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유엔군 군의관, 대한민국 의료의 스승이 되다 [의사와 함께 펼쳐보는 의학의 역사]
편집자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전제가 된 이 문장이 과연 당연한 사실이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 머나먼 옛날이 아니라 기껏해야 100년, 200년 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 그리고 그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
전쟁으로 한반도 폐허 됐지만
이동외과병원, 헬기이송 등장
죽음에서 생명의술 토대 마련

한국전쟁은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고,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불러왔다. 그러나 참혹한 전쟁통에서도 뜻밖에 꽃을 피운 것이 있다. 바로 현대 의학의 성장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 의학을 도입한 이가 누구였는지 짚어보자. 호러스 뉴턴 알렌. 미합중국 주한 미국 공사이자 선교사였던 그는 의료·선교 활동보다는 외교관으로 일한 기간이 훨씬 길다. 그럼에도 조선의 근대 의학사에 남긴 발자취는 작지 않다. 1885년 오늘날 연세대 의과대학의 전신 중 하나인 광혜원, 즉 제중원을 설립했다. 조선 최초 근대식 의료기관으로, 조선이 서양 의학과 처음 접속한 출발점이었다.
알렌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884년 갑신정변 당시의 한 사건 때문이었다.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개화파 습격으로 온몸에 칼을 7군데나 찔려 생명이 위태로웠다. 이때 알렌은 지혈과 봉합을 해서 그를 살려냈다. 기록상 한반도 최초의 외과 수술이었다.
알렌은 조선이 일제 손아귀에 떨어지자 미국으로 돌아갔고, 일제가 근대 의학을 이끌게 된다. 주로 친일파와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을 운영하는데, 대표적 수혜자 중 한 명이 이완용이다. 이완용은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맨다. 일제 입장에서는 이완용을 반드시 살려야만 했다.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긴급 수술이 이뤄진다. 대한의원 원장이던 기쿠치가 치료를 총괄했고, 스즈키 고노스케가 집도를 맡았다. 수술 기록에 따르면 늑간동맥이 절단됐고, 혈기흉까지 동반한 상태였다. 한반도 최초 흉부외과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완용은 이듬해 2월 퇴원했고, 그해 8월 29일에 경술국치를 일으킨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나서야 광복을 맞게 되는데, 당시 대한민국 의료계는 엉망이었다. 일제가 경성제국대학교 의학부를 통해 의사를 육성하긴 했으나, 주로 일본인이었고, 조선인 의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광복 이후 교수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일본인들이 돌아갔기에, 한국 의료계는 전문 인력 부재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의사의 ‘질’은 고사하고 ‘수’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대한민국 의사는 5,300명에 불과했다. 이 중 1,400명이 군의관으로 전선에 투입됐고, 민간인 치료를 맡은 인력은 고작 800명이었다. 군 의료를 담당한 의사가 이들뿐이었다면, 한국전쟁의 참상은 더 비극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다행히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있었고, 함께 참전한 군의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실전을 경험한 ‘마스터 서전(Master Surgeon)’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제안에 따라 ‘이동 외과병원’이 도입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얼개만 짜둔 개념 수준에 머물렀던 이동 외과병원이 한국전쟁을 통해 최초로 실전에 투입됐다. 의사 12명, 간호사 50여 명, 들것 요원 약 5명 그리고 헬기 조종사와 앰뷸런스 기사 등 총 120명 규모로 구성됐다. 당초 60병상이 목표였지만, 나중엔 200병상까지 맡았다.
한국전쟁은 환자 이송에 헬기가 이용된 최초의 전쟁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들것이나, 트럭, 열차 등에 의존해야 했지만, 헬기를 이용해 험난한 지형과 전장을 신속하게 넘나들 수 있었다. 덕분에 전체 부상병의 58%가 2시간 내에, 85%가 6시간 이내에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전쟁 중 의료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전환점이었다.
개인의 활약도 대단했다. 미국 군의관 중 한 명이었던 데이비드 밀라드라는 성형외과 의사는 한국에 구순구개열 환자가 많은 것을 목격했다. 미국에서는 치료가 가능한 지 오래됐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휴가 때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수술을 해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지금은 한국 의사들이 해외로 나가 수술을 해주고 있으니, 한국 의료사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이화여대 의학과 미생물학 강사였던 이용각 박사도 한국전쟁 한복판에서 운명을 바꿨다. 미 해병대 이동 외과병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만삭의 북한 여성이 배에 총상을 입은 채 실려 왔는데, 미 군의관들은 제왕절개 수술과 봉합술로 산모와 아기를 모두 살려냈다. 의술의 정교함뿐만 아니라, 적국의 임산부를 차별 없이 치료하는 숭고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박사는 외과학으로 전공을 변경했고, 아시아 최초로 신장이식술에 성공한 의사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 박사뿐 아니라, 수많은 한국 군의관들이 한국전쟁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체로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다녀온 셈이었다’고 한다. 총과 포화 속에서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이런 경험과 노력을 토대로 지금의 대한민국 의료가 있다. 말 그대로 한국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의학이었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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