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은 듯한 로제 'APT.' 저작권 문제 없는 이유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10. 28. 19: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음원플랫폼 ‘아파트’ 싹쓸이
술게임 구호 “아파트 아파트”
80년대 인기곡 ‘미키’ 느낌 멜로디
인터폴레이션, 저작권 논란 피해

블랙핑크 멤버 로제의 'APT.(아파트)'가 전세계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파트'가 발표되자 멜로디에서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잡음은 없었다. 새로운 저작권 트렌드인 '인터폴레이션'을 통해 음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로제의 'APT.(아파트)'를 통해 인터폴레이션의 경제학적 가치를 살펴봤다.

로제가 'APT.'로 주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뉴시스]

블랙핑크 멤버인 로제가 지난 18일 공개한 'APT.(아파트)'는 스포티파이, 아이튠즈, 멜론, 중국 QQ뮤직 등 음원 플랫폼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로제의 솔로 정규 1집 '로지'의 선공개 곡인 '아파트'는 협업한 브루노 마스조차 놀랄 만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중독성 있는 인트로와 친숙한 멜로디다. 인트로는 술마시기 게임에서 쓰는 구호 "아파트 아파트"를 과거 369 게임의 리듬으로 반복한다. 멜로디는 1970~1980년대 느낌이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라인이다.

착각이 아니다. 현재 공개된 '아파트'의 크레디트(credit)를 보면 저작권자로 로제·브루노 마스 등 11명이 등록돼 있는데, 마이클 채프먼과 니콜라스 친이란 색다른 이름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1982년 토니 베이즐이 발표한 노래 '미키'를 만들었다.

이들이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린 건 '아파트'가 '미키'를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삽입)했기 때문이다. 샘플링이 다른 음원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활용한다면, 인터폴레이션은 노래의 가사·음표·리듬 등을 기록한 악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 쓰는 것을 뜻한다.

특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비틀즈가 1967년 발표한 'All you need is love'가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로 시작하는 것도 일종의 인터폴레이션이다. 비틀즈가 태어나기도 전인 1882년 차이코프스키도 '1812 서곡'에 프랑스 국가를 삽입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 인터폴레이션은 음악 산업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는 2010년대 들어서 강화된 표절 논란에서 기인한다. 멜로디나 가사가 아니라 단지 '리듬'이나 '느낌'이 비슷하다며 저작권 소송을 당하는 일이 늘어났다. 마빈 게이의 유족이 패럴 윌리엄스 등에게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두아 리파도 2019년 두번째 앨범 'Future Nostalgia'로 여러 차례 소송을 당했다. 앨범은 1980년대 디스코 등에 영향을 받은 신스웨이브를 표방하는데, 당시의 느낌을 살리는 일조차 저작권 소송을 피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인터폴레이션은 저작권을 소유한 회사들에 새로운 매출원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선 1971년 저작권의 개념을 작곡(작사 포함)에서 작곡과 녹음물(사운드 레코딩)로 확대한 결과, 저작권을 갖고 있는 업체들이 샘플링을 활용한 곡들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증가했다.

하지만 인터폴레이션을 활용해 새롭게 녹음하면, '사운드 레코딩' 저작권을 피해갈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도 음반사 '빅 머신'과 저작권 갈등을 빚자, 초기 앨범 6개를 다시 녹음했다. 인터폴레이션으로 저작권 소송을 피한 거다.

[자료 |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Verified Market Research)]

다만, 인터폴레이션에는 치명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느낌만 비슷해도 저작권을 나눠주다 보면 가뜩이나 줄어든 창작자의 몫이 더 쪼그라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음반산업협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체 미국 음반 수익의 84.0%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에 쓰는 돈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음악 시장 크기도 2021년에만 18.5%나 커졌다.

하지만 씨티그룹이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리밍 서비스 매출 중에서 창작자에게 전달된 수익은 12.0%에 불과했다. 대표적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서 창작자들은 월평균 12달러를 받아 가는데, 상위 1% 창작자가 전체 수익의 77.0%를 가져간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인터폴레이션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스티브 잡스는 1996년 애플로 복귀하면서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잡스가 지금 이런 말을 했다면 저작권료 일부를 피카소 저작권 소유자에게 내야 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저작권 시장은 창작자를 위협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회사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는 음악 저작권 시장 규모가 2021년 이후 연평균 2.62% 이상씩 증가해 2023년 72억6000만 달러, 2030년에는 341억7000만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