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설계 전문가가 소개하는 건축조명의 세계_ 3편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지난주, 푸근한 회색빛으로 물든 구름이 눈을 묵직하게 뿌리던 날이었다. 건축 조명설계 신청서에 쓰인 낯익은 주소로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운전해 가면서 어린 시절 큰댁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40년 전이다. 당시 최신의 56평 고급 아파트의 거실에서는 제사나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큰 집 형님들과 놀곤 했다. 동 간격이 넓어 1층의 너른 주차장과 여유 있는 녹지는 쾌적한 공원으로 추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귀하게 맞이하며 내어주신 다과와 함께 건축주의 박사과정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나 아드님이 나와 단대부고 동문이라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창밖의 설경과 어우러지는 훈훈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우리 연구소의 전문건축조명 시스템을 적용하려면 천장높이를 2.2m로 낮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소방법이 엄격하기 전의 건축이라 소방 스프링클러 배관도 없기에 지금 보고 있는 2.3m의 천장높이에서 조금도 건축 입면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애써 서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엊그제 서울의 또 다른 건축주가 최근 분양받은 아파트 현장 미팅에서도 천장 높이부터 확인했다. 2.3m에 가운데만 우물천장을 파 놓고 직부등 하나 덩그러니 달린 구조였다. 한국의 대부분 주거 공간의 전형적인 ‘1실 1등’의 조명 환경이다. 결혼 8년 만에 마련하는 소중한 내 집이라며 이렇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 건축주의 휴대전화 속 인스타그램 사진은 우물천장 가운데 조명이 내장된 하얀색 실링팬이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는 듯 맹랑하게 돌고 있었다. 강화된 소방법 덕분에 그나마 여기는 소방 스프링클러 배관을 위한 설치 공간이 확보되어 천장높이 손실 없이 전문조명 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40년 전이나 최신 아파트나 결국 천장높이는 질적, 정량적 변화가 크게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주레조(Valerie Gelezeau)가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한국은 세계에서 공공주택 주거율이 가장 높다고 하는,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이다. 한국 아파트는 빠른 산업화와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도시에 필요한 주거 공간의 양적 확충에 큰 공헌을 한 공동주택이다. 하지만 보다 적은 자원과 비용으로 공간을 양산하기 위해 낮은 층고를 적용하고 건설사의 비전문적이고 획일화된 조명방식이 적용되어 왔다.
이렇게 선택지가 한정적이었던 국내 주거 공간 조명설계 관행을 바꾸고 체계적인 전문 건축 조명 방식을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건축화조명 기법을 제안해왔다. 국내 일반적인 주거 공간에 사용하기 적합한 사례를 필자의 졸저 <주거공간 조명디자인과 시뮬레이션>(2014)를 통해 발표했다. 그 책에서 처음 소개했던 ‘코브’, ‘코니스’, ‘밸런스’ 등의 건축화조명 방식을 우리 연구소에 의뢰 들어온 조명프로젝트에서는 특수한 국내 조명환경에 적합한 설계와 시공방식을 개발하며 10년 넘게 적용해왔다. 그 현장에서 고민하고 느껴왔던 것을 방식별로 소개하고자 한다.
코브[우물천장]조명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당구장에 가면 “300 이하 ‘마세이(찍어치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초보가 당구봉을 세워 찍으면 당구대를 망가뜨리게 되니 당구장 주인이 규제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천장 높이 2,700㎜ 이하 코브(우물천장) 조명 금지”라고 우리 연구소의 설계사무실 벽에도 붙이고 싶다. 건축주와 상담할 때 조명 전문가가 아니라면 현장에서 코브(우물천장) 조명을 진행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건축주의 결정에 도움을 주고자 당구장 사례를 응용해 본다. 우리 연구소에 건축 조명설계를 의뢰하고 진행하는 분들은 적어도 조명에서는 ‘묻지마 우물천장’과 같은 획일적인 설계 방식에 의구심을 갖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축주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르니 평면도를 펴놓고 거실에 코브(우물천장) 조명을 그려와 ‘이렇게 하고 싶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3~2.4m 남짓한 층고에 억지로 코브(우물천장) 조명을 만들고 구겨 넣으면 오히려 낮은 천장 높이가 더욱 강조되어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앞서 언급한 2014년 책에서 ‘낮은 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코브 조명 연출법’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다. 굳이 하겠다면 해볼 수도 있다는 정도이지 전문가의 완성작업으로 권장할만한 조명설계는 아니다. 오히려 낮은 천장 높이에서는 코브 조명을 대체하면서 공간의 시선 비중을 천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하기 위한 다른 건축 조명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필자의 책에서 공부하면서 알고 있는 건축주들은 마이너스 옵션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조명 인테리어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파트라면 유행하는 샹들리에나 실링팬을 넣기 위해 2,300㎜ 천장높이에서 억지로 코브를 하는 경우도 많다. 