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까지 올스톱"… 정신질환자 입원 시키려 경찰관들이 '전화 뺑뺑이'

전유진 2024. 9. 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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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응급입원 하늘 별따기]
응급입원 거절돼 서울→인천 이송도
정신과 병상 감소·의료진 공백이 원인
"지자체·병원·경찰·소방 공동 대응을"
지난 8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구급차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정신질환자 입원시키려고, 전화 수십 통을 돌려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요."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

요즘 '전화 뺑뺑이'는 119 구급대원들만 돌고 있는 게 아니다. 정신질환자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도 이 병원 저 병원 전화를 돌리며,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서울 은평경찰서의 A경위는 "일주일에도 몇 번 정신질환자 신고가 들어온다"며 "응급상황이라 당장 병원에 가야 하지만 관내는 물론 관외까지 문의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결국 지구대에서 정신질환자를 데리고 새벽 내내 대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경찰도 전화 뺑뺑이 돈다

112에는 정신질환자가 △가정에서 흉기 위협을 한다거나 △자해를 하고 있다거나 △자살을 시도했다는 식의 신고가 속속 접수되어 경찰이 긴급 출동을 한다. 그러나 의료대란 여파로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며, 긴급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경찰관서에서 '무한 대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이 급감했는데, 의료계 인력 공백까지 덮쳤다. 결국 응급실 및 배후 진료 여건이 악화돼 정신질환자를 수용할 곳이 거의 사라졌다. 정신질환자 대응에 전문성이 없는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임시로 수용 업무를 떠맡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취객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경찰은 의사의 동의를 거쳐 자해·가해 위험이 높은 정신질환자 추정인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응급입원)시킬 수 있다. 소방과 공동 대응하며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 뒤, 신경정신과에 협진을 의뢰해 병력과 자살 위험도 등을 판단해 입원시키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정신질환자가 입원을 하지 못하고 귀가할 경우 자살이나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응급입원에는 신속성이 요구된다.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의뢰 건수는 2017년 7,400여 건에서 지난해 1만5,000여 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의료대란의 여파로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B경감은 "의료대란 이후 정신질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받아주는 곳을 찾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돌리다가 의정부나 인천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구급대원은 "겨우 병원을 찾아가도 정신과 전문의가 없어 병원이 아니라 경찰에 인계된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왜 정신과에 의사가 없나

병원도 사정은 있다. 정신과 전문의와 병상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신체 질환이 동반된 정신 응급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은 최근 10년간 1,000개 넘게 감소했다. 전문의도 줄고 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립정신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정원은 81명이지만 이달 기준 실제 근무 중인 의사(현원)는 37명에 불과하다.

더 이상 정신과 환자 응급입원을 받지 못한다고 선언한 병원도 늘고 있다. 건양대병원은 최근 응급실 인력 부족 문제로 병상을 축소 운영한다며 평일 밤과 주말, 공휴일 등엔 정신과 진료가 어렵다고 밝혔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정신과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진료 및 입원 불가능'이라고 공지한 이대목동병원 관계자도 "당분간 정신과 환자는 응급실 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과 건국대병원도 정신건강의학과 환자 응급입원이 어렵다고 한다.

5월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의료진 공백으로 응급실이 단축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의료계는 낮은 수가로 인한 적자와 의료대란이 겹치며 응급입원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다인실을 줄이며 정신과 병상이 줄었다"며 "수가가 낮아 정신과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것도 의사와 병상이 줄어드는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민간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은 국립병원은 정신과 전문의 모집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전공의 사직 이후 정신과 폐쇄 병동이 제대로 운영되는 대학병원은 거의 없다"며 "환자의 입원 필요성을 판단하는 정신과 의료진이 더 이상 응급실에서 근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현장에선 경찰과 소방 대응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장은 "경찰은 의료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없어 현장에서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조차 어렵다"며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병원이 연계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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