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멕시코와 2-2로 비겼다. 스코어만 보면 팽팽한 승부였지만, 흐름을 놓고 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후반에 손흥민과 오현규가 연속골을 넣으며 경기를 뒤집었고, 끝까지 잘 버텼다면 19년 만의 멕시코전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추가시간에 실점하며 승리가 무승부로 바뀌었다. 미국 원정 2연전 최종 성적은 1승 1무. 결과는 나쁘지 않다. 내용은 더 나아졌다. 그리고 숙제도 분명해졌다.
이번 경기는 선발부터 과감했다. 홍명보 감독은 미국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꺼냈다. 김민재와 이한범만 남기고 9명을 바꿨다. 최전방엔 오현규, 2선엔 이강인과 배준호. 중원은 박용우와 ‘파이터’ 옌스 카스트로프가 짝을 이뤘다. 손흥민은 벤치에서 시작했다. 초반은 어려웠다. 멕시코의 압박이 강했고, 관중석 분위기도 사실상 ‘원정 속 홈’이었다. 전반 22분 라울 히메네스에게 먼저 실점했다. 라인의 간격이 벌어지고, 세컨드 볼 관리가 느슨해진 대가였다.

후반이 시작되자 흐름이 달라졌다. 손흥민과 김진규 투입이 깔끔하게 통했다. 손흥민은 들어오자마자 왼쪽 채널을 흔들었다. 후반 20분, 김문환의 크로스를 오현규가 머리로 떨궈주자 손흥민이 번개 같은 왼발로 꽂았다. 이 한 방으로 경기의 공기가 바뀌었다. 10분 뒤에는 이강인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찔러준 스루패스를 오현규가 받아, 수비수 다리 사이로 낮게 찌르는 영리한 슈팅으로 역전까지 만들었다. “이강인을 왜 쓰나?”라는 질문엔, 답이 이미 그 한 패스에 있었다.
오현규는 이 장면 하나로 충분했다. 연계, 침투, 마무리까지 스트라이커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최근 분데스리가 이적 좌절로 마음고생이 컸겠지만, 몸이 말해줬다. 강한 몸싸움, 부지런한 움직임, 결정력. “내 무릎 멀쩡하다”라는 메시지가 그대로 전해진 세리머니였다. 역전골 이후에도 전방에서 버티고, 뒤로 연결하는 장면이 돋보였다.

손흥민의 기록도 함께 쓰였다. 오늘로 A매치 136경기. 차범근, 홍명보와 함께 남자 선수 최다 출전 공동 1위다. 골은 통산 53호. 차범근의 58골과는 5골 차. 무엇보다 플레이가 가벼웠다. MLS로 옮긴 뒤 시차·이동 부담이 줄면서 컨디션이 선명해졌다. 미국전 1골 1도움, 멕시코전 1골. 존재감은 여전했다.
좋았던 점은 분명하다. 첫째, 교체 한 방으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손흥민·이강인·김진규 투입 후, 볼의 방향과 속도가 바뀌었다. 둘째, 역습 루트가 살아났다. 풀백(윙백)의 빠른 전진 → 타깃의 떨어뜨림 → 2선 침투, 혹은 중원에서의 직선 스루패스. 미국전에서 예고된 설계가 멕시코전에서도 통했다. 셋째, 중원의 새 얼굴도 희망을 보였다. 카스트로프는 출전 시간이 길지 않았어도 싸움 자체를 즐겼다. 인터셉트·태클 타이밍이 좋고, 볼을 빼앗긴 뒤 재압박도 빠르다. 황인범 공백에서 ‘에너지 플러스’ 옵션이 생겼다.

그럼에도 숙제는 남는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뒤로 물러서는 수비”다. 앞에서 시비 걸듯 막아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라인이 박스 앞까지 주저앉는 순간 상대는 박자 맞춰 두드린다. 오늘 추가시간 실점이 그 결과다. 또 하나, 세컨드 볼과 리바운드 상황 대처가 느렸다. 첫 공중 경합에서 이겨도 두 번째 볼을 상대에게 내주면 압박이 다시 시작된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팀들은, 바로 그 두 번째 볼을 먹고 산다.
전술적으로도 선택의 순간이 온다. 스리백을 기본 설계로 갈지, 포백으로 정리할지. 사실 정답은 한 가지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라인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빌드업을 누가 시작할 것인가”다. 미국전은 높은 라인과 빠른 전환으로 잡았고, 멕시코전은 교체 이후 템포를 올려 경기를 되찾았다. 상황에 맞게 두 문법을 오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무기다.

개인 평도 짚어보자. 손흥민은 ‘게임 체인저’ 그 자체였다. 오현규는 스트라이커 경쟁에서 확실히 앞줄에 섰다. 이강인은 흔들릴 뻔한 커리어 타이밍에서, 가장 필요한 설득력(결정적 패스)을 다시 보여줬다. 김민재는 연속 출전 속에서도 리더십을 유지했다. 다만 뒷단 동료들과의 간격 조절은 더 날카로워질 필요가 있다. 김문환은 동점골의 시발점이 된 크로스로 값진 장면을 남겼다. 김승규는 큰 실수 없이 기본을 했다. 카스트로프는 ‘계속 보고 싶은’ 타입이다.
결론적으로, 이 2연전은 ‘길’을 보여줬다. 강팀을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이 먹힌다는 확신, 교체 카드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 중원의 새로운 조합 실마리. 동시에, 리드 상황에서 라인을 올리고 상대 숨을 끊어야 한다는 숙제도 분명히 확인했다. 다음 달 브라질·파라과이전은 오늘의 장점은 더 날카롭게, 단점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긴 경기였다. 그래서 더 아쉽다. 하지만 질 수 있는 경기를 비긴 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무승부로 묶었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이 아쉬움이 습관이 되면 문제지만, 연료가 되면 자산이다. 오늘의 교훈이 다음 경기의 무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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