샹들리에나 실링팬 모두 천장높이가 높은 유럽이나 해외 건축공간에 사용해왔던 오브제로 현재 한국의 낮은 천장 조건에는 사용하기 부적합하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2015년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모두가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왔던 한국의 주거 환경은 그때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40년이 지나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려니 여러 문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는 잘 몰랐다.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우리 삶의 공간을 하나씩 바꾸어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코니스 조명
코니스는 벽 전체를 밝혀주는 건축화조명 방식으로 전문 건축조명을 위한 별도의 장비 없이도 벽을 밝혀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낮은 천장높이여서 코브를 만들지 못할 때도 벽으로 시선을 분산시켜 공간감을 확보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며 효율적이다. 하지만 배광의 특성상 마감의 퀄리티가 민감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에 조명 시스템의 출력은 물론이고 빛이 닿는 면의 상태나 마띠에르(재질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 때문에 공간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공팀과의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입면 상 광원 설치 방향을 선택할 방법이 4~5가지 이상이다. 현장경험이 많은 노련한 설계자가 아니면 벽에 불쾌한 음영을 남기게 되니 코브 보다 난도가 높고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특히 층고가 5~6m를 넘는 실내외 벽에 시공한다면 전문적인 건축조명설계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밸런스 조명
구조물을 두고 아래위로 조사하는 빛이 특징인 밸런스는 공공시설이나 상업공간에서는 복도나 파사드(입면)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거공간에서는 주로 거울이 설치된 욕실의 상부장의 위아래로 바타입의 조명으로 설치하는 사례가 많다.
각각의 건축화조명 방식은 장단점과 유의할 점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러 공간적 제약과 기존의 획일적인 조명 환경의 영향으로 그저 단조로운 기존 실내공간에 모양을 내기 위한 장식적인 관점에서만 활용되었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내용대로 정확한 목적별로 구분하여 설계한다면 더 쾌적한 조명 환경을 연출할 수 있다. 주택의 경우는 건축사, 건축주와 협의만 잘 되면 실내에서 높은 천장높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덕분에 주택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여 설계자로서 높은 완성도를 만들기 유리하다. 반면, 아파트처럼 낮은 천장에 대한 압박은 덜 하지만, 높아진 실내 공간의 높이와 함께 조명설계도의 난도 역시 높아지고 전문적인 설계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높은 천장을 만드는 박공지붕이나 수직으로 확장된 공간의 깊이도 고려하면 자연광 유입이 좋은 공간일수록 내부 깊은 음영에 대한 주간 조명(Day Lighting)이나 시선을 방해하는 요소 적정한 차광(遮光)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조명은 어렵다. 해외에서 이 분야 최고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한 지 25년이 다 되어 가기에 이제는 전문가 소리를 듣고 있지만 늘 현장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만큼 재미와 보람도 있기에 그만둘 수 없는 이 일만의 재미와 매력이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지도 15년이 넘어가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질문이 쏟아진다. 특히 현장 실무자들의 문의 중에는 단편적인 조명의 질문을 뜬금없이 해오는 경우가 많다. 거실에 코브를 하려는데 천장에서 얼마나 띄워야 하냐고 하는 식이다. 질문자의 심경을 이해는 하면서도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내 현장의 조건도 몇 번씩 마감재까지 분석하며 세밀하게 조율하고 테스트하면서 설계하는데 책임도 못 지면서 남의 현장에 딱 잘라 얼마로 어떻게 하라고 어설프게 조언하면 안 될 것 같아 말을 아끼고 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미쉐린의 별을 헤아리고 동물복지까지 고민하며 비건 식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이 시대에 우리 삶의 주거 공간 문화는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얼마나 많은지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 좋은 공간 없이 쾌적하고 완성도 높은 조명 환경은 기대할 수 없기에 조명장이로서 건축사나 시공사의 협업 과정을 늘 고민하고 있다. 40년 전 잠실의 그 아파트에 사셨던 큰아버지는 지난달에 돌아가셨다. 6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1년 정도 큰댁에서 살았던 나는 더욱 그 시절부터 인자하게 잘 대해 주셨던 큰아버지의 미소가 더욱 그리운 날이다. 모든 것이 인연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모르지만, 그 건축주에게 더 잘해드리고 싶다.
글과 사진_ 차인호 교수 :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3월호 / Vol.313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