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한국전쟁 원년, 티베트의 비극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동티베트 참도(Chamdo)를 침공했다. 중국은 당시 만 16세였던 달라이 라마 티베트 정부의 대표단을 베이징으로 불러 51년 5월 23일, 저 유명한 17조 협정(공식 명칭은 ‘중앙인민정부와 티베트 지방정부 간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 조치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티베트 자치권을 인정하고 종교-문화를 존중하되 중국의 주권과 인민해방군 진주를 허용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2년 뒤 13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독립을 선언했다. 정부 수반으로서 독자적인 군대를 창설했고, 화폐와 우표, 여권을 발행했고, 영국(인도) 등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티베트의 국제법적 지위는 모호했다. 중국뿐 아니라 당시 중화민국(국민당 정부)도 티베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했고, 영국도 인도 식민지 통치에 필요한 중국과의 완충지대쯤으로 여겼다. 17조 협정이 강압에 의해 체결됐다는 달라이 라마의 호소에 응답한 국가는 유엔을 포함해 단 한 곳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는 한국전쟁 전시였다. 미국의 관심은 한반도에 집중됐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최우선 과제 역시 한반도 적화 저지였다. 중국으로선 마오쩌둥이 국가 통일의 마지막 과제로 삼았던 ‘티베트 해방’의 적기인 셈이었다. 중국은 티베트 사태를 협상 국면으로 전환한 직후인 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북한 영토에 진입, 6일 뒤인 50년 10월 25일 한국군과 첫 전투(온정리 전투)를 치렀다.
5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티베트 토지개혁-집단화와 종교 탄압으로 59년 3월 ‘라싸 봉기’가 일어났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 망명 정부인 ‘중앙 티베트 행정부’를 수립했다. 유엔은 라싸 봉기 이후 일련의 결의로 중국의 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티베트인의 인권과 자치권 침해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17조 협정 자체를 국제법상 무효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지금도 없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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