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상님들 30년 만의 대이동 시작됐다

강다은 기자 2024. 10. 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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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등 전국 공설 추모공원, 유골 봉안 30년 시한 줄줄이 도래
민간시설은 가격 비싸… 孝와 후대에 대한 부담 사이 고민 커져
최근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면서 수십 년 전 문을 연 전국 주요 공설 납골당들이 포화를 맞았다. 일부 납골당은 평균 30년(통상 15~45년)인 봉안 가능 기한이 도래한 유골에 대해 보관 연장을 위한 재계약에 나서거나 유족에게 반환하고 있다. 지난 2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 실내 봉안 시설의 한 유골함에 ‘안치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운호 기자

부산 금정구의 공설 봉안 시설인 영락공원에선 내년부터 매년 유골 1000~4000기가 ‘이사’해야 한다. 1995년 설립돼 유골 8만4000기를 봉안할 수 있는 이 추모 공원에선 화장(火葬)한 유골을 최장 30년 동안 봉안할 수 있는데, 내년 그 만기 시한이 닥치기 때문이다. 법률상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락공원을 비롯한 공설 추모 공원 대부분에서는 시설 포화를 막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15~45년으로 봉안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 영락공원 봉안 시설의 포화율은 현재 87.2%.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국가 유공자 등을 위한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꽉 차 더 이상 일반 시민은 이용할 수 없다.

‘유골 대이동’을 앞두고 유족들은 고민이 크다. 비교적 저렴한 공설 봉안 시설은 포화 상태가 많고, 비용도 2~10배 비싼 사설 시설로 옮기자니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경기도 한 공설 봉안당에서 계약 기간이 끝난 부모의 유골을 돌려받은 김모(71)씨는 “(부모님 유골을) 집 마당에 묻었다는 사람도 있고, 다른 납골당에 보냈다는 사람도 봤다”며 “내가 죽으면 관리할 사람도 없어 부모님 고향 땅에 뿌리려 한다”고 했다. 추모 공원 측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봉안 문의가 늘고 있지만, 오랜 기간 맡겨둔 유골을 찾아가지 않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부산시설공단 관계자는 “봉안 10~15년만 지나도 추모객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만기가 됐을 때 유골을 찾아가라고 안내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이 많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찾아가지 않는 유골은 절차를 거쳐 자체 처분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 따로 보관해야 하고, 나중에 혹시 모를 유족 항의가 있을 수도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장은 “전(全) 국토의 묘지화가 다시 우려되는 판”이라며 “장례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코로나 때와 같은 ‘장례 대란’이 만성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전국 유골 봉안 시설에서 고인의 유골을 맡아 보관하는 대략 30년 주기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매장(埋葬) 위주 장례 문화가 있다가 ‘전 국토의 묘지화’ 우려가 커지며 1990년대 중반부터 화장 문화가 활성화됐다. 흔히 ‘납골당’이라는 봉안 시설 등을 갖춘 추모 공원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나 새로운 유골을 받기 위한 기존 유골의 봉안 만기가 닥치면서 이른바 ‘조상님들의 대이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29일 경기 수원 영통구 수원시연화장의 실내 봉안당 곳곳에는 ‘봉안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00년에 설립된 이곳은 15년 계약 후 한 차례 연장해 최장 30년까지 유골을 봉안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영락공원은 최장 45년, 인천 부평 가족공원은 최장 30년 봉안할 수 있다.

당초 기한 없이 유골을 받아 봉안하던 전국의 추모 공원에선 수년 전부터 30년, 45년 등 최장 봉안 기간을 설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골을 받을 공간 확보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장례를 치르게 된 유족들은 난감하다. 거주지나 고인(故人)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원정 봉안’을 가기도 한다. 3년 뒤 조부모의 유골 봉안 만기 시점이 다가온다는 최모(57)씨는 “부모님이 아신다면 속상하겠지만, 자식들에게 증조부모 유골까지 챙기게 할 수 없어 형제들과 상의해 자연에 유골을 뿌릴 예정”이라고 했다.

◇화장률 93% 넘어... 앞으로 더 문제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 사망자 가운데 화장 비율(화장률)은 93.6%에 달해 보편적 장사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고령화 등으로 사망자도 쏟아지고 있다. 2014년 26만8000명이던 연간 사망자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2022년 37만3000명에 달했고 지난해 35만3000명, 올 들어 7월까지 20만6000명을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설립된 지 수십년이 지난 전국 공설 봉안당은 상당수가 포화 상태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은 지난 2022년 코로나 때 봉안 시설의 99.6%가 차 더 이상 봉안이 불가능해졌다. 현재도 95.3%가 포화된 상태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부산추모공원도 봉안 시설 포화율이 95% 수준에 달했다.

빈자리 안 보이는 납골당 - 고인을 모시는 장사 방식으로 화장이 일반화된 가운데 고령화로 인해 사망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전국의 납골당은 포화 상태다. 지난 2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의 야외 벽면에 설치된 봉안 시설이 거의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다. /고운호 기자

추모 시설들에서 매년 만기가 도래해 재계약이 필요한 경우의 10% 정도는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미조치 유골’이 된다. 한 봉안당 관계자는 “미처분 유골을 줄이기 위해 안내문도 붙이고 우편과 전화, 인터넷 등 여러 방법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주인 없는 유골은 더 늘고 있다”고 했다. 경기 이천 시립 추모의집은 무연고 유골 수를 줄이기 위해 만기 도래 1년 전부터 등기우편, 문자 등으로 유족들에게 알리고 있다.

인구구조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만큼 장례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에 있는 묘지만큼은 아니지만 봉안당, 수목장 등으로 구성된 추모 공원 역시 공간이 많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줘야 한다. 따라서 이보다는 산이나 바다 등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장례 관련 법에는 산분장과 관련한 규정이 없었지만, 내년부터 법 개정을 통해 산분장 개념이 제도화될 예정이다. 정부는 산분장을 장려하기 위해 구체적인 산분장 가능 구역 등을 지정할 방침이다. 한국장례협회에서는 꽃밭 등 특정 공간에 유골을 뿌리는 것으로 장례와 추모를 대체하는 ‘들꽃장’을 장려하고 있다.

◇”장례 문화 더 간소화해야”

제사 등 전통 문화가 간소화되는 추세에서 후손에게 봉안된 선대의 유골 관리를 맡기기도 난감하다는 반응도 많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골을 특정 공간에 보관하는 이유는 유족들의 상실감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함인데, 핵가족화로 추모할 가족도 많이 없는 현실”이라며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기리는 ‘디지털 추모 공간’을 활성화해 장례 문화를 아예 바꾸고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분장(散粉葬)

화장한 유해를 산, 바다 등에 뿌리고 표지를 두지 않는 장사 방법. 산은 장사시설 내 지정 구역이나 유족 사유지 등에, 바다는 양식장·항로가 아닌 육지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일정 구역 등에 뿌릴 수 있다. 강은 대부분 상수도 보호 구역이어서 권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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