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대표하는 흥행작들엔 늘 그의 이름이 있었다.

1991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한석규는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여명의 눈동자>, <서울의 달>, <낭만닥터 김사부>에 이르기까지 작품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남겼고,
<넘버 3>, <초록물고기>, <쉬리>,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든 30년,
그의 전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군 복무 중 허리 부상으로 의병 제대를 하며배우의 꿈을 한때 접어야 했다.
몸을 쓸 수 없다면 목소리로 연기하겠다며 KBS 성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년 뒤 기적처럼 몸이 회복되자1991년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도전, 결국 배우로 돌아왔다.

배우로 주목받기 전,
그는 이미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있었다.
KBS 성우 시절, 1기 선배였던 임명주와약 10년의 교제 끝에 1998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슬하에 2남 2녀,
네 아이를 둔 연예계 대표 ‘4남매 아빠’가 됐다.
대중은 잘 몰랐던 사실에 최근에서야 놀라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아이는 셋 이상 낳자”고 말하던 한석규는 본인도 4형제 중 막내, 아내는 5남매 중 막내였다.
그는 대가족의 따뜻함을 기억했고, 그만큼 아이가 주는 기쁨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설 때 ‘아빠!’ 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을 때,그게 제일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는 방송에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숨기지 않았다.

한석규는 결혼 27년 차에도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내 임명주는 “남편은 집안일도 잘하고요리도 수준급이에요”라며 미소 지었다.
한석규는 하루 세 번 이상 아내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애정을 표현한다.
그에게 가족은 늘 “최우선 순위”였다.

작품 안팎에서 묵묵한 진심을 보여주는 배우.
한석규는 지금도좋은 연기와 좋은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고 있다.
무대 위 한석규도, 집 안의 아빠 한석규도누군가에게는 닮고 싶은 어른이다.
앞으로도 그 따뜻한 삶과 연기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출처=온라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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