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프랑스 파리의 한 쇼핑몰 앞에는 300명이 몰렸고, 경찰이 출동해 최루탄을 발사했어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대기하던 시민끼리 몸싸움이 벌어졌어요.
네덜란드에서는 동시에 수백 명이 몰리자 결국 매장 문을 아예 열지 못했어요. 영국 맨체스터와 리버풀 매장은 이틀간 휴점에 들어갔고요.
유럽만이 아니에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매장 앞에서는 경찰이 군중을 통제하다 체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어요.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쇼핑몰에서는 군중을 해산하기 위해 페퍼 스프레이까지 사용됐어요.
전 세계 30곳에서 동시에 혼란이 벌어졌는데, 원인은 테러도, 시위도 아니었어요. 바로 60만 원짜리 신상 스와치 시계 때문이었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오늘의 디깅에서 살펴볼게요.
모두를 유혹한 그 시계
이 난리를 일으킨 시계가 뭐냐고요? 바로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가 명품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AP)와 협업해 내놓은 '바이오세라믹 로열 팝' 컬렉션이에요.
스와치는 1983년 설립된 스위스 시계 브랜드로, 일반 라인 가격대가 10만~30만 원 수준인 대중 브랜드예요.

1875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오데마 피게는 입문 모델(브랜드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이 무려 2700만 원에 달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예요. 또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매장에서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몇 년씩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는 브랜드죠.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로망'으로 불리는 오데마 피게의 디자인을 가져와 스와치가 약 60만 원에 팔겠다고 한 거예요.
한국도, 미국도, 유럽도 난리
우리나라에서도 출시 전날 밤부터 서울 여의도 IFC몰에 대기 줄이 생겨 관리자가 사람을 내보냈다고 해요. 한 백화점 매장에는 15개 내외가 입고됐는데, 오전 중에 다 팔렸고요. 리셀(재판매) 플랫폼인 ‘크림’에는 정가 대비 최대 6배인 350만 원짜리 매물이 올라왔어요.

해외는 더 심했어요. 뉴욕에서 5일 동안 줄을 서서 400달러(약 60만 원)에 산 사람이 당일 4000달러(약 600만 원)에 되팔았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밝혔어요. 무려 10배예요. 유럽 명품 시계 거래 플랫폼 크로노24나 이베이에도 출시 직후 1000유로(약 174만 원)를 웃도는 매물이 쏟아졌어요.
한정판이 아니었다고?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어요. 스와치는 ‘로열 팝’ 시계 출시 전부터 공지했어요. “로열 팝 컬렉션은 한정판이 아니며, 몇 달 동안 계속 판매될 예정입니다.”라고요.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무려 6일 전부터 노숙하며 줄을 섰어요. 왜일까요?
사실 스와치는 앞서 2022년에도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와 협업해 ‘문스와치’를 선보였어요. 스와치는 이때도 똑같이 말했지만, 생산이 수요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어요.

당시 문스와치 출시 후 9개월이 지나도록 매장 앞에 매일 줄이 늘어섰어요. 판매처를 70곳이나 추가해도 “일일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고 스와치 그룹이 직접 인정했어요. 소비자들이 스와치 협업 제품은 '한정판'이라는 말이 없어도, 초반에는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거예요.
명품 콜라보의 효과
이런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는 스와치에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2004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H&M과 손잡겠다고 했을 때 파리 패션계의 반응은 싸늘했어요. "패션이 망했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그런데 막상 컬렉션이 출시되자 첫 1시간 만에 완판됐어요. 49달러짜리 블라우스, 129달러짜리 스팽글 턱시도 재킷을 사려고 매장 앞에 줄이 늘어섰어요. 패션 전문지 WWD는 훗날 이 협업을 ‘럭셔리와 매스의 장벽을 처음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평가했어요.

