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을 맞은 '토란'

가을 들녘에 들어서면 논밭의 빛깔이 서서히 누렇게 물들고, 수확을 앞둔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인다. 이맘때면 땅속에서 감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채소가 있다. 바로 토란이다. 겉모습은 투박하고 껍질은 거칠며 만지면 미끄럽다. 손질할 때 점액질이 묻어나 손에 달라붙어 귀찮은 채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껍질을 벗기고 삶아내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부드럽고 은은한 고소함이 퍼지며, 오래 끓일수록 국물은 걸쭉해진다. 예전에는 밥 짓는 쌀이 모자랄 때 아이들은 뒷마당이나 논두렁을 뒤져 토란을 캐왔다. 삶아 소금에 살짝만 찍어도 든든했고, 무와 함께 끓여낸 국은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손질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돼지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사실 토란은 토란대라 부르는 줄기까지 귀한 식재료다. 껍질을 벗겨 삶아내 말려두면 겨울 내내 국거리로 쓸 수 있었다. 시래기나 무청처럼 토란대도 겨울 밥상의 중요한 자원이었다.
오늘날 가을 밥상의 별미로 불리며, 제철을 맞은 토란은 다시금 주인공이 되고 있다.
토란의 특징

토란은 천남성과에 속하는 구근류 채소로, 땅속에서 알처럼 뭉쳐 자란다. 작은 알갱이가 군데군데 붙어 있어 ‘토란알’이라고 불린다. 보통 9월부터 10월 사이 수확하는데, 서늘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해 논두렁이나 습지에서도 잘 자란다.
예전 농촌에서는 토란이 흔한 채소였다. 쌀이 귀하던 시절, 집집마다 토란을 캐서 삶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삶은 토란은 쫀득하고 고소해 밥 대신 먹기에도 좋았다. 무와 함께 끓여낸 토란국은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었고, 데쳐 된장에 무친 나물은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가을 반찬이었다.
그러나 토란은 손질이 번거로워 천대받기도 했다. 껍질을 벗길 때 끈적한 점액이 묻어나 손에 달라붙고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불편함을 참지 못해 토란을 가축 사료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천덕꾸러기’ 채소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편함 속에서도 토란은 가을철이 되면 어김없이 밥상에 오르며 사람들의 입맛을 책임졌다.
토란대라 불리는 줄기 역시 중요한 식재료였다. 껍질을 벗겨낸 뒤 삶아 햇볕에 말리면 겨우내 국거리와 무침 반찬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토란대 된장국은 서민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소박했지만 구수한 맛이 있어 사람들에게 익숙한 가을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토란의 영양 성분과 효능

토란은 작고 소박한 모양새와 달리 영양소가 풍부하다. 알갱이 속에는 전분이 가득해 포만감을 준다. 쌀과 비교했을 때 혈당을 천천히 올려 부담이 덜하다. 칼륨이 풍부해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압 조절에 도움을 준다.
식이섬유도 많아 장운동을 촉진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속을 편안하게 해 주는 성질이 있어 소화가 약한 사람들에게 좋다. 점액질 성분은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위염이나 속쓰림을 겪는 이들이 즐겨 먹기도 했다.
비타민 B군과 철분 역시 함유돼 있어 피로 해소와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준다. 무기질도 골고루 들어 있어 가을철 원기를 보충하는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토란대 역시 영양이 풍부하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아 뼈에 이롭고, 섬유질은 장내 환경을 개선한다.
조리와 보관법

토란은 손질이 번거롭지만 제대로 다루면 맛이 깊어진다. 껍질을 벗길 때 미끄럽지 않게 하려면 소금을 손에 묻히거나 고무장갑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껍질째 삶은 뒤 벗기면 훨씬 수월하다. 삶은 토란은 간장 양념에 조려내면 부드럽고 달큰한 조림이 된다. 소고기와 함께 끓여낸 토란국은 국물이 걸쭉하고 진해 가을철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토란대는 껍질을 벗겨 삶은 뒤 말려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건 토란대는 겨울철 국거리나 무침에 귀하게 쓰였다. 지금도 시골 장터에 가면 가을마다 말린 토란대를 손질해 내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흔하고 값싼 채소로 취급됐지만, 건강식 열풍이 불면서 토란의 인기가 높아졌다. 토란국 전문점이 문을 열고, 고급 한정식 반찬으로 토란 조림이 등장했다. 과거에는 무시당하던 뿌리채소가 이제는 제철마다 찾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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