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로의 신혼여행을
신혼여행지를 고를 때 고민이 많았다. 지진이나 쓰나미에 안전하고, 그렇다고 남들이 다 가 본 휴양지는 아니면서 휴식을 위한 최고급 리조트도 존재하는 그런 곳. 후보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세이셸과 신이 천국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지상 낙원인 모리셔스. 비행시간과 숙박 등을 따지면서 저울질하다가 결국 마크 트웨인이 남긴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어 우리는 모리셔스로 떠나기로 했다. 결혼의 백미라는 신혼여행으로 말이다.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했다. 그러고 나서 천국을 만들었다.
홍콩에서 모리셔스 항공을 타고 10시간을 날면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옆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모리셔스에 도착한다. 생전 처음 타 본 아프리카 국가의 국적기여서 호기심을 안고 탑승했으나 특이사항 없이 편안한 비행을 했던 것 같다. 자극적이지 않은 커리가 입맛에도 꽤 맞았던 기억이 있을 뿐. 꼬박 10시간을 날아 주리가 틀리기 시작할 때쯤 모리셔스에 도착했다. 생체 시간은 새벽인데 현지 시각은 저녁 시간이었다. 여름에 출발했는데 그곳은 겨울이었고, 저녁 시간 치고 유난히 달이 밝다 했더니 하늘에는 슈퍼 문이 떠 있었다.
작은 시골 터미널 같은 공항을 벗어나면 끝없이 사탕 수수밭이 펼쳐진다. 차 안에서는 마중 나온 호텔 직원과 수다가 이어지고, 붉은 황톳길을 오직 달빛과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내달렸다. 극빈자와 흉악범이 없고 국민의 80%가 관광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 섬에서 대를 이어 산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어쩌면 정말 천국과 가까운 곳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두 군데 리조트에 머물렀다. 휴양도 즐기고 이따금씩 관광도 할 요량이었다. 예상 밖으로 조식과 석식이 무료 제공이었으며, 리조트 내 해양레포츠 역시 대부분 무료였고 비수기(6월 중순)라는 이유로 성수기(연말연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인 데다 추가 비용도 별로 발생하지 않아서 당시 인기가 많던 몰디브의 동일 등급 호텔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나름 합리적인 여행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사치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려 애썼던 것 같다. 호텔들이 끌어 쓰는 물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하루에 두 번만 급수가 허용된다는 말을 가이드로부터 들은 후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실에서 바라보는 그림 같은 풍경과 숙련된 서비스, 아름다운 프라이빗 해변은 매번 감탄의 연속이었다. 유리알같이 맑은 바닷물이 허리춤까지 오는 대륙붕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우더처럼 날리는 고운 모래는 산호가 부서진 까닭에 파스텔 톤이었다. 어릴 때 봤던 <블루 라군>이라는 영화가 절로 떠오르는 지상 낙원 같은 바로 그 모습의 바다를 실제로 만난 것이다.
카타 마린에서 유유자적하며 먹은 바비큐와 피닉스 맥주는 기가 막혔고, 투명한 아크릴 바닥을 통해 바닷속을 훤히 볼 수 있는 글라스 보트는 흥미진진했으며, 하늘 높이 떠올라 드론으로나 볼 법한 풍경을 직접 내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파라 세일링은 짜릿한 동시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일로 셰프’라는 작은 무인도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수백 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수령을 자랑하는 거대한 맹그로브 숲이 우거져 있고 굽이굽이 폭포와 아름다운 해변이 어우러져 있었다. 햇빛의 각도나 계절에 따라 일곱 가지 색으로 보인다는 모래 구릉인 ‘샤마렐 세븐 컬러즈’, 스케일이 남다른 ‘샤마렐 폭포’도 인상적이었다.
길가에 핀 풀 한 포기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반짝이는 모리셔스의 무공해 대기는 요즘 같아서는 절실하기까지 하다. 다시 가서 그 대기를 폐 세포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들이키고 싶을 지경이랄까.
사실 모리셔스는 그 빼어난 풍광만큼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은 저마다 사연으로 팔려온 노예들의 피땀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무인도로 발견된 아름다운 섬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과 같은 유럽 열강이 들어와 노예와 범죄자를 사탕수수밭에서 노역으로 소모하고 생산된 설탕과 술은 유럽으로 조달했으며 지구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도도새를 멸종시켰다.
우리가 만난 가이드는 스스로를 노예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이나 억울함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통해 이 정도 살게 되었다며 그것을 치욕의 역사가 아닌 구제의 역사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적도성 열대 기후인 그곳에서 겨울이 다가와 너무 춥다며 얼음장 같은 손을 내밀었었다. 나에게는 한여름인데 그들에게는 겨울이라 추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흉악범과 극빈자가 없다는 나라답게 순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살아서일까? 길가에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들개가 참 많았는데 1년에 한 번 정부에서 벌이는 들개 소탕 작전 때에는 누군가 다 숨겨준다고 한다. 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니까.
나와 함께한 이는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신혼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개들이라고 했다. 개를 숨겨주는 측은지심에 감동한 것인지 단순히 개들이 귀여웠던 것인지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인생에 한 번뿐이라는 신혼여행에서 너무나 아름다웠던 아내라거나, 함께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실은, 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얼음장같이 차갑던 가이드의 손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햇양파로 만든 어니언링이 참 맛있었던 기억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결혼 10주년이 되면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이제는 마크 트웨인이 남긴 문장에 현혹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저 없이 모리셔스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그때는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글·사진 | 최경숙
서울에서 마케터로 활동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여행 칼럼을 기고하거나 동화를 쓰면서 밤하늘의 달이 자신을 스토킹 한다고 믿는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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