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 70%와 기술 이전, 갈등의 불씨
인도 제조 거점에서 임금 70% 인상과 기술 이전 요구가 촉발점이 됐다. 노조는 급격한 물가 상승과 초과노동, 안전·복지 미흡을 이유로 급진적 인상안을 내걸었고, 공정별 기술 이전과 숙련 체계의 전환까지 요구 목록에 담았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한국 기업은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협상의 지렛대로 삼았지만, 현장의 긴장은 더 높아졌다. 노사 교섭은 쟁점이 분산되며 장기화 조짐을 보였고, 생산 차질과 납기 지연이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신뢰가 무너지면 영업은 없다”
국내 본사로부터 전달된 원칙은 간명했다. 계약과 약속, 안전과 보안 준수를 전제로 한 현지화가 ‘신뢰’다. 임금·근로조건은 협상 테이블에서 풀 수 있어도, 일방적 파업과 설비 봉쇄, 납기 파기, 핵심기술 이전 강요는 신뢰의 붕괴로 본다.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는 사업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삼성·LG·현대차 등 주요 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사업 철수를 공표했다. 이는 협상 카드가 아니라 경영 원칙의 발동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키웠다.

2주 만의 연쇄 충격
철수 선언은 즉시 경제 전반을 흔들었다. 불과 보름 사이 생산라인 정지, 하도급·물류·보안·급식 등 연관 산업의 일시 폐업이 잇따랐다.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합친 실직 규모는 수십만 단위로 불어났고, 대규모 산업단지의 신규 투자 계획은 멈춰 섰다. 수조 원 규모의 미래 프로젝트가 동결되면서, 지역 금융기관과 상업시설, 교육·의료 등 생활 인프라의 수익 모델이 동시에 흔들렸다. “14억의 내수”라는 수요의 바다는 공급망과 신뢰가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대체 투자 공백과 신용의 추락
일각에선 중국계 자본의 대체 투입이 공백을 메울 것이라 낙관했지만, 실제 이행은 더뎠고 핵심 공정은 비어 있었다. 글로벌 본사들의 리스크 관리 기준은 이미 작동 중이었고, 금융기관은 대출 심사를 보수화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는 정책 예측 가능성과 계약 집행 신뢰를 낮게 평가했고, 기업들은 보험료와 조달 금리 상승으로 추가 비용을 떠안았다. 도시의 유령화는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학교·상점이 연쇄 폐업하며 생활 생태계가 급속히 황폐해졌다.

사과가 돌려놓지 못한 것
노조 지도부의 공개 사과, 정부 수반의 유감 표명은 갈등의 상징적 장면이 되었다. 그러나 투자와 생산은 감정이 아니라 제도와 예측 가능성 위에서 돌아간다. 현지 법·제도의 일관성과 분쟁 해결 속도, 노동·환경·세제의 확정성이 복귀 판단의 최종 변수다. 한국 기업들은 “정책 일관성과 계약 집행력의 수치화”를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단기 유화 메시지보다, 중장기 제도 보정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도식이 명확해졌다.

신뢰를 설계하고, 지속 가능 협력을 다시 세우자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대규모 제조 협력은 임금 숫자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노사정이 함께 지킬 가드레일, 분쟁의 신속한 중재·판정, 기술과 지재권의 경계, 안전·복지의 최소 기준이 미리 합의되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은 가격이 아니라 신뢰로 유지된다. 분쟁의 교훈을 제도와 표준으로 고정해, 재발 방지와 상생의 토대를 차근히 쌓아가자. 그러면 숫자의 크기보다 신뢰의 두께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함께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