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강화위의 파행은 왜? “문제는 돈이었다”
한국 축구에서 때 아닌 폭로전이 벌어졌다. 축구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도맡았던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이 홍명보 감독(55)의 내정에 불만을 품고 내밀한 이야기를 모두 쏟아낸 것이다.
전력강화위원 사퇴를 선언하며 “지난 5개월이 허무하다. 홍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내부에서 활동한 실무자인데도 몰랐다”고 주장한 박주호의 폭로성 발언은 가뜩이나 부정적이었던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굳게 입을 닫고 있었던 전력강화위원 A씨는 박주호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결국, 돈이 문제였다”고 혀를 찼다. 전력강화위 내부에서 줄기차게 외국인 지도자 선임을 위해 노력했지만, 명장이라 부를 만한 지도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 발목이 잡혔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가 외국인 지도자에게 지급할 수 있다고 공개한 연봉 가이드라인은 충격적이었다. 지난 3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최대 금액은 30억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협회가 전력강화위에 통보한 금액은 20억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A씨는 “우리는 제시 마쉬 감독 영입에 왜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정말 한국행에 진심이었다”면서 “협상에 나섰던 협회가 불발소식을 전했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 연봉으로 접촉해서 생긴 일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말하기 어렵지만 150만 달러(약 20억원)보다 훨씬 아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력강화위를 더욱 답답하게 만든 것은 이 금액도 지난 6월 제8차 회의에서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한 협회 직원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전력강화위가 제9차 회의부터 갑자기 국내 감독을 영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원인이기도 했다. A씨는 “차라리 이 금액을 일찍 알았다면 시간을 버리지 않고 현실적인 외국인 지도자를 찾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회가 뒤늦게 제시한 외국인 지도자 연봉 가이드라인은 최근 공개된 마지막 후보군의 이름값을 이해하게 만든다.
전력강화위는 마지막 10차 회의에서 거스 포옛 전 그리스 축구대표팀 감독과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시티 감독 그리고 그레이엄 아널드 호주 축구대표팀 감독, 홍 감독 등 4명을 최종 후보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협회의 연봉 가이드라인을 수락한 것은 바그너 감독이 유일했다. A씨는 “사실 감독들은 어느 정도 단가가 정해져있다. 아널드 감독은 언론을 통해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왔기에 후순위로 미뤘다. 이후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에게 1~3순위는 알아서 결정해달라고 위임했는데,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쉽게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다. 원래 정 위원장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홍 감독이 현실적이라는 판단 아래 1순위 후보로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감독 선임의 전권을 부여받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남은 후보군과 접촉한 결과 홍 감독 선임으로 결론을 지었다.
A씨는 “정해성 위원장는 정말 힘이 없었다. 사의를 표명할 때는 지친 나머지 입까지 돌아갔더라”면서 “돌고 돌아 홍 감독으로 갈 것이라면 차라리 그 때 결론을 냈어야 했다. 우리가 바닥에 버린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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