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의 가격 인상이 도를 넘어섰다. 불과 몇 년 사이 국민차로 불리던 그랜저는 5천만원을 훌쩍 넘어섰고, 제네시스는 수입차보다 더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이게 국산차 맞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산차 가격 폭등의 이면에는 어떤 이유가 숨어있는 걸까.

2025년형 그랜저, 5천만원 시대 돌입
현대차가 출시한 2025년형 그랜저의 2.5 가솔린 풀옵션 모델은 무려 5,000만원을 돌파했다. 하이브리드 풀옵션은 6천만원에 육박하는 가격표를 달았다. 국민차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기본 트림인 익스클루시브 모델조차 3,768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그랜저 최고가 모델이 2,7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본 모델 가격이 당시 최고급 사양보다 비싸다. 불과 5년 사이에도 차량 가격은 평균 40% 이상 상승했다. 쏘렌토는 최저가 모델이 76% 올랐고, 최고가 모델도 55.7%나 인상됐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민들이 살 수 없는데 국산차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가격이면 수입차를 사겠다”, “국산차라는 타이틀이 민망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3천만원대 중반이면 중고 벤츠 E클래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제네시스, 벤츠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실화
더 충격적인 건 제네시스다. GV80의 인기 옵션 사양이 7,600만원에 달하면서 벤츠 GLE, BMW X5 등 경쟁 수입차보다 비싼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한국산 자동차에는 25% 관세가 부과되는 반면, 일본과 EU산 자동차는 15%로 낮춰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무너진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차량 가격에 관세를 그대로 반영하면서 동급 수입차보다 높은 가격표를 달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량 중 수입 물량 비중이 65%로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닛산 53%, 도요타 51%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관세 15% 적용 시 현대차와 기아의 연간 손실 비용은 총 6조 6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관세 25%가 적용됐다면 11조원이었을 테지만, 그나마 4조 4천억원을 절감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과 EU 브랜드와의 가격 격차는 여전히 벌어진 상태다. 이미 일본차와의 가격 차이가 좁혀진 상황에서 더 높은 관세는 가격 경쟁력 상실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가격 인상의 진짜 이유, 무엇이 문제인가
국산차 가격 인상은 단순히 물가 상승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한 해에만 11조 5천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자율주행,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 기술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면서 이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원자재와 부품 단가도 상승했다. 자동차 제조에 필수적인 철강, 알루미늄, 리튬 등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제조 원가가 크게 올랐다. 여기에 친환경 규제 강화로 전동화 부품 비중이 늘어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팩만 해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 이후 현대차와 기아도 고급화 전략에 올인했다. 디자인 품질을 끌어올리고, 실내 소재를 업그레이드하며, 최신 주행 보조 시스템을 탑재하면서 차량 한 대당 원가가 급증했다. 과거 국산차의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은 사라지고, 수입차 수준의 가격대가 형성된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6년형 연식변경 모델의 국내 판매 가격을 평균 2.56%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원가는 같은데 일부 부품만 바뀌는 연식변경 모델 출시는 한국 시장의 특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버티다가 결국 가격을 올린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에서는 매년 꾸준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비자는 어떻게 반응하나
소비자 조사 결과를 보면 국산차에 대한 신뢰도 문제도 드러난다. 국산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과잉 정비 및 오류 비율이 높아 소비자 불만이 많았다. 반면 수입차는 서비스 비용이 국산차의 2.7배에 달하지만, 정비 품질과 고객 만족도는 더 높게 나타났다.
2025년 올해의 차 선정에서도 국산차의 약세가 드러났다. 렉서스 ES가 국산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비용대비가치 1위, 상품성과 초기품질 2위를 기록하며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반면 국산차 브랜드들은 상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높다. 2025년 10월 기준 전체 시장 점유율이 74.3%에 달한다. 국산차 시장에서는 10대 중 9대가 현대차그룹 차량이다. 독과점 구조가 가격 인상을 더욱 쉽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입차 점유율은 2022년 19.7%로 역대 최대치를 찍은 뒤 소폭 하락했지만, 2025년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1~10월 수입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15.5% 늘면서 사상 처음으로 2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산차 가격이 수입차와 비슷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차라리 수입차를 사겠다”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전문가들은 국산차 가격이 당분간 하락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전동화 전환이 본격화되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R&D 비용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한국판 TSMC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국산차라는 이유로 애국 소비를 했던 시절은 끝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년 새 40% 오른 차값을 보면서 “국산차를 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오히려 수입 중고차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2025년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8,584만대로 전년 대비 2.1%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관세 문제가 변수로 작용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실적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매출은 늘었지만 관세가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정면 돌파 전략을 선택했지만, 가격 인상 없이는 수익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국내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품사들도 관세 인상에 따른 부품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해야 하는 처지라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국산차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기술력은 인정받지만 가격은 감당할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계속되는 한, 국산차 브랜드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차의 자리를 지키려면 가격 경쟁력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