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끝없는 강대강 힘의 대치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전단(삐라)과 오물풍선을 주고받는 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급기야 비무장지대에서 폭약이 터지고, 총성이 울렸다. 남북을 잇는 도로도 끊겼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말이 행동 단계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한반도 정세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남, “핵무기 쓰면 북한 정권 종말 맞을 것”
“마침내, 우리 군의 첨단 재래식 능력과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을 통합하는 전략사령부를 창설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전략사령부는,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든든하게 지키는, 핵심 부대가 될 것입니다. (…) 만약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우리 군과 한-미 동맹의 결연하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0월1일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군은 강력한 전투 역량과 확고한 대비 태세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을 즉각 응징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선 ‘현무-5’ 미사일이 처음 공개됐다. 탄두 중량이 8t인 현무-5는 세계 최대 수준의 초고위력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다. 현무-5 공개를 두고 “북한이 도발하면 평양을 초토화시키겠다는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북쪽의 반응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내놨다. 그는 10월7일 김정은종합대학 창립 60주년 축하연설에서 남쪽의 전략사령부 창설에 대해 “변변한 전략무기 하나 없는 것들이 상전의 핵을 빌어 허울뿐인 ‘전략사령부’를 만들”었다고 비꼬았다. 이어 “힘의 열세에 대한 강박관념과 우리 국가에 대한 병적인 피해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애써 허세로 엮어낸 ‘기념사’라는 것을 쥐어짜보면 결국 핵에 기반한 군사블록으로 변이된 ‘한미동맹’에 기대어 우리와의 힘의 균형을 유지해보자는 어리석은 심산”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북쪽은 숨 가쁘게 움직였다. 10월9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보도문을 내어 “우리 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며 “10월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쪽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봉쇄하는 것은 전쟁억제와 공화국의 안전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며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미군(유엔군사령부) 쪽에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고 덧붙였다. 그다음은 ‘평양 무인기(드론) 사건’이었다.
북, “무인기 다시 뜨면 끔찍한 참변 일어나”
“한국은 지난 10월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삐라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 군사적 공격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무인기를 수도 상공에까지 침입시킨 사건은 절대로 묵과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중대도발이다.” 북한 외무성은 10월11일 낸 ‘중대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외무성은 “쌍방 간 무력충돌과 나아가 전쟁이 발발될 수 있는 이렇듯 무책임하고 위험한 도발행위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또다시 무인기를 영공에 침범시키는 도발행위를 감행할 때에는 즉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도 나섰다. 그는 10월12일 낸 담화에서 “우리 수도의 상공에서 대한민국의 무인기가 다시 한번 발견되는 그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10월13일엔 “국경선 부근의 포병 연합부대들과 중요 화력임무가 부과되어 있는 부대들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지시를 국방성 대변인이 발표했다. 김 부부장은 10월14일 다시 담화를 내어 욕설을 섞어가며 평양 무인기 사건은 남쪽 군부가 일으킨 것이며, 미국도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안전분야 협의회를 소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협의회에서 “적들의 엄중한 공화국 주권침범 도발 사건과 관련한 정찰총국장의 종합분석 보고와 총참모장의 대응 군사행동 계획에 대한 보고” 등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이 “나라의 주권과 안전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 억제력의 가동과 자위권 행사에서 견지할 중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평양 무인기 사건을 김 위원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북쪽은 예고한 대로 10월15일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군사분계선 이북지역 구간 일부를 폭파했다. ‘따로 살기’를 선언하는 상징적 ‘의례’였다.
“핵심은 전쟁 승리 아닌 전쟁 예방”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경의선·동해선 폭파는 북쪽이 이른바 ‘두 국가론’에 따라 물리적으로 남쪽에 ‘헤어지자’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간 북쪽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행동으로 입증했다. 더구나 이를 사전에 정전체제 유지·관리 책임을 진 유엔사 쪽에 통보까지 했다. 남과 북의 연결을 끊고, 군사적 대치 상태인 정전체제로 복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구 교수는 “의도와 관계없이 남과 북이 모두 냉전 시절과 같은 ‘억제의 균형’ 상태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핵심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 거 같으면 전쟁은 일으키지 못한다”(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10월13일 한국방송 인터뷰)는 한가한 말이나 할 때가 아닌 게다.
대북전단도, 오물풍선도 정전협정 위반이다. 무인기도 마찬가지다. 유엔사 쪽은 10월14일 입장문을 내어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을 공개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이 문제를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사라도 나서서 다행인가? 한반도의 명운이 다시 남의 손에 맡겨졌다. 긴장을 낮추기 위한 상황 관리 노력 대신 ‘말 대포’만 쏴대서 그렇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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