이후 이 공식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퍼졌어요. 2011년 미소니(이탈리아 명품 니트웨어)가 미국 대형마트 타깃(Target)과 협업했을 때는 20분 만에 매장 선반이 비었어요. 이 협업이 만들어낸 홍보 가치는 약 1억 달러(약 1471억 원)로 추산됐어요.
발렌시아가가 크록스와 손잡아 850달러짜리 명품 크록스를 내놨을 때는 SNS 노출 횟수(임프레션)는 2300만 건을 넘겼고, 제품도 즉시 완판됐어요. 2024년 스탠리와 스타벅스가 협업한 45달러짜리 텀블러는 리셀가가 300~450달러까지 치솟았어요.
패션, 신발, 음료, 생활용품까지. 명품과의 콜라보는 업종 불문으로 퍼졌어요.
흔들리는 콜라보 공식?
지난달 럭셔리 전문 매체 ‘LUXUO’는 명품과 대중 브랜드 간의 콜라보는 한때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반복 가능한 상업적 템플릿이 됐다고 분석했어요.
너무 자주 콜라보가 이뤄지다 보니 더 이상 놀랍지 않다는 거예요. 노섬브리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 럭셔리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와 협업할 경우 소비자가 오히려 해당 럭셔리 브랜드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어요.
협업이 진정성이나 희소성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멀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죠.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와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지난해 발표한 '스테이트 오브 럭셔리 2025' 보고서도 비슷하게 진단했어요. 지난 5년간 럭셔리 산업이 너무 빠르게 팽창하면서 과도한 노출이 발생했고, 업계가 원래 약속했던 희소성·창의성·장인정신이라는 가치가 약해졌다고요.
실제로 럭셔리 명품 시장은 2024년 1% 역성장해 3640억 유로(약 634조 원)에 머물렀어요.
위기의 스와치를 살릴 콜라보?
스와치 그룹은 중국 시장 침체 직격탄을 맞았어요. 2024년 영업이익은 74% 폭락했고, 2025년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졌어요. 스와치 그룹 산하에는 오메가, 론진, 블랑팡, 브레게 같은 유명 시계 브랜드들이 포함돼 있는데, 특히 중국 럭셔리 소비 둔화 영향이 컸어요.

그런데 그룹 전체 분위기와 달리, 스와치 브랜드 협업 시리즈는 여전히 흥행력을 보여줬어요. 실제로 ‘로열 팝’ 발표 직후 캐나다 **투자은행(IB) RBC는 스와치 그룹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9% 상향 조정했어요. 스와치 브랜드 협업 흥행이 침체된 그룹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물론 일부 투자은행은 “스와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고 선을 긋고 있어요.
숫자로 보는 과거 콜라보 효과
스와치는 이전에도 콜라보를 통해 재미를 봤어요.
앞서 말씀드린 문스와치(오메가 협업) 출시 전인 2021년, 스와치 브랜드의 연매출은 업계 추산으로 2억 1400만 스위스 프랑(약 4076억 원)이었어요. 그런데 2022년 3월 출시 후 이듬해인 2023년에는 6억 6000만 스위스 프랑(약 1조 2567억 원)으로 뛰었어요. 업계가 추산한 문스와치의 매출총이익률은 약 80%예요. 100원어치 팔면 원가를 빼고 80원이 남는 셈이라 수익성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어요.

스와치는 또 2023년 스와치 그룹 산하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블랑팡과 협업해 '바이오세라믹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를 출시했어요. 블랑팡 오리지널의 수천만 원대 다이버 시계 디자인을 50만 원대 스와치 버전으로 만든 거예요.
흥미로운 점은 저렴한 협업 제품이 출시되자 오히려 수천만 원짜리 블랑팡 오리지널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예요. 협업 제품을 통해 블랑팡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접한 소비자들이 ‘진짜’를 원하게 된 셈이에요. 스와치 그룹은 공식 발표에서 직접 “블랑팡이 현재 오리지널 모델의 폭발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어요.

다만 문스와치와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는 모두 스와치 그룹 산하 브랜드와의 협업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로열 팝은 달라요. 오데마 피게는 스와치 그룹과 전혀 관계없는 독립 브랜드예요. 그래서 이번 협업이 더 파격적이고, 업계도 더 주목한 거예요.
줄을 서는 사람들의 심리는?
소비자들이 이번 콜라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먼저 리셀 차익이 있어요. 400달러에 사서 4000달러에 팔면 약 530만 원을 버는 거예요. 둘째, 지금 못 사면 나중에 더 비싸게 사야 한다는 불안감,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예요.
셋째가 가장 흥미로워요. 일종의 소속감이에요. 리셀가 2400달러(약 353만 원)에 시계를 구매한 소비자는 “정가보다 2000달러 비싸지만, 오데마 피게를 2000달러에 산 것만으로도 득템한 셈”이라고 가디언에 밝혔어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평생 살 수 없었던 브랜드를 처음으로 손목에 차는 기회예요. 브랜드 입장에서는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열망을 수익으로 바꾸는 모델이고요. 어느 쪽이든 이 공식이 영리하다는 건 변하지 않아요.
온라인 판매 없이 매장에서만 팔고, 물량은 적게 풀고, 혼란이 뉴스가 되고, 그 뉴스가 다음 협업의 기대감을 키워요. 오픈런은 단순 우연이라기보다, 희소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고요.
스와치 그룹 산하에는 아직 협업하지 않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남아 있어요. 다음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사람들은 또 줄을 설 거예요. “한정판 아니에요”라는 공지를 읽으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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