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 밀양 영남루

임명진 2026. 1.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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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제일 가는 누각', 아랑 전설 더불어 밀양 관광 명소
밀양 도심을 휘감아 유유히 흐르는 밀양강. 그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절벽 위에 고풍스러운 자태로 영남루가 우뚝 서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영남루의 풍경도 멋있지만, 드넓은 누각에 오르면 마치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밀양강과 도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도 가히 일품이다.

영남루 내부에 걸려 있는 '영남의 제일가는 누각'을 뜻하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큰 현판이 영남루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영남루
영남제일루 현판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혀

영남루는 오늘날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손꼽는다.

건물 자체의 조형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은 다른 누각이 따라 올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23년에는 60여 년 만에 보물에서 국보로 재승격했다.

도내에서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 통영 세병관에 이어 네 번째로 목조건축물 국보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742~765년) 때 큰 사찰이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한다. 이후 고려 공민왕 재위 기간인 1365년에 사찰 터와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다시 고쳐 지어 '영남루'라고 이름 붙였다.

영남루는 임진왜란을 비롯해 전쟁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1844년 동서쪽에 각각 침류각과 능파각을 배치하고, 각각의 건물을 연결하는 계단식 통로인 층층각을 설치해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

층층각은 각각의 건물의 지붕이 층층이 겹친 형태로 매우 독특한 외관에 달월 자를 닮아 '월(月)랑'이라고도 불린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누각을 떠받치는 기둥의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탁 트인 개방감과 함께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둥과 연결된 건물 안쪽 윗부분에는 화재 예방의 염원을 담은 용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영남루
아랑각


◇당대 문인들의 찬사, 수백개 현판으로 남아

영남루는 중앙 정부에서 내려온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무는 공식 숙소인 객사의 부속 누각으로 사용됐다.

객사는 왕의 위패를 모시고 공식 행사를 하던 곳이기에 대개 고을에서 가장 경관이 좋고 권위 있는 위치에 세워졌다. 영남루는 밀양도호부의 객사였던 '밀주관(密州館)'에 부속된 누각으로 귀빈을 대접하던 공간이었다.

특히 수려한 경관 덕분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방문해 시문을 남긴 장소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한때 이들이 남기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300여 개에 달했다고 전한다.

이색, 문익점, 정지상을 비롯해 하륜과 김종직, 이황 등 내로라하는 당대 선비들이 영남루에 올라 시문을 남겼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영남루를 방문한 이유는 밀양이 한양과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에 위치해 오가는 관리나 사신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요충지였으며 경치가 빼어나 여독을 풀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영남루는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불리는 밀양 아리랑의 노랫말에도 등장한다. 밀양 아리랑의 탄생 배경에는 영남루와 관련된 비극적인 '아랑 전설'이 얽혀 있다.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의 딸이었던 아랑이 영남루에 달구경을 나왔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아 정조를 지키려다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다. 이후 부임하는 부사마다 부임 첫날 아랑의 원혼을 만나 죽어 나갔으나 담대한 신임 부사가 아랑의 원혼을 풀어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밀양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한 노래가 밀양 아리랑의 기원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영남루 아래에는 아랑을 기리는 사당 '아랑각'이 애절한 사연을 담고 서 있다.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 애화 전해오네….'(밀양 아리랑 중)

흥미로운 점은 영남루에 얽힌 아랑 전설은 슬프고 비극적인 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반면, 밀양 아리랑은 빠르고 경쾌한 가락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슬픔을 신명으로 승화시킨 우리 민족의 독특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아랑각


◇영남루는 밀양 역사의 공간

영남루는 밀양의 독립운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영남루 경내에 있는 천진궁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옥사로 사용된 아픈 역사가 있다.

원래 천진궁은 단군과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신 신성한 공간으로 일제는 민족의 정기가 서린 천진궁을 의도적으로 옥사로 사용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꺾으려고 했다.
 
영남루 경내에 있는 천진궁


이때 수많은 밀양의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했지만, 또다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이는 밀양시가 전국의 지자체에서 가장 많은 독립 유공자를 배출한 대표적인 항일운동의 도시로 평가받는 이유다.

영남루 부근에는 밀양읍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수로인 '해천'이 자리하고 있다. 이 해천 부근에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등 독립운동가의 생가터가 밀집해 있어 독립운동가 배출 밀도가 매우 높다. 순국선열의 희생정신과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천 일대는 오늘날 항일운동 테마거리로 조성됐다.

기나긴 시간 밀양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한 영남루. 그 속에 담긴 밀양 사람들의 의로운 기백은 도시의 역사와 함께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임명진기자·취재도움=밀양시

 
영남루 야경

 
 
영남루 전경
 
 
영남루의 내부에 걸려 있는 영남제일루 현판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 도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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