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밥값 200만원 안 받고 보내줬는데.." 20년 뒤 식당 앞에 선 검은 승용차

예전 동네 밥집에는 외상 장부가 있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이름을 적어 두면, 주인은 형편이 풀릴 때 갚으라며 장부를 덮어 주곤 했습니다. 그 장부 한 장에는 밥값보다 훨씬 큰 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윤순이 씨는 올해 일흔넷입니다. 30년 동안 고시촌 골목에서 '순이네 백반'이라는 작은 밥집을 했습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순이 씨는 그 밥집 하나로 두 딸을 키워 시집보냈습니다.

순이 씨의 백반은 단돈 몇천 원에 반찬이 여덟 가지나 나왔습니다.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 밥을 먹으며 하루를 버텼습니다. 순이 씨는 학생들 얼굴만 봐도 오늘 공부가 잘됐는지, 집에서 돈이 안 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다섯 시부터 밥을 안쳤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담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부었습니다. 그래도 순이 씨는 학생들이 "이모,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소리에 힘을 냈습니다.

돈이 없어 굶는 학생에게는 슬그머니 밥을 한 그릇 더 퍼 주었고, 시험에 떨어져 우는 학생에게는 아무 말 없이 계란말이 한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저러다 순이네 망한다"며 걱정했지만, 순이 씨는 "밥 굶는 놈 공부가 되겠냐"며 웃어넘겼습니다.

20년 전, 순이 씨의 밥집에 매일 오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경상도 시골에서 올라와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이태호라는 학생이었습니다. 태호는 말수가 적고 늘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펴 놓고 밥을 먹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태호가 밥값을 외상으로 달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집에서 보내 주던 돈이 끊긴 것이었습니다. 태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이모, 죄송합니다. 시험 붙으면 꼭 갚겠습니다."

순이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태호의 밥그릇에는 밥이 조금 더 높게 담겼고, 계란 프라이가 하나씩 더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외상 장부에 적힌 태호의 밥값은 2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태호는 밥을 먹고 나면 꼭 빈 그릇을 주방까지 가져다 놓았습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말없이 테이블을 닦고 물컵을 채웠습니다. 순이 씨가 "공부나 해라" 하고 말려도 태호는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요"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태호는 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세 번째 낙방이었습니다. 태호는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태호는 순이 씨의 밥집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모, 저 이제 고향에 내려갑니다. 외상값은 어떻게든 벌어서 꼭 갚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순이 씨는 외상 장부를 꺼내 태호의 이름이 적힌 장을 북 찢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밥값은 됐다. 붙으면 그때 갚고, 못 붙어도 어디서든 밥 굶지 말고 잘 살아라. 그럼 그걸로 갚은 거다."

태호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순이 씨는 태호에게 마지막으로 뜨끈한 김치찌개 백반 한 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그 뒤로 태호의 소식은 끊겼습니다. 순이 씨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 청년을 점점 잊어 갔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밥집을 거쳐 갔고, 그중에는 시험에 붙어 인사하러 온 학생도, 소식 없이 떠난 학생도 있었습니다.

가끔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펴 놓고 밥을 먹는 학생을 보면 순이 씨는 태호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다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순이 씨는 괜히 그 학생의 밥그릇에 밥을 한 숟가락 더 얹어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시촌도 많이 변했습니다. 사법시험이 없어지면서 학생들이 하나둘 떠났고, 골목에는 빈 가게가 늘었습니다. 순이 씨의 밥집도 손님이 줄어 하루에 몇 그릇 팔기도 어려운 날이 많아졌습니다.

올해 여름, 순이 씨는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이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건 무리라고 했습니다. 딸들도 이제 그만 쉬시라며 엄마를 말렸습니다. 순이 씨는 고민 끝에 30년 지킨 밥집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순이 씨는 30년 동안 쓴 냄비와 그릇을 하나씩 정리하며 그동안 거쳐 간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서랍 속에서는 낡은 외상 장부도 몇 권 나왔습니다. 대부분은 이미 갚았다고 줄이 그어져 있었지만, 끝내 갚지 못하고 떠난 이름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달 첫 주 토요일, 밥집 영업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순이 씨는 단골손님 몇 명에게 마지막 밥을 차려 주고, 저녁 무렵 가게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가게 앞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50대 초반의 남자였습니다. 남자는 가게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간판을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이모, 저 기억하세요? 구석 자리에서 책 펴 놓고 밥 먹던 태호예요."

순이 씨는 행주를 쥔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20년이 지나 얼굴에 주름이 생겼지만, 쑥스럽게 웃는 그 눈빛은 그대로였습니다.

태호는 고향에 내려간 뒤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다시 공부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3년 뒤 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지방의 한 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합격하고 나서 바로 찾아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모한테 밥값 200만 원만 갚고 끝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모가 주신 건 밥이 아니라 제 인생이었으니까요. 제대로 갚을 수 있을 때 오려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이렇게 늦어졌어요."

태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구겨졌다 펴진 흔적이 가득한 외상 장부 한 장이었습니다. '이태호'라는 이름 아래 날짜와 금액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모가 그날 쓰레기통에 던지신 거, 제가 밤에 다시 와서 주워 갔어요. 20년 동안 지갑에 넣고 다녔어요. 힘들 때마다 이걸 꺼내 봤어요."

태호는 하얀 봉투 하나를 순이 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순이 씨가 손사래를 치자 태호가 말했습니다. "이모, 돈이 아니에요. 열어 보세요."

봉투 안에는 장학금 증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이네 밥값 장학금'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10년 동안 형편이 어려운 수험생 열두 명에게 매달 밥값을 지원해 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모가 저한테 밥 굶지 말고 잘 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대로 밥값을 갚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모한테 돈으로 갚으면 이모가 안 받으실 것 같아서, 저 같은 학생들한테 대신 갚았어요."

순이 씨는 증서를 손에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30년 동안 퍼 준 밥 한 그릇이, 찢어 버린 장부 한 장이, 열두 명의 청년에게 따뜻한 밥이 되어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태호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의 편지 묶음도 함께 건넸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순이 이모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검사와 공무원이 된 청년들의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순이 씨는 마지막으로 가스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태호에게 20년 전 그날처럼 김치찌개 백반 한 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계란 프라이도 하나 더 얹었습니다. 태호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모, 세상에서 이 밥이 제일 맛있어요." 순이 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30년의 고단함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은 가난한 이웃들이 서로에게 건넨 작은 친절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 모음입니다. 연탄 한 장의 온기처럼 작은 선행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데우는 불씨가 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친절은 당장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친절은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언젠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집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밥 한 그릇,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듭니다.

올가을 순이 씨는 딸들과 함께 관악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산비탈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나뭇잎 사이로 늦은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졌습니다. 순이 씨는 30년 동안 바라만 보던 그 산길을 처음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출처 : '연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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