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단짝’ 강된장에 라이스페이퍼·치즈 ‘전 부치기’…이게 되네? [ESC]
그 시절 무교동 강된장비빔밥
값싸고 짠맛에 최고의 술안주
반짱느엉 응용 ‘한-베 우호음식’
예전 직장인들 점심은 대체로 단조로웠다. 물론 한식을 많이 먹었다. 반찬 깔아주는 백반집이 워낙 흔해서 점심 메뉴의 절반은 백반집이었다. ‘물백반’이냐 아니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주요리가 있는 음식이냐를 정하곤 했다. 물백반이란 ‘그냥 백반’이란 뜻으로, 주요리가 따로 붙지 않고 값싼 김칫국이나 콩나물국, 된장국 같은 묽은 국이 딸려 나오는 걸 뜻한다. 당연히 내가 처음 직장일을 하던 1990년 초반 기준으로 물백반은 값도 메인이 있는 음식에 견줘 100원 정도 쌌다.
딱 안주하기 좋은 농도와 밀도
스파게티나 피자도 드물었고(이런 음식은 그 무렵 저녁 데이트 음식으로 유행을 준비하는 단계 정도였다), 타이와 베트남 같은 동남아 쪽 음식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메뉴인 도시락 집도 거의 못 보았다. 당시 한솥도시락이라는 브랜드가 사무실 많은 동네에 자그마하게 문을 열던 게 기억난다. 그걸 사서 근처 공원에 가서 한두 번 동료들과 먹었던 기억은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도시락 회사가 1993년에 시작했으니 기억이 맞다. 물론 중국집은 아주 많아서 인기였다. 그 유명한 직장인의 고뇌인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시대였다. 물론 볶음밥이나 기스면, 울면, 우동도 많이 먹었다. 젊은 직장인은 당연히 곱빼기를 시키던 허기와 식욕의 시대였다.
백반이 아니면 섞어찌개집도 많이 갔다. 요즘은 섞어찌개라면 아는 이도 없을 것 같다. 막 생산이 많아진 버섯과 오징어나 동태 조각들, 우거지 같은 걸 넣어 맵게 끓여내는 찌개였다. 오징어와 제육덮밥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비빔밥 메뉴도 아주 많았다. 이제는 대부분 희미해진 메뉴들이다. 계절에 따라 특별 메뉴를 먹는 건 지금과 비슷했다. 여름의 콩국수와 일본식 비슷한 ‘판모밀’(메밀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이렇게 썼다)과 냉면, 겨울에는 만두전골 같은 걸 시켜 숟가락을 냄비에 넣어가며 나눠 먹었다.
그 무렵 간혹 토속요리를 하는 식당이 지역마다 있어서 사람을 끌었다. 강된장비빔밥이란 것도 무교동 언저리에서 처음 먹어본 게 그 시절이었다. 두부를 넣어 된장을 되직하게 끓이고 작은 뚝배기에 담아주는데, 짭짤하고 진한 된장 맛이 아주 비상한 매력이 있었다. 수분이 거의 없어서 크림처럼 녹진한 게 강된장이라 따로 떠먹기보다는 밥에 비벼 먹는 게 보통이었다. 다루는 집마다 부추며 양배추 삶은 것을 내기도 했다. 밥을 떠서 비벼놓으면 묘하게 따로 생각나는 게 있었는데, 반주였다. 딱 안주하기 좋은 농도와 밀도의 음식이었다. 게다가 아주 짭짤해서, 아직 어려서 술에 길들지 않은 내게는 소주처럼 역한 뒷맛이 나는 싸구려 술을 씻어내기에 딱 좋았다. 강된장은 ‘강(强)’된장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얼추 틀리지(?) 않는 해석이다. 강된장은 확실히 강한 맛이니까. 국어사전은 강된장의 어원을 정확하게 풀어놓지 않는다.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강술(안주 없이 마시는 술)처럼 섞이지 않은 진한 건더기를 먹는다는 의미도 있고, 마른 것을 설명할 때 ‘강’을 접두사로 쓴다고도 한다. 둘 다 맞는 것 같다.
