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게이지 끌어올리기 바쁜 스트라이크밖에 모르는 바보 ABS [데이터 비키니]
볼 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SSG 선발 오원석(23)이 황재균 몸쪽으로 속구를 던졌습니다.
SSG 포수 이지영(38)은 공을 잡지 못했지만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은 이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판단한 상황.
이 경기 구심을 맡은 이계성 심판(47)이 삼진을 선언하자 황재균이 헬멧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퇴장 명령을 받았습니다.
황재균은 ABS 판단에 불만을 드러낼 게 아니라 1루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주자가 1루에 있었지만 2사 상황이라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ABS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1루를 밟을 수 있었지만 불평불만을 온몸으로 표출하느라 그 기회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ABS가 규칙을 너무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 심판은 이런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다르게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ABS 투구 추적 성공률이 99.9%에 달한다”고 제아무리 외쳐도 소위 ‘현장’에서 불만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26일 KBO는 ABS 투구 추적 데이터를 0.01cm 단위까지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류현진이 24일 경기 3회말 KT 조용호(35)에게 던진 세 번째 공은 홈플레이트 중간 지점을 스트라이크 존 하단 0.15cm 위로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홈플레이트 끝 지점에서는 존 하단을 0.78cm 차이로 벗어났기 때문에 볼이 맞이 맞는다는 게 KBO 설명입니다.
여기서 잠깐 영거리(영점) 사격 표적지를 한 장 보겠습니다.
탄착군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훈련병은 ‘크리크’(click)만 조절하면 조준점 근처에 탄착군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통계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정밀(精密)하기는 하지만 정확(正確)하지는 않다’고 표현합니다.
수산시장에서 이 저울에 물고기를 올려놓았더니 1200g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물고기 실제 무게는 얼마일까요?
실제 무게는 1000g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1000g이라고 나올 것이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정밀도가 높을 때는 신뢰도도 올라갑니다.
여기서 신뢰도가 높다는 건 이 저울이 계속 똑같이 틀릴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횟집 사장이 ‘이 저울은 0.01g까지 측정할 수 있고 고기를 100번 올려놓아도 계속 1200g이라고 나온다’고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럴 때는 저울 위에 살포시 1000g짜리 분동을 놓으면 그만입니다.
아니면 다른 저울에 횟감을 올려보자고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반면 현장에서 ABS에 대해 제일 크게 의심하고 있는 건 구장마다 판정 결과가 다르다 = 저울마다 무게가 다르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정확도가 의심스러울 때는 다른 저울을 써야 합니다.
투구에는 분동 같은 존재가 따로 없으니 이게 가장 타당한 방법입니다.
반면 ‘트랙맨’이나 ‘호크아이’를 전력 분석에 사용하는 구단도 있습니다 = 다른 저울이 이미 있는 겁니다.
스포츠투아이 관계자는 “우리도 교차 검증 차원에서 트랙맨 추적 결과를 비교하고 있다. 이렇다 할 차이점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KBO가 ‘ABS는 정확하다’고 말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다른 저울을 가져오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요?
ABS는 미리 입력한 기준에 따라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합니다.
ABS에 온전히 스트라이크 판정을 맡기려면 ‘스트라이크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만 했던 겁니다.
이 정의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 또는 통념과 다르다면 제아무리 정밀하고 정확하게 측정해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야구 규칙에 나온 스트라이크 존이 계속 바뀌고 그때마다 심판들의 해석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MLB 평균 타율이 거의 100년 동안 0.260으로 유지되는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고는 “심판들이 (야구 규칙에 나온) 스트라이크 존을 경악할 만한 일관성으로 해석하고 조절해 온 셈”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요컨대 인간 심판은 규칙에 나온 존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데도 ‘결과적 일관성’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KBO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구장마다 ABS 판정 결과에 차이가 날 확률 역시 ‘희박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만이 이어지는 건 스트라이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ABS는 오늘도 인간에게 ‘도대체 스트라이크란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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