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사라진 변호사…약혼녀를 둘러싼 의혹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성인 실종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대처 도마 위 올라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매년 수만 명의 사람이 사라진다. 누군가는 단순한 가출로, 누군가는 착오로 돌아오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장기 실종'이라는 차가운 통계 수치 속으로 침잠한다.시간이 흐르면 대중의 기억은 휘발되고, 수사 기록은 캐비닛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다. 하지만 사라진 이들에게 '공소시효'는 존재할지언정,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여기, 22년 전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한 한 남자가 있다. 당시 32세의 이종운 변호사다.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제31기로 수료하고, 로펌을 거쳐 서울 중구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했다.

경찰, 성인이란 이유로 '단순 가출'에 무게
2004년 7월29일 오전 8시57분쯤, 이 변호사는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짙은 색상의 양복을 입고, 경기도 분당의 한 오피스텔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에서 눈에 띄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는 이날 1층 현관문을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근길이었고, 하루 일과도 여느 때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그가 이날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오후 7시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다음 날 이 변호사는 출근하지 않았고, 휴대전화 전원도 꺼져 있었다. 여름휴가를 이틀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 직원들은 그가 휴가를 앞당겨 간 것으로 생각했다.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실종 다음 날부터 이 변호사와 연락이 두절되자 걱정이 앞섰다. 당시 이 변호사는 결혼을 2개월 앞두고 있었고, 직장이나 주변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잠적할 이유가 없었다. 이 변호사의 약혼녀는 최아무개씨(30)였다. 가족들은 이 변호사와 연락이 닿지 않자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행방을 물었다.
최씨는 "오빠와 통화했는데 '광주에 재판이 있어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휴가를 바로 갈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날 광주에 재판이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되고 이 변호사는 내려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휴가 기간이 지난 뒤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했지만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최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경찰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단순 가출'에 무게를 뒀다. 그때 최씨가 실종 전 이 변호사를 만났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결혼을 전제로 3억원의 돈과 고급 승용차, 개인 변호사 사무실 등을 요구했고,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하자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또 헤어지기 전 현금 5000만원을 인출해 이 변호사에게 건넸는데, 이 돈으로 장기간 잠적 중일 것이라고 진술했다.
실종 두 달 후 이 변호사의 부모가 있는 본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더니 "아버지, 저 종운인데요. 저 잘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라며 "최씨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고는 끊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최씨에게는 이 변호사가 보낸 자필 팩스가 도착한다. 여기에는 "헤어지자. 집 나갈게. 중언부언하지 말고, 너도 다른 남자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범죄와 연관됐을 정황을 찾지 못하자 내사 종결했다.
그 후 이 변호사의 책상에서는 석연치 않은 영수증 더미가 발견된다. 약혼녀인 최씨의 카드대금과 여행경비 등을 이 변호사가 결제한 내역이었다. 이것을 통해 이 변호사가 최씨에게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해 왔던 것이 드러났다. 이 변호사가 결혼 후 신혼집으로 살려고 마련한 오피스텔은 최씨 명의로 돼있었다. 실종 직전 이 변호사가 최씨에게 돈을 요구했다는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이렇게 단순 가출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이 변호사의 평소 성격 등을 근거로 '자발적 가출'을 믿지 않았다. 그의 실종에는 약혼녀인 최씨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됐을 것이라고 강하게 의심했다. 이때부터 이 변호사의 행적을 직접 찾아나섰고, 최씨의 의심스러운 행동과 정황들을 찾아내 경찰에 제시했다.
가족들의 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변호사가 사무실을 나와 이동했다면 터널 관리소와 인근 도로의 CCTV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종 10개월째인 2005년 5월, 최씨가 경찰 조사 시 가져온 자동차 번호를 이용해 남산1호터널 요금소를 방문했고, 여기서 실종 당일 저녁 이 변호사와 최씨로 보이는 여성이 탄 차량이 통과하는 장면을 찾아냈다. 화질이 선명하지는 않아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했지만 가족들 눈에는 조수석에 앉은 남성이 이 변호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체형과 실종 당일 옷차림도 이 변호사의 모습과 비슷했다.
이때 운전석에는 의문의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이를 가족들은 최씨라고 지목했다. 반면 최씨는 "그 시간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었다"며 사진 속 운전자는 자신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 변호사와 최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12월 중매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혼을 약속했다. 최씨의 요구에 의해 약혼식을 먼저했지만, 결혼식 날짜는 두 번이나 연기된다. 그리고 실종되던 해 9월에 결혼식 날짜를 확정했는데, 최씨는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고 요구했다. 두 사람은 결혼 전에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 부부가 됐지만 거주는 각자 따로 했다.


