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한국 프로야구에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첫 시민 프로야구단, 울산 웨일즈(Ulsan Whales)가 공식적으로 창단한 것이다. KBO 퓨처스리그에 참가하는 12번째 팀이자, 기업이 아닌 지역 시민의 염원과 세금으로 탄생한 첫 야구단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환영의 박수만큼이나 냉정한 질문도 따라붙는다. 울산 웨일즈는 과연 지역 야구의 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금 먹는 고래'라는 오명에 갇히게 될 것인가?

울산 웨일즈의 등장은 대형 기업 중심의 한국 프로야구 구조에 균열을 낸다. 45년 동안 KBO 리그는 삼성, 두산, 롯데 등 대기업이 운영해왔다. 하지만 울산시는 프로야구의 공공성과 지역밀착성을 앞세워, 시민들이 직접 소유하고 응원할 수 있는 구단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창단을 강행했다. 이날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창단식에는 김두겸 울산시장, 허구연 KBO 총재, 장원진 초대 감독을 비롯한 내외빈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시작을 함께 했다. 엠블럼에 담긴 범고래의 이미지는 영리하고 조직적인 팀워크, 그리고 바다 도시 울산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팀 구성도 속도를 냈다. 초대 감독으로는 두산 베어스 출신 장원진이 낙점됐다. 최기문 수석코치, 박명환 투수코치 등 지도자 라인업도 알차게 꾸려졌다. 선수단은 현재 26명으로 구성됐으며, 시즌 시작 전까지 9명을 더 선발할 예정이다. 첫 시즌은 퓨처스리그 남부리그에서 치르며, 홈과 원정 각각 58경기씩 총 116경기를 소화할 계획이다. 홈경기장은 문수야구장이다.
문제는 이 구단의 운영 방식과 재정 구조다. 올해 울산 웨일즈 운영 예산은 약 60억 원. 대부분이 시 예산, 즉 시민들의 세금에서 나온다. 울산시는 구단이 안정화되는 3년 후 시민공모를 통해 독립 법인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퓨처스리그의 낮은 수익성과 관심도를 고려할 때 실질적인 자립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수익성도 낮고 관중 수도 적은 2군 리그에 수십억 원을 퍼붓는 게 타당하냐"는 반발도 거세다. 구단 창단 당시 발표된 선수단 명단에 울산 출신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지역 밀착형 모델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문수야구장을 사용할 경우 기존 유소년·아마추어 야구팀의 훈련 공간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문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KBO 리그 상위 구단들은 수억 원짜리 분석 장비, 데이터 기반 훈련 시스템, 전담 R&D 인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울산 웨일즈는 현재의 예산과 인력으로는 이를 구축하기조차 벅차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울산 웨일즈가 과연 이 같은 첨단 육성 시스템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울산 웨일즈는 시작부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단식에선 인공지능이 제작한 응원가가 공개됐고, AI와 ICT 기술을 활용한 '미래형 스포츠 행사' 형식도 선보였다. JTBC와 KBO, 울산시가 협업해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어, 단순한 경기 이상의 지역 밀착형 스포츠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호'도, 막연한 '우려'도 아니다. 울산 웨일즈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구단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이다. 예산 집행과 인사 구조, 성적 평가 등 모든 영역에서 시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 강화다. 유소년 프로그램, 지역 학교와의 협력, 시민 대상 이벤트 등을 통해 진정한 '시민의 구단'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구단의 중장기적 자립 전략 수립이다. 티켓 판매, 굿즈, 지역 기업 스폰서십 등 수익모델 다변화를 통해 세금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울산 웨일즈는 오는 3월 20일 첫 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 경기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 구단’이라는 실험이 첫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의 의미다. 이 고래가 거대한 바다를 헤엄쳐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얕은 물가에서 좌초할지는 앞으로 3년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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