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해군, ‘이지스함 핵심 기술’ 문턱에서 좌절
대한민국 해군이 차세대 이지스함 전투력 강화를 위해 미국에 협동교전능력(CEC — 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도입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은 지난해 6월 미 해군 측에 공식 서한을 보내 “북한의 초음속 미사일, 탄도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려면 CEC가 필수적”이라며 정조대왕급 이지스함(배수량 8200톤)에 장비 탑재 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 해군은 같은 해 8월 답신에서 “미 정부의 수출통제 및 기술이전 정책은 한국에 대한 CEC 수출을 지원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는 일본·호주 등 미 동맹국에는 판매한 동일 기술을 한국에는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해군 관계자는 “거절 통보는 사실이지만, SCM(한미 안보협의회의)을 통해 추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CEC란 무엇인가 – 이지스함의 ‘눈과 귀를 묶는’ 네트워크
CEC는 말 그대로 함정과 항공기, 조기경보기, 위성 등 모든 감시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일본 마야급 이지스함이 먼 거리에서 적 항공기를 탐지하면, 탐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국 해군 함정에 전송해 원거리에서 격추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함정 간 ‘공동 감시·공동 교전’이 가능한 이 능력은 현대 해상전의 핵심으로, 기존의 단독 교전 방식 대비 탐지 거리와 요격 효율이 각각 2배 이상 향상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 해군은 모든 이지스 구축함과 항모전단에 CEC를 기본 장착했고, 동맹국 중에서는 일본(마야급·아타고급)과 호주(호바트급)에만 판매를 허가했다. 한 해양전력 분석가는 “CEC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노드(Node)”라며 “정보보호 수준이 낮은 국가에는 통합을 꺼리는 미국의 기술적·정책적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왜 한국만 제외됐나, 미군의 정치적 계산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기술 문제가 아니라 안보 신뢰도와 외교 전략의 문제’라고 본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를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Pacific Grid)의 핵심축으로 지정한 반면, 한국은 종속적 정보 네트워크(미사일 경보 연합망)에만 부분적으로 포함돼 있다. 즉, CEC 제공은 시스템 전체의 실시간 교전 데이터를 한국과 공유한다는 의미이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완전한 전략 연동”을 뜻한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 “한국의 독자 방공망(KAMD)과 미국 MD의 완전 통합에 대한 국내 정치적 이견이 여전하다”며 “기술 이전 시, 미국 방산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 내 중국과의 교역 의존도, 미중 전략 경쟁 속 균형 외교 움직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한국, 2030년대 ‘국산 해상통합방공체계’로 선회
이번 거절 통보 이후 한국 해군과 방위사업청은 즉시 대안을 수립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한국형 해상통합방공체계(한국형 CEC)’ 구축 계획을 승인받고, 2030년 중반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체계는 국산 이지스 전투체계, L‑SAM 블록‑Ⅱ, M‑SAM, KF‑21에서 운용되는 AESA 레이더 데이터를 통합해 육해공 합동 교전 체계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한국산 위성통신망(KMILSAT)과 레이더 융합 알고리즘이 결합되면, 미군 CEC와 유사한 수준의 네트워킹 방공망을 자력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게 ADD의 설명이다. 다만 미국의 이지스 베이스라인 9 시스템을 탑재한 정조대왕급 이지스함과의 호환 문제는 기술적 난제로 남아 있다.

일본·호주와의 격차, 그리고 국산화의 도전
현재 일본 해상자위대는 2023년부터 마야급 두 척을 중심으로 미국, 호주 함정과 동시 교전형 CEC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호주 또한 2018년 CEC 장비를 도입해 인도양·남태평양 작전구역에서 미 제7함대 전단과 통합 운용 중이다. 반면 한국은 SM‑3·SM‑6 요격미사일 확보에도 불구하고, CEC 연동 부재로 자체 교전·요격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불가능하다. 한 국방 전략가는 “이 상태로는 SEJONG 급 이지스함의 성능이 반쪽짜리로 남을 위험이 있다”며 “CEC는 단순한 네트워크 장비가 아니라 미군식 방공작전의 ‘군사 언어’이자 데이터 공유 규약”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독자 개발 체계가 실전에서 미국의 CEC 네트워크와 연동되지 않으면, 사실상 한미 연합해상 작전에서 분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자립의 계기
미국의 결정은 한국 안보 지형에는 분명 아쉬운 결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립형 군사기술 개발의 ‘기폭제’로 평가된다. ADD는 올해부터 한화시스템·LIG넥스원·KAI 등과 공동 개발 체계를 구축했으며, 한국판 CEC의 재원 약 2,500억 원을 1차 확보했다. 정부는 “미국과 다른 방식을 통해도 상호 연동 가능한 수준의 교전 체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해군 소장은 “남이 만들어준 데이터망에 의존하기보다, 우리의 알고리즘으로 적 탄도미사일을 먼저 탐지하고 처리하는 것이 진짜 동맹의 모습”이라며 “CEC 불허는 좌절이 아니라 기회”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주지 않은 기술은 한국이 스스로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K‑방산이 전차·자주포에서 전투기, 함정 분야로 확장된 지금, CEC 는 ‘바다의 전자두뇌’를 국산화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한국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이젠 미국이 아닌, 한국형 네트워크로 함대가 싸우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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