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비행기 사고를 막은 건 '이 금속' 때문이다?

최초의 여객용 제트기 코메트는 취항 초기에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신규 취항 1주년을 맞은 1953년 5월 2일, 인도 델리에서 코메트 여객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며 추락했다. 1954년 1월 10일, 이번에는 이탈리아 로마 상공에서 코메트 여객기가 공중분해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항이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4년 4월 8일에 코메트 여객기가 나폴리 상공에서 폭발해 분해되는 사건이 또 벌어지자 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제트 여객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최초의 여객용 제트기 '코메트' (1953년 촬영)
무엇이 문제였을까?
금속에서 원인을 찾아라!

철저한 조사를 거친 끝에 코메트의 아킬레스건이 드러났다. 바로 금속피로가 원인이었다. 금속피로는 오랫동안 금속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내부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생겨 강도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가령 가느다란 철사 한 줄을 반으로 끊어야 한다고 해보자. 이때 양쪽 끄트머리를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비틀면 철사가 끊어지는데, 바로 금속피로의 원리 때문이다. 비행기같이 육중한 물체에 금속피로는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수 있다. 단단한 제방도 개미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속담처럼 비행기 표면에 난 가느다란 실금에 예상치 못한 외력이 작용하면 비행기가 통째로 부서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비행기처럼 고온의 환경에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엔진에는 너무나 혹독한 환경이다. 코메트는 대부분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비행기 동체를 만들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비행기 소재 조합 방식을 그대로 따랐지만 고속으로 비행하는 제트기는 동체가 가벼워야 하므로 알루미늄의 비율을 높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코메트는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알루미늄의 금속피로 저항력은 고온의 조건에서 전혀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메트 여객기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부터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타이타늄'으로
문제를 해결하라!
보잉 707-120 (1958년 촬영)

코메트를 반면교사로 삼은 보잉은 1958년에 보잉 707 동체 전체에 81.6킬로그램의 타이타늄 합금을 사용해 타이타늄 합금 비행기 제작에 성공했다.

타이타늄 합금은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고온의 환경에서도 금속피로를 잘 견디므로 강철과 알루미늄보다 훨씬 더 적합한 비행기 동체 소재다.

이후 항공 엔지니어들이 타이타늄 합금 가공 기술을 개발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타이타늄 합금 부품이 비행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코메트가 세 번이나 추락 사고를 일으켰는데도 제트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내심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모두 타이타늄 합금 덕분이다.

이후 비행기에 타이타늄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가 기술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보잉 707로 성공을 거둔 보잉은 1962년에 새로운 여객기 보잉 727을 제작할 때 타이타늄 합금 사용량을 590킬로그램으로 대폭 늘렸고, 보잉 777을 생산할 때는 5,896.7킬로그램까지 끌어올려 기체의 11퍼센트를 타이타늄으로 만들었다.

여객기보다 성능에 민감한 군용기에는 타이타늄을 더 많이 사용했다. 현재 미국 최고의 전투기인 F‐22 랩터 Raptor 는 양쪽 엔진에만 5톤의 타이타늄이 사용되며, 기체의 41퍼센트가 타이타늄으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다.

1960년대에 미국은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2시간 만에 도착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상 최초의 마하 3급 정찰기 SR‐71 블랙버드를 제작했는데, 이 정찰기는 기체의 95퍼센트가 타이타늄으로 만들어졌다. 이 정찰기를 쫓아올 만큼 빠른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퇴역 전까지 SR‐71 블랙버드는 단 한 대도 격추된 적이 없다. 다만 워낙 유지비가 많이 드는 탓에 퇴역 후 재생산되지는 못했다.

타이타늄과 비행기 제조업계는 지금도 함께 노력하며 인류의 항공사를 새로 써 내려가는 중이며, 이 과정에서 탄생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인류는 지구보다 훨씬 더 먼 우주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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