약혼녀, 변호사 실종 전부터 신혼집서 딴 남자와 동거
이때 이 변호사는 최씨와의 결혼에 대해 답답한 심경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최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식 두 달을 앞두고 이 변호사가 사라졌다. 그가 실종된 후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실종 이틀 후 그의 신용카드로 무려 812만원이 결제됐는데, 명품가방 등을 쇼핑한 내역이었다. 결제자는 다름 아닌 최씨였다.가족들은 실종 후 수시로 이 변호사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다. 보름 후에는 전원이 끊겼던 이 변호사의 휴대전화가 다시 켜진다. 이때부터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가족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혹시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그때마다 달려갔지만 그곳에 이 변호사는 없었다. '이종운이 맞느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종 석 달째인 그해 10월, 이 변호사의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실종 전까지 서울 용산에 있는 여동생의 집으로 주소지가 돼 있었는데, 실제 거주하던 분당으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전입신고는 관할 행정센터에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확인을 거쳐야 가능하다. 가족들이 해당 행정센터에 가보니 전입신고서에 도장 대신 지문이 날인돼 있었다.
확인해 보니 그는 30대 남성 이아무개씨였다. 이씨는 경찰에서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한 여성이 올린 글을 보고 연락해서 만났다"며 "식물인간인 남편을 대신해 일처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다름 아닌 최씨였다. 이씨는 이 변호사 명의로 휴대전화 2대를 개통해 최씨에게 건넸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 개설한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이용해 이 변호사의 재산을 가로챘다.
먼저 이 변호사가이 변호사는 실종 직전 최씨의 권유로 월 납입액이 145만원인 종신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총수령액은 15억원에 달했는데, 수익자는 최씨였다. 해당 보험은 이 변호사가 실종된 후 2년 동안 발견되지 않으면 수익자가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최씨는 이 변호사가 실종된 후에도 매월 납입액을 넣고 있었다.
이쯤 되자 경찰은 최씨를 피의자로 입건해 주거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증거가 발견됐다. 이 변호사의 수첩이 나왔는데, 글씨들이 가위를 이용해 오려진 상태였다. 알고 보니 이 변호사가 보냈다던 자필 팩스는 여기서 오려낸 글자들로 짜맞춘 최씨의 자작극이었던 것이다. 이 변호사 본가로 걸려온 전화도 최씨가 서울 송파구의 한 공중전화부스에서 만난 남자에게 30만원을 주고 시킨 것이었다.
최씨의 진짜 비밀은 따로 있었다. 가족들은 최씨의 수상한 행적과 의심스러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퍼즐 맞추기에 나선다. 최씨가 결혼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고 요구한 것이 자꾸만 걸렸다. 행정센터에서 두 사람의 혼인신고서를 떼어봤더니 그 안에서 낯선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변호사의 연락처에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이 변호사가 살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최씨가 전세로 내놓은 뒤 다른 세입자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이 변호사가 신혼집으로 마련한 이곳에서 최씨가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와 혼인신고를 하고 약혼식과 결혼식 날짜를 잡을때도 최씨는 이 남성과 한 이불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변호사가 실종되기 전에는 둘이서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동거남의 정체는 이 변호사와 최씨의 혼인신고서에 있던, 즉 이 변호사의 연락처에남겨진 휴대전화의 주인이었다.
이 남자는 또 다른 곳에서 등장하는데, 앞서 가족들이 남산1호터널 요금소에서 발견한 판독불가 CCTV 영상에 찍힌 승용차가 바로 이 동거남 소유의 차량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 차량에 탄 조수석 남성과 운전석 여성은 이 변호사와 최씨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은 이 변호사 실종에 이 동거남이 관련돼 있다고 보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으나 그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약혼녀, 사기 혐의만 적용받고 2년 만에 출소
이종운 변호사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종 이후 생활반응도 전혀 없다. 모든 화살은 단 한 사람, 약혼녀 최씨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증거인 시신 등이 발견되지 않아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정황은 차고 넘쳤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사기와 사기미수,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만을 적용해 최씨에게 징역 2년을, 공범이자 대역남인 이씨에게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성인 실종과 관련한 경찰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찰 이 실종 초기에 단순 가출로 보고 즉각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서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사이 범행의 흔적이 지워졌던 것이다. 최씨는 2007년 만기 출소해 사회로 돌아왔다. 반면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았으며, 이 변호사의 가족들의 시계는 실종되던 해인 2004년에 멈춰있다. 그의 형제들은 지금도 동생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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