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국산 항공엔진, 5월 첫 시동"… 5500lbf급 국산 엔진 시대 열린다

전투기의 심장은 엔진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체를 설계해도, 엔진을 남의 손에 의존하는 순간 그 전투기는 완전한 '우리 것'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수출할 때마다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부품 하나가 막히면 정비가 1~2년씩 밀리는 현실... 한국은 오랫동안 그 불편한 현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5월, 대한민국이 독자 개발한 항공엔진이 처음으로 시동을 겁니다.

작은 불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한 번의 점화가 한국 항공 역사의 새 장을 여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5500lbf'가 얼마나 강한 힘인가


먼저 숫자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lbf, 즉 '파운드 포스'는 엔진이 밀어내는 힘의 단위입니다.

1lbf는 453g짜리 물체를 밀어내는 힘이니, 5500lbf면 단순 계산으로 약 2.5톤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는 추력입니다.

감이 잘 안 잡힌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됩니다.

1980년대 영국이 만든 호크 고등훈련기, 길이 약 12m에 최대 이륙 중량 9100kg의 실전급 훈련기에 달린 엔진이 바로 이 5500lbf급입니다.

물론 요즘은 항공기들이 대형화되면서 이 급의 엔진은 무인기 탑재용으로 분류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닌 것이죠.

유도 미사일에 들어가는 단발성 소형 엔진과는 차원이 다른, 수백에서 수천 시간 이상 연속 운용이 가능한 '장수명' 엔진입니다.

2013년 설계실에서 시작된 12년의 여정


이 엔진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설계를 시작한 것이 2013년, 벌써 12년 전의 일입니다.

이후 2019년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 체계가 갖춰졌습니다.

그동안 이들이 걸어온 길은 지름길이 아니었습니다.

소재 단계부터 부품, 모듈까지 하나하나 단위 시험을 거치며 기초부터 쌓아 올린 것입니다.

외국 기술을 들여다 얹는 방식이 아니라, 설계도 한국, 제작도 한국, 검증도 한국이 직접 한 온전한 국산 엔진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독자 개발한 첫 장수명 항공엔진으로 기록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월의 시동, 어떻게 진행되나


오는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창원1사업장 내 엔진시운전실에서 이른바 '최초 시동 시험(First Firing)'이 진행됩니다.

이름 그대로 엔진이 처음으로 실제 작동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시험에서는 시동, 가속, 감속, 정지 등 기본적인 작동 상태를 순서대로 확인합니다.

이는 항공기에 탑재하기 전 지상에서 이뤄지는 검증 절차의 첫 관문입니다.

이후 2027년까지 내구성 시험, 환경 시험, 추력 시험이 이어집니다.

내구성 시험에서는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며 엔진에 피로를 누적시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를 보고, 환경 시험에서는 고온과 저온, 진동, 충격 등 극한 상황에서도 엔진이 멀쩡히 작동하는지를 따집니다.

그리고 추력 시험에서는 정지 상태에서 엔진이 낼 수 있는 최대 힘을 상황별로 측정하는 것이죠.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무인기에 탑재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이 엔진이 날게 될 무인기, '저피탐 편대기'


5500lbf급 엔진이 최종적으로 탑재될 기체는 대한항공이 개발 중인 저피탐(低避探) 무인 편대기입니다.

'저피탐'이란 레이더에 잡힐 확률을 최대한 낮춘, 즉 스텔스 성능을 갖춘 기체를 뜻합니다.

이 편대기는 KF-21 전투기와 함께 유무인 복합 편대를 구성해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탑승한 KF-21이 지휘하고, 무인 편대기가 그 곁을 날며 위험 임무를 도맡는 구조입니다.

현재 시제기 제작이 완료되었고 시험 비행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방위사업청은 추후 이 편대기의 양산 업체를 별도로 결정할 예정이며, 엔진 역시 탑재 기체의 정비 주기에 맞춰 수천 시간 사용을 목표로 성능을 계속 다듬어 나갈 계획입니다.

1만lbf, 그리고 1만6000lbf를 향한 큰 그림


5500lbf급 엔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5월, 1만lbf급 무인기용 엔진 개발 사업도 공고할 예정입니다.

이 엔진은 고속·고기동보다는 장시간 체공을 목적으로 설계되는 것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더 큰 목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군 당국의 최종 목표는 1만6000lbf급 첨단 항공엔진입니다.

현재 KF-21에 탑재된 미국 GE 에어로스페이스의 F414k 엔진이 1만4770lbf급이니, 그것을 능가하는 성능의 엔진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겠다는 구상인 것입니다.

2040년까지 약 3조3500억 원을 투입하는 이 대형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엔진 수출을 위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재의 종속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유도 미사일용 소형 엔진만 만들던 한국이, 민간 항공기를 거쳐 첨단 전투기용 엔진에 이르는 긴 계단을 한 칸씩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5월의 첫 시동 소리가 그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