나의 비결은 된장을 볶아서 쓰기
강된장은 한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였다. 두부 넣은 걸 좋아했다. 술을 마시기 전에 두부를 숟가락으로 으깨어서 이미 소스처럼 진한 된장양념에 슬슬 풀 때 나는 너무도 기뻤다. 숟가락 등에 전해지는, 된장이 풀어지는 푸근한 느낌에 이미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짜기는 또 얼마나 짠지 ‘얼른 술 마셔서 입 헹구렴’ 하고 재촉하는 것도 좋았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깡된장’이니 오직 된장과 두부의 순정으로 승부를 거는 안주랄까. 짠맛이 강해서 두부로 조절하는데, 그래도 크게 한숟가락을 먹으면 짰다. 그렇다고 반 숟가락을 먹으면 또 아쉬운 법. 그럴 때는 밥을 비벼서 안주하면 짠맛 조절도 쉽고 안줏값도 적게 나왔다. 무교동 그 집은 동태전이나 조개전 같은 걸 같이 파는 집이어서 시킬 안주가 꽤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강된장에 셋이서 소주 너덧 병을 비우기도 했다. 당시 25도짜리 소주였으니 요즘 도수로는 일고여덟 병을 마신 셈일까. 잡히지 않는 기본요금 550원짜리 합승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황량한 길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그 막막한 시절들아.
소주 얘기를 꺼내니 기억나는 장면이 꽤 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아마도 서울의 경우 소주를 냉장고에 넣어 파는 게 유행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서리가 얼도록 차갑게 해서 내는 것도 유행이었다. 소주를 매일 마시면서도 불신도 깊어서 나쁜 물질이 병모가지 쪽으로 떠올라온다고 해서 그 목을 쳐서 반잔쯤 따라 버리거나 바닥에 ‘고수레’를 하곤 했다. 알코올 함량이 25도에서 23도로 낮아지자 장안의 아재들은 대성통곡과 비분강개를 내뿜어서, 바뀐 소주를 내놓으면서 주인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된장은 집에서 해 먹기 어렵다. 그저 짜고 진하게 된장을 쓴다고 강된장이 되지는 않는다. 비결이 있을 텐데 나는 된장을 볶아서 쓴다. 가능하면 좋은 된장이 좋다고도 하고, 막장이 어울린다는 사람도, 묵은 장이 제격이라는 경우도 있다. 된장 맛이 좌우하는 것이지만 양념도 넣으면 좋은데, 말린 바지락살이나 홍합살, 다진 고기를 볶아 넣으면 확실히 맛이 좋다. 최근 한국음식은 결국 ‘감칠맛’이 되는 걸 총동원하는 게 유행이다. 그렇지만 재료만 수십 가지가 되는 조리법은 조촐하고 결기 있는 강된장에게 좀 결례다. 두부라도 좋은 걸 쓰고, 멸치와 청양고추가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강된장 안주를 만들려다 다 아시는 것 같아서 약간 잔머리를 굴려보았다. 이른바 ‘두부강된장 치즈전’이다. 아주 만만하게 사놓고 쓸 수 있는 베트남의 마른 쌀전병(라이스페이퍼)을 응용했다. 베트남 현지에 가면 거리에서 숯불을 피우고 전병 위에 계란과 몇 가지 채소를 넣어 구워내는 베트남식 피자가 있다. ‘반짱느엉’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베 우호음식이다.
재료(3개분)
된장 1큰술
고추장 반큰술
부침용 두부 반 모
대파 1줄기
다진 마늘 1작은술
마른 새우가루나 복합조미료 약간
청양고추 1개(또는 마른 베트남 고추 1개나 고춧가루 1작은술)
후추
참기름 1작은술
식용유
라이스페이퍼 3장(22㎝짜리가 적당하다)
달걀 3개(미리 풀어둔다)
샌드위치용 슬라이스 치즈 6장
케첩(필요하면)
다음 과정을 3회 반복한다. 라이스페이퍼 1장에 다른 재료를 3번 나누어서 쓴다.
1. 먼저 작은 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다진 마늘과 다진 대파를 볶다가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볶는다.
2. 두부를 으깨어 넣어 같이 버무린다. 후추, 참기름을 넣는다.
3. 스테인리스 팬에 기름을 아주 살짝 바른다. 중약불로 놓고, 라이스페이퍼 1장을 올린다. 미리 풀어둔 계란에 청양고추 1개를 다져 넣는다. 2번의 양념을 올려 고루 바르고 그 위에 계란을 넘치지 않게 고루 올린다.
4. 치즈를 2장 올리고 2~3분 기다린 후 라이스페이퍼를 반으로 접는다. 뒤집어서 갈색으로 잘 익힌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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