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어느 날, 영국 공군 기지에서 마지막 WE.177 핵폭탄이 조용히 창고로 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 27년간 영국 하늘에는 핵무기를 실은 전투기가 단 한 대도 뜨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뱅가드급 핵잠수함만이 영국의 핵억제력을 책임져왔죠.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연발로 쏘아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리는 첨단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들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며 경고했고, 그 해답으로 놀라운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F-35A 스텔스 전투기에 B61 전술핵폭탄을 탑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냉전 종료 이후 영국 핵무기 정책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7년간 잠들어있던 영국의 공중 핵공격 능력이 부활하는 순간, 유럽의 군사적 균형은 어떻게 바뀔까요?
27년 만의 공중 핵공격 능력 복원
앞서 말했듯 영국은 1998년 마지막 WE.177 핵폭탄을 퇴역시킨 이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만 의존하는 단일 핵억제력 체계를 유지해왔습니다.
현재 영국의 핵무기는 뱅가드급 핵잠수함에 탑재된 트라이던트 미사일이 전부입니다.
이는 주요 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단일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반면 미국은 육상, 해상, 공중의 3원 핵억제력(Nuclear Triad)을 보유하고 있고, 프랑스와 러시아도 최소 2개 이상의 플랫폼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공중 핵공격 능력을 재확보한다면 핵억제력의 다양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F-35A와 B61 핵폭탄의 조합
영국 정부가 검토 중인 것은 록히드마틴의 F-35A 라이트닝 II 전투기입니다.
이 기체는 B61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유일한 F-35 변형입니다.

영국이 현재 운용하는 F-35B는 수직이착륙형이지만 핵무기 탑재 인증을 받지 못했고, 미 해군의 F-35C 함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F-35A는 2023년 10월 B61-12 핵폭탄 탑재 인증을 받았으며, 이는 NATO 동맹국들에게 약속했던 2024년보다 몇 달 앞선 것이었습니다.
B61-12는 기존의 B61-3, 4, 7, 10형을 대체하는 최신형으로, GPS/관성항법 유도 시스템이 탑재되어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B61의 폭발력은 0.3~50킬로톤으로 조절 가능합니다.
비교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위력이 15킬로톤이었으니, 상당히 낮은 수준의 전술핵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핵 위협에 대한 대응
영국의 이러한 배경에는 러시아의 핵 위협 증가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NATO 동유럽 회원국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한다면 NATO 제5조가 발동되어 전면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전술핵무기 공격에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뱅가드급의 SLBM으로 대응하면 본격적인 핵전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영국 군 수뇌부는 러시아의 다양한 수준의 도발에 단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토니 래다킨 국방참모총장과 존 힐리 국방장관이 미 국방부 관리들과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키어 스타머 총리도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공중 핵공격 능력 복원에는 상당한 실용적 과제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핵무기 저장시설입니다.
RAF 마햄 기지가 유력한 후보지인데, 이곳에는 과거 WE.177 핵폭탄을 저장했던 지하 보관고가 있었지만 27년간 사용하지 않아 대규모 보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보관고들이 이미 해체되었거나 심지어 매워졌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어, 새로운 핵무기 저장시설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공중급유입니다.
영국 공군의 A330 MRTT 보이저 공중급유기는 붐 방식 급유 장치가 없어 F-35A와 호환되지 않습니다.
현재 RAF의 RC-135, C-17, P-8A 등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 급유기 개조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드론 중심 전력 재편과 방산업체 부활
영국 스타머 정부는 국방전략검토와 함께 15억 파운드(약 2조6천억원)를 투입해 최소 6개의 무기·폭약 공장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전쟁 준비태세"를 복원하겠다는 스타머 총리의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힐리 국방장관은 국방전략검토의 핵심이 드론과 방산업체 부활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무인 시스템의 중요성이 입증되었고, 서방 무기 비축량이 허용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가 드론 운용을 방해하는 기술을 계속 투입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몇 주마다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드론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는 같은 무기를 대량생산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유연한 적응력을 가진 산업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의존도 심화 우려
하지만 F-35A와 B61 핵폭탄 도입은 영국의 미국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영국의 트라이던트 미사일도 미국제이고, 여기에 공중 핵무기까지 미국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면 독립적인 핵억제력에 제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톰 섀도우 순항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영국 독자적인 공중발사 핵무기 개발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개발 기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록히드마틴이 새로운 무기를 F-35에 통합하는 데만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독자 개발의 장애물입니다.
결국 영국은 빠른 공중 핵공격 능력 확보를 위해 미국의 핵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NATO 회원국들도 같은 길을 택하고 있어 영국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닙니다.
6월 2일 발표될 국방전략검토가 얼마나 구체적인 계획을 담을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영국이 냉전 종료 이후 가장 큰 핵정책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