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공안 공화국’ 베트남…여행시 주의할 점은?
공안 숫자 한국 경찰보다 많은 나라
체포·구금 쉽게 할 수 있고 돈 요구하기도
경범죄라도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점점 가까워지는 나라’
바로 베트남 이야기다. 베트남은 비행 시간이 길지 않고 물가도 저렴하다. 한류 열풍이 여전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도 우호적이다. 이런 이유로 단기 여행은 물론 한달 이상 장기 체류를 위해 베트남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자 역시 최근 1년새 여행과 취재를 목적으로 여러 차례 베트남을 찾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방문하고 싶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 현지 분위기, 생활상 등을 미리 공부해두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질 터! 2024년 달력을 보며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도전! 베트남 한달살이 A to Z’를 연재한다.
베트남 거리 곳곳을 배회하다 보면 제복을 입은 공안(경찰)이 자주 눈에 띈다. 사회주의 나라인 만큼 ‘경찰국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별칭을 지닌 한국의 경찰과 이곳 공안이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베트남의 공안은 법원의 구속영장 없이도 체포·구금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외국에 갔다고 풀어진 마음에 경범죄라도 저질렀다가는 큰 송사에 휘말릴 수 있으니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이곳이 ‘공안 공화국’임을 한시도 잊지 말자.
◆베트남 공안, 한국 경찰과 차이는=지난해 12월 베트남 취재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공항 입국심사대 앞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공안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베트남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성에게 색안경을 벗으라고 명령하는 듯했다.
물론 얼굴을 확인해야 하는 심사 과정에서 색안경을 낀 것은 잘못한 일이긴 하나 상당 시간 그 여성을 세워놓고 상대방이 알아듣든 말든 큰 소리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치다 싶었다. 줄을 서 있던 외국인들은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기자 역시 심사대 공안에게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보이며 그의 안내에 충실히 따르려 노력했다.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에선 공안의 역할이 광범위하다. 단순히 치안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인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데 앞장서는 조직이다. 그래서일까. 일반 베트남 사람들이 온화하고 친절한 것과는 달리 대부분 공안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시종 누군가를 감찰하는 듯한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수도 하노이는 물론 달랏이나 냐짱(나트랑) 같은 관광도시에서조차 제복을 입은 공안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의 경찰 숫자는 약 13만명으로 경찰 1인당 담당인구 수는 약 394명(총 인구 5130만명 기준)이다. 베트남 현지 매체를 종합해보면 공안 수는 약 3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1인당 담당인구 수는 333명(인구 1억명 기준)으로 한국보다 60여명 적다. 인구수를 고려하더라도 그만큼 공안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특히 베트남 공안은 체포와 같은 인신구속을 집행하는데 있어 한국 경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수사기관인 검찰원(우리나라의 검찰에 해당)의 비준만으로 바로 인신구속에 나설 수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경찰이 신청하고, 검사가 청구한 후 법원이 인신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하노이의 한 한인은 “베트남 형사소송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가끔 공안이 법을 초월해 집행하고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법을 해석하는 공안의 재량이 넓다 보니 같은 사안이라도 처벌 수위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귀띔했다.
◆관존민비 여전한 베트남, 돈 요구하는 공안도 있어=베트남 공산당은 자국 내 유일한 합법 정당으로서 오랫동안 일당제를 유지해왔다. 그래서인지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이 뿌리깊다.
익명을 요구한 베트남 현지 기업 법인장의 말이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려면 의사결정 기구와 과정이 워낙 복잡해 진도를 나가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국엔 인맥, 중국엔 꽌시(관계)가 있다면 베트남엔 정감을 뜻하는 일명 ‘띵깜’이 필수랍니다. 이 기간을 단축해보려면 담당 공무원과 친해져야 하고 때론 향응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베트남 공안도 마찬가지다. 일부 돈을 요구하는 공안 때문에 난처한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외국인은 일정 금액의 달러를 지참하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호치민에서 약 6개월간 체류했다는 지인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베트남 공안이 고가의 오토바이를 잘 잡는다는 말이 있어요. 헬멧 착용 방식을 꼬투리 잡거나, 면허증 소지 여부를 불시에 확인한 후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하죠. 이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전 지갑을 두개 가지고 다녔어요. 그 가운데 하나에는 200만동(10만원 상당) 정도의 지폐를 넣어두는데 혹시 돈을 요구하는 공안을 만나거든 ‘이 돈이 전부다’라며 보여주는 용도예요.”
기자 역시 벌건 대낮에 국제공항에서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출국 심사대에서 줄을 서 있는데 한 공안이 나타나 어설픈 영어로 “출국 심사를 간소화해주겠다”고 했다. ‘혹시 베트남 농업 분야를 취재한 기자를 알아보고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건가’라는 라는 착각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그가 “20달러만 내라”고 답했다.
◆한국 여행객, 음주 후 저지르는 범죄 주의=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인이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특히 만취해 저질러지는 비행이 많다는 후문이다. 가령 베트남 여성을 희롱하거나, 공안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식이다.
베트남은 형법상 속지주의를 표방한다. 범죄인의 국적과 상관없이 자국 영토 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자국 형법에 따라 처라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듯, 공안의 권력이 센데다 법 적용이 고무줄 같아 경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자칫 복잡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베트남에선 술은 적당히 마시고, 현지인과 갈등을 초래할 만한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장기 체류를 계획한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베트남의 법 전반을 숙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베트남 현지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의 형사법이 실체적·절차적인 면에서 (우리나라와) 상이한 것이 많다”면서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생활하다가 베트남 법을 어겨 헝사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생각보다 빈번하다”고 전했다.
[인터뷰] 조범석 변호사에게 듣는다 - 베트남 공안에 잡혔을 땐 '이렇게’
베트남에 체류하는 동안 의도하지 않게 범죄에 연루돼 억울하게 공안에 잡히면 언어 장벽에다, 현지 형사절차에 대한 무지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베트남 형사 사건 경험이 풍부한 법무법인 법승 소속 조범석 변호사에게 대응 방법을 들어봤다.
Q. 베트남 공안에게 잡혀 구금 등을 당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A.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안에 “한국 영사를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다자조약인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국인이 체포·구금되더라도 영사접견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공안으로 하여금 자신의 구금 사실을 영사에게 통지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고, 영사를 만나면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을 의논해야 한다.
Q. 일을 해결해주겠다며 브로커가 접근한다면?
A. 공안 고위층을 알고 있다고 접근하는 브로커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 영향력 있는 브로커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다. 브로커를 통해 일을 해결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더라도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에서는 잘못된 방식에 따라 건넨 돈은 ‘불법원인급여’라고 보고 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Q. 공안이 영사 접견 요구를 거부한다면?
A. 영사 접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중장기 구금에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베트남 현지 법무법인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마저도 여의찮다면 베트남 현지 법무법인과 연계된 국내 법무법인을 찾아야 한다. 베트남 안에서도 지역별로 영사의 역량이나 태도가 천차만별이다. 아무래도 변호사가 개입하면 영사의 적극적인 도움을 유도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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