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하늘 보고 손 흔들어주세요” 엄마를 울린 아들의 당부

“엄마! 인철이요. 보고 싶었어요. 엄마” 대형 모니터 속 군복 차림의 청년이 어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을 본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철아” 불러놓곤 눈물만 주룩주룩 흘립니다. 그저 이름만 불렀는데, 엄마의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진짜로 만나는 거였으면, 얼마나 좋겠니"

현충일 전날인 지난 6월 5일. 충북 음성에 사는 이준신씨는 새벽부터 분주했습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들을 만나러 서울에 가기 전에 꽃단장을 해야 했거든요. 약속 장소에 도착한 준신씨를 반기는 사람은 아들이 아닌 그의 친구들입니다.

이두원 공군 17전투부행단 소속 중령
“오늘 어머니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이준신 故 박인철 소령 어머니
"이쁘니? 신경 좀 썼지. 너무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늙었다고 그러면 또 그렇잖아. 늘긴 늙었지만"

어쩐지 긴장되는 순간. 준신씨가 아들이 있는 방문을 빼꼼히 열면서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큼지막한 모니터 속에 환하게 웃는 아들 고(故) 박인철 소령(1980년생‧공사 52기). 화면 속 박 소령은 국방부가 인공지능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한 가상 인간입니다.

박인철 소령은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꿈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돌연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준신씨는 그런 아들을 말리고 싶었어요. 준신씨의 남편, 그러니까 박인철 소령의 아버지는 1984년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팀스피릿 훈련에서 F-4 팬텀기를 타고 저고도 사격 훈련을 하다 순직한 박명렬(1953년생‧공사 26기) 소령이었거든요.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준신씨도 아들의 신념을 꺾지 못했고, 아들은 2000년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전투기 조종사가 됐습니다.

공군부대 배치를 받은 2007년 현충일엔 부친의 묘비를 찾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고 다짐했는데 그로부터 50여 일이 지난 7월 20일 밤, 서해안 상공에서 KF-16 요격 훈련을 하다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KF-16이 바다로 추락한 탓에 시신조차 찾지 못해 현충원엔 잘라둔 머리카락이 대신 묻혔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남자를 가슴에 묻은 준신씨는 “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 생각이 많이 나요”라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16년 만에 다시 보며 연신 눈물을 흘립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워서인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가슴이 벅차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 보고 싶었다”는 아들의 말에 “이게 이렇게 만나는 게 아니고 진짜로 이렇게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라는 애절한 소망을 전할 뿐이죠. 그리고 엄마는 “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한 아들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게 평생 후회로 남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에 아들은 “ 엄마 말씀을 따르지 못한 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예요. 조종사 훈련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이제 엄마도 저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엄마를 걱정했습니다.

남편 박명렬 소령이 순직했을 당시 아이들은 고작 네 살, 두 살이었습니다. 준신씨는 어린 자식들에게 차마 아빠가 세상에 없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이준신 故 박인철 소령 어머니
"그때도 아빠가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고 그랬어요. 현충원에 갔는데, ‘엄마, 순직이 무슨 소리예요’이러더라구요. ‘조금 더 큰 다음에 설명해 줄게’라고 이랬어요.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본 거예요. 담임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너 어디서 듣고 본 단어냐’ 그랬더니 현충원에 가면 우리 아빠 이름이 있고 거기에 써 있다... 아빠가 없던 걸 몰랐던 거예요”

그렇게 ‘순직’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아홉 살 꼬마가 20년 뒤 같은 글자가 새겨진 묘비 아래 묻히게 될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것도 아버지보다 네 살이나 어린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말이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 이선미 중령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잊히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10분 남짓 이어졌던 모자 상봉의 마지막 인사를 전할게요.

故박인철 소령 : 엄마 제가 보고 싶을 땐 서쪽하늘을 보세요. 거기서 이렇게 손 흔들고 있을게요
이준신씨 :
그래, 손 흔들고 인철아! 부를게
故박인철 소령 :
갑작스럽게 인사도 못드리고 와서 많이 속생했는데 이렇게 오늘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
이준신씨 :
인철이가 짧게 엄마 곁에 있다가 갔지만 엄마 아들로 같이해줘서 행복하고 고마웠어
故박인철 소령 :
우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속으로 같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거 잊어버리면 안 돼요. 사랑해요 엄마
이준신씨 :
엄마도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