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베스트바 50 in 홍콩] ②아시아 최고바텐더상 거머쥔 김도형 제스트 오너 바텐더
아시아 바텐더들이 직접 뽑은 최고의 바텐더는 김도형 제스트 오너바텐더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 로즈우드호텔에서 ‘2024 아시아 베스트 바(bar) 50’ 시상식이 열리기 전날부터 홍콩섬 번화가 소호 골목에서는 “한국 바 ‘제스트’가 이번에 1위를 하지 않겠냐”는 예측이 흘러나왔다. 그날 밤, 언덕 계단길을 따라 트렌디한 바와 가게들이 밀집한 소호 지역에서는 아시아 각국에서 온 바텐더들이 ‘바 호핑’을 하며 전야제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의 화두는 시종일관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홍콩의 아성을 올해 한국이 무너뜨릴 수 있을지”였다.
제스트는 폐기물 없는 칵테일을 만든다는 의미인 ‘제로 웨이스트’의 줄임말이다. 3년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 플라스틱, 알루미늄이 나오지 않도록 토닉워터 등을 직접 제조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테마로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글로벌 바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아시아 베스트 바 랭킹 48위에 진입하더니 지난해에는 5위로 껑충 뛰어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바 문화’를 비교적 늦게 받아들인 한국은 홍콩, 싱가포르, 일본 도쿄보다 ‘후발주자’로 분류된다.
바텐더들의 기대감은 다음날 세리머니에서도 이어졌다. 시상식 현장에서 만난 김도형(34) 제스트 오너 바텐더는 “내심 이번에 우리가 1위를 하고, 내년에는 베스트 바 세리머니가 서울에서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시상식에 모인 25여명의 한국 바텐더들과 취재진도 같은 마음이었다. 기대와 흥분은 그가 ‘바텐더들이 뽑은 최고의 바텐더’상을 거머쥐자 더욱 커졌다.
“진짜 제스트가 1등 하는거 아니냐”는 말이 한국어로, 영어로 터져 나왔지만 이날 아쉽게도 ‘바 선진국’이자 개최국인 홍콩의 ‘바 레오네’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래도 제스트를 역대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려놓은 동시에 한국 최초로 아시아 최고 바텐더상까지 차지한 그에게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활약이 대단하다. 비결이 뭔가.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놓은 덕분이다. 한국의 순위가 상위권까지 올라간 것은 최근이지만, 아시아 베스트 바 50이 시작된 2016년부터 르챔버, 엘리스 등 서울의 바들이 꾸준히 50위에 들어갔다. 9년 연속 50위권에 꾸준히 꼽히는 바는 아시아에서도 5개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새 길을 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텐더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베스트 바 50에 선정된다는 것은 바텐더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명예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다. 특히 업계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고 여겨져 뿌듯하다. 비즈니스적으로도 큰 효과를 본다. 우리도 2년 전 아시아 베스트 바 순위(48위)에 처음 들어가면서 전체 손님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시상식 분위기가 꼭 콘서트 현장 같다. 모두가 서서 환호하는 시상식은 처음이다.
△식음료 업계의 시상식 가운데 아시아 베스트 바 50이 가장 흥이 넘친다. 레스토랑 시상식은 셰프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런지 앉아서 엄숙하게 축하하는 분위기인데, 바텐더들은 확실히 바이브가 다르다. 또 아시아 바텐더끼리는 모두 친구다. 게스트 바텐딩 등을 하면서 자주 교류한다. 아는 사람들이 상을 받으니 더 축하하고, 축제를 즐기려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아시아 최고의 바로 ‘바 리오네’가 선정됐다. 결과를 인정하는지.
△1위가 리오네여서 인정한다. 오너 바텐더 로렌조는 서울 광화문 포시즌호텔 찰스H에서도 바텐딩을 했던 친구다. 로렌조가 이번에 1위 기념 인터뷰를 할 때도 한국에서의 경험을 언급해 에너지를 느꼈다. 로렌조 같은 훌륭한 바텐더 덕분에 한국의 바 신도 길이 잘 닦인 것 같다. 홍콩에 가시는 분들은 바 리오네를 한 번쯤 방문해보시라고 추천한다.
-한국의 바 문화는 요즘 어떤가.
△많이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바 문화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성장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다 보니 집에서 좋은 술을 마시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자연스레 바를 찾는 이들도 증가했다. 이런 환경이 바 문화의 성숙으로 이어진 것 같다. 팬데믹 이전에는 바에서 중국인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좋은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칵테일의 수준은 이제 전 세계가가 상향 평준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바가 좋은 바라고 생각한다. 내가 칵테일 한 잔을 마신다면 왜 하필, 꼭 이곳에서 마셔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줄 수 있는 바가 좋은 바다.
-제스트는 좋은 바인가.
△그렇다. 제스트가 전하려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신다. 우리는 환경과 지역사회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장재가 나오지 않도록 농장에서 직접 허브, 채소 등을 받아 자체적으로 스피릿(진)을 만들고, 또 업사이클링해 탄산음료, 토닉워터 등을 제조한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 폐기물이 없는 '순환형 바'라는 우리 철학에 손님들이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다.
-아시아 베스트 바 50을 보니 한국의 바텐더는 이제 글로벌한 직업이 된 것 같다.
△맞다. 세계 각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은 10년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꾸준히 공부했다. 지금 바텐더들에게 영어는 필수가 됐다.
-홍콩을 능가할 만한 한국 바만의 매력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한국 바텐더들은 한국인 특유의 따뜻함, 정이 있다. 바보 같을 정도로 마음까지 다 퍼주는 환대를 한다. 또 기본적으로 한국의 술을 활용한 메뉴가 많다. K바텐더들의 ‘정’과 K칵테일의 다양성,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홍콩=심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