고 현장에 응원도 가고 그랬다.
어쨌든 서로 다른 성향의 영화 두 편이 나와서 관객들이 극장에 가고 그러니 좋다. 무대인사 하면서 관객들 만나고 있는데 감사한 마음이다.
Q2.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떠올린 이미지나 키워드가 있다면.
제목이 '휴민트'이지 않나. 이 세계 안에 처해 있는 인물들, 처음과 끝에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 그리고 관계를 되게 촘촘히 맺고 있고 여러 이중삼중의 관계망 안에 있지만 결국 혼자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키워드라고 한다면 이별,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게 되게 중요한 키워드였다.
액션 영화이긴 하지만, 액션에 도달할 때의 감정이 내가 기존에 다루던 것처럼 분노 게이지를 막 올려서 복수를 한다거나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쾌감이 아니라, 차분하게 잡아놓은 감정선 안에서 그것이 응축돼 폭발하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같은 액션을 보더라도 조금 더 감정적으로 풍부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마초적이고 피상적인 액션 이상의 감정적 울림을 주는, 더 끝내주게 느껴지는 액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본질적으로 해결 방법은 액션의 테크닉보다는 결국 인물을 다루는 태도나 방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스태프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Q3. 인신매매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베를린'을 준비할 때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한 인신매매 사건도 실제로 그 때 들었던 이야기다. 다른 국가들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은 그냥 서술하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건 분노였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유럽에서 담배 밀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리지만 사람을 사고판다는 건 있으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그 분노가 시발점이 됐다.
어쨌든 거기에는 희생자들이 있을 것이고, 이 범죄를 추적해 응징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 큰 파도 안에 휩쓸려 희생자의 포지션에 놓였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사람, 그리고 거기에 관계돼 있어 과거 선택의 실수 때문에 현재에 속죄하고 싶은 사람, 이런 구도로 극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왔다.

Q4. 류승완 감독의 멜로, 생소했는데 반응이 좋다.
사실 박정민 배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쪽에 이렇게 많이 관심을 가질지 예상 못 했다. 물론 영화 속 관계를 만들면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선호, 박건이 식당 뒷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은 현장에 나가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조마조마하게 찍었다.
연출 경력이 20년이 훨씬 넘는데, 그동안 키스 장면을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감독들한테 '키스 장면은 어떻게 찍냐, 각은 어떻게 맞추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장르적인 계산보다는 이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자는 생각이 더 컸다.
멜로 드라마다, 멜로 액션이다 이런 식의 카테고리는 개봉을 앞두고 관객에게 안내하기 위해 붙이는 것이지, 만들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
두 사람이 과거의 연인이었다는 설정이 이들만의 관계 루트를 만들어주긴 하지만, 만약 본격적인 멜로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오히려 과거를 보여주지 않고 현재 상태에만 집중하면서 그들의 사연에 따라가다 보니, 관객들도 그런 부분을 부담 없이 봐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Q5. 박정민이 멜로를 아주 잘 소화했다. 현장에서의 모습은 어땠나.
박정민이 엄청 체중 감량을 하고 왔다. 스태프들도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 같다고 할 정도였다. 언제나 그렇듯 준비가 철저하고 역할에 깊이 몰입하는 배우다.
우리가 흔히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배우들은 많지 않나. 그런데 스크린에 투영됐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하는 배우는 외모가 아니라 태도가 찍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뒷모습을 찍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그건 결국 배우의 상태가 찍히는 것이라고 본다. 배우가 얼마나 준비하고 어떤 태도로 현장에 임했는지가 화면에 남는 거다. 감독이 최적의 앵글을 찾고 조명을 맞출 수는 있지만, 그걸로 두 시간을 버틸 수는 없다.
박정민은 원래 앞에서 설치는 걸 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조 과장은 남한 쪽 인물이니까 스태프들을 더 챙기겠다고 하고, 본인은 북한 배우들과 어울리면서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막내처럼 움직였는데, 어느새 형이 돼 그렇게 해주는 모습을 보고 되게 고마웠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쉬어야 할 텐데 술도 잘 안 마시는 친구가 같이 조깅하고, 같이 밥 먹으러 다니고, 원래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애쓰는 걸 보면서 고마웠다.

Q6. 조인성과 세 번째 작업이었다. 이번 현장은 어땠나.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 인성이 좋다. 유머 감각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잘한다. 집안도 어머님은 권사님이고, 본인은 법률스님과 어울리면서 종교적 화합이 집안에서 이뤄지고 있다.(웃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참 품위 있게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더 멋있어지는구나 느꼈다.
조 과장은 원래 이름이 조 과장이 아니었다. 조인성을 떠올리면서 조 과장으로 정했다. '휴민트' 속 조 과장과 조인성이 굉장히 비슷하다. 혼자 살고, 일만 하고, 자기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괴로워하고, 옆에서 누가 다치면 자기가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되게 비슷하다.

Q7. 이번 작품이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
이 영화를 마치고 개봉한 지금 이 순간, 나는 되게 홀가분하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는 느낌이다. 내일 죽어도 호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숙제로 남는 것들이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에 대해서는 '아, 이건 내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구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이 영화가 고마운 건, 어쩌면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떄문이다. 나의 취향과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을 20여 년 동안 여러 형태로 다 해본 느낌이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지금까지와는 꽤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Q8. 차기작은.
지금은 '베테랑3'다. 이제 그쪽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초벌 각본은 다른 작가가 쓰고 있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집중하는 건 이제부터다. 2편이 1편의 성공에 대한 나름의 부채감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 준비하는 3편은 관객이 좋아하는 서도철을 다시 귀환시켜 돌려드리는 작품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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