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주 (전)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1과장]
드러난 우리 사회의 취약성
이제 다른 결정적인 변수가 없는 한 윤석열 대통령은 파면되고 내란 우두머리 현행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와 함께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하고 조력하고 방조하고 명령을 수행한 자들도 그 죄질에 따라 처벌될 것이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새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 끝난 것인가? 아니다.
12.3내란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혼란은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정치-사회적 하부구조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래와 같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지 한 세대 이상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과거 군부독재정권의 통치이념과 행동양식에 대한 '퇴행적 향수'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게 단순한 담장 내 패거리 담론 수준에 그치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당당히 나와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결국은 “좋았던 그 시절”을 복원하려는 정치적-군사적 폭력 사태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둘째, 12.3내란은 민주체제로 이행한 국가에서 민주주의 심화와 정치발전의 기본 전제인 제도화된 폭력기구로서 군의 탈정치화가 완결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명료하게 밝혀지겠지만, 많은 수의 전현직 군 엘리트들이 내란의 모의와 실행에 적극 가담했음이 드러났다. 군 내부와 퇴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치군인들을 구국의 영웅으로 여기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셋째, 이러한 퇴행적 향수에 취한 집단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수준 이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집단들이 지금 길거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집단행동과 1월 19일의 충격적인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는 단순한 군중심리나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집단 내에는 일사불란한 지시와 동원 체계가 존재하고, 이러한 지시의 실행에 따른 보상과 반대급부가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군중들은 비이성적이고 시대착오적 이념과 허무맹랑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끊임없이 학습하여 종교적 강령 수준의 신념 체계로 무장하고 폭력성을 유감없이 노출하고 있다.

넷째, 정치권의 폭력적 극우화 경향이다. 보수 정치인들은 길거리의 극우적 주장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시위에 동참하더니, 급기야 극우 집단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불러들여 그들의 주장과 행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김민전 의원의 백골단 기자회견 사건과 윤상현 의원을 비롯하여 국민의힘 지도부가 서부지방법원 폭동사태를 대응하는 태도는 보수 정치권의 급진적 우경화 경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들은 윤석열을 정치적 순교자로 간주하고 십자군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원격에서' 교시 내릴 윤석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취약한 민주주의와 불안정한 정치체제는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세력 몇몇의 사법적 단죄와 권력 교체로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다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정치적, 사법적, 인적 개혁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지금 이후의 한국 정치체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혼란 사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정치적 희생으로 성자가 된 윤석열은 계속해서 “원격에서” 정치적 교시를 내릴 것이고, 대의명분을 얻은 극우집단의 폭력은 더 조직화되고 강력해질 것이다. 여기에 보답하여 보수 정치권의 급진적 우경화는 가속화되고, 대의민주주의는 절충과 합의의 미덕을 상실하고 분열과 갈등과 복수의 정치는 더 첨예화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을 틈탄 군의 정치개입이나 민-군 합작에 의한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도 충분히 예견된다. 대한민국이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 이후 독일, 아구스토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 후안 페론 이후의 아르헨티나로 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제 우리는 청산과 단절의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모든 정치적, 사회적, 법제도적, 인적 요인을 발본색원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이행 이후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해본 적이 없다. 1980년 전두환 내란집단에 대한 처벌도 형식에 그쳤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하고 실종되었지만, 이런 반인도적 행위로 처벌된 현장 지휘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불철저한 과거사 청산이 이번 사태를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방치하면 불행한 역사는 또 반복될 것이다.

청산과 단절을 위한 4가지 과제
청산과 단절의 정치는 네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사법정의 실현, 인적 쇄신, 법제도 개혁, 그리고 기억과 교육이다.
첫째, 12.3내란사태 관련자들은 예외 없이 처벌하고, 그 가벌성과 양형의 기준이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12.3내란 행위를 공공연하게 옹호하는 민간인 들도 당연히 처벌되어야 하고, 사회혼란을 꾀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보호될 수 없는 범죄행위임이 명료하게 각인되어야 한다. 무기징역과 1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2년만에 사면되었던 유사한 사태가 반복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둘째, 관련자에 대한 사법정의 실현과 별도로 사법과 행정에 걸쳐 관료 엘리트 전반에 대한 “숙정”(lustration) 작업이 있어야 한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종말 이후 동유럽 국가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비밀경찰이나 정보기관에 협조했던 관리들의 행적을 엄밀히 조사해서 공직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민주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나치 점령 시절 비시 정권 관리들의 부역 수준을 14개 단계로 나누어서 사법 처벌과 별개로 징계 조치를 취했다. 빌리 브란트 정권 하 독일의 나치 유산 청산(de-Nazification) 작업도 비슷했다. 우리도 12.3내란과 그 이후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관료들이 보여준 공적, 사적 행적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통해서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적 청산을 단행해야 한다.
셋째, 이런 내란 행위를 가능케 한 법적, 제도적 수단을 면밀하게 검토해서 헌정질서 파괴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1981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개정되어 발동요건이 완화된 계엄법을 재개정해서 발동요건을 전시 또는 준전시로 한정해야 한다. (이 개정안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의 대정부 권고에 포함되어 있으며, 해당 부처는 반드시 개정의 의견을 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군형법을 개정해서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항명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군의 정치개입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 등 인권유린 행위를 제어하는 법제도적 수단이 강구되어야 한다.

교훈은 반드시 기억되고 공유되어야
마지막으로 12.3내란 사태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이 사태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 사태의 진행 과정, 수사와 재판 과정, 그후의 청산 과정, 그리고 이 사태가 초래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심리적 충격은 하나도 빠짐 없이 기록되어 당대와 후대가 공유해야 한다. 이 사태가 준 교훈을 정리해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학습할 수 있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전사회적 각성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이제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는 12.3내란의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교훈을 정리할 수 있는 조사위원회와 공론장을 설치해야 한다.
정치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공공정책 전문가, 군사전문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사위원회가 12.3내란 사태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이 사건의 성격과 교훈 그리고 재발방지 조치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고,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으로 구성된 공론장에서 숙의 과정을 거쳐서 이 보고서를 국가의 공식견해로 채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사회적 합의와 각성에 기초하여 훼손된 우리의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정치사회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복원된다.
급진적인 청산과 단절의 정치를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냐고 물을 수 있다. 간단하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개혁을 수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택하면 된다. 이 과정은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사회발전을 심화할 수 있음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시민사회가 살아있으면 갈 길은 비록 멀지만 희망은 가깝다.
※ 최용주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직을 은퇴한 후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을 맡았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책장 덮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진인진 2022), <5.18 푸른눈의 증인>(한림출판사 2020), <나의 이름은 임대운>(객, 2022) 등이 있다. 1958년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