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음모론자에게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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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를 이성적 대화로 설득할 수 있을까.
AI가 음모론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사람처럼 감정적 동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모론에 빠진 주변 사람을 마주했을 때 한숨만 내쉬거나 "그게 말이 되느냐"며 흥분하는 대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차분히 설득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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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음모론자를 이성적 대화로 설득할 수 있을까. 어렵다는 게 전통적 인식이었다. 우선 확증편향 탓이다.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이미 신념화한 까닭에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 줄 이야기에만 귀 기울일 뿐, 반대 증거는 아무리 내밀어도 되레 "증거가 조작됐다"며 눈감는다는 것이다. 또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 주변에는 같은 음모론자가 많다.
이런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가 지난해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코넬대 연구팀은 음모론을 신봉하는 2,19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믿는 음모론과 그 근거를 말하도록 한 뒤 GPT-4 터보라는 인공지능(AI) 모델과 세 차례에 걸쳐 대화하도록 했다. AI는 그들이 믿는 근거를 깨는 반증을 제시하며 설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실험 참가자들의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20%나 감소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설 같은 고전적 음모론뿐 아니라 2020년 미국 대선과 코로나19 관련 비교적 최신 음모론에도 AI의 설득은 통했다. 심지어 음모론적 신념이 깊이 뿌리내린 참가자들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연구진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접하면 음모론적 신념도 바뀔 수 있다"며 "음모론의 '토끼굴'에도 출구가 있다는 뜻"이라고 결론 내렸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음모론은 힘이 세진다.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악몽에 가까운 혼란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도 음모론이 빠르게 퍼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띄운 '부정선거론'이 대표적이다. 그 영향은 교실에까지 파고들었다. 본보는 '소년이 자란다' 시리즈를 준비하며 1020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6~18세(고1~3학년 해당) 응답자 459명 중 43.9%가 '선거에서 개표 부정이 발생하기 쉽다'는 데 동의했다. 음모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미 대법원 등은 "부정선거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06560003629)
하지만 희망적 징후도 있다. 설문에서 우리 10대들의 건강한 정치인식도 확인됐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은 바람직했다'는 문항에 남성 청소년은 67.4%, 여성은 70.4%가 반대했다. 결국 아이들은 미스터리한 서사 구조를 가진 음모론에 재미를 느낄 뿐, 신념으로 굳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생각을 바꿀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이는 어른들의 몫이다.
AI가 음모론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사람처럼 감정적 동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모론에 빠진 주변 사람을 마주했을 때 한숨만 내쉬거나 "그게 말이 되느냐"며 흥분하는 대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차분히 설득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너무도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아직 노력을 덜했을 지도 모른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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