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인텔이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텔이 2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 기술과 막대한 생산능력 투자에 더해, 폭발적으로 커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인텔의 추격을 따돌리고,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는 MS에 버금가는 대형 AI 반도체 고객사 확보가 시급하다. 때마침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10년 만에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 역시 MS와 마찬가지로 자체 AI 반도체를 제작해 줄 파운드리와 협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인텔·MS에 대항하기 위해 메타와 'AI 동맹'을 구축할지 관심이 쏠린다.
인텔, MS AI 칩 18A 공정에서 생산

인텔은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지난 21일(현지시간) 파운드리 사업 전략을 소개하는 '인텔 파운드리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하고 첨단 공정 전략과 함께 MS와 전략적 협력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사티아 나델라 MS CEO도 원격으로 참석했다.
나델라 CEO는 인텔 18A(1.8㎚급) 공정에서 차세대 AI 반도체를 제조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MS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첨단의 고성능·고품질 반도체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며 "이는 MS가 인텔 파운드리와 협력하게 된 이유이며 인텔 18A 공정에서 칩 생산을 결정한 이유"라고 말했다. 나델라 CEO는 인텔 18A 공정이 담당하게 될 자사 AI 반도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2023년 말 MS가 소개한 신규 AI 반도체인 '마이아 100'과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코발트 100'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인텔은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를 자사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18A 공정에서 MS를 포함해 4개의 대형 첨단 칩 주문을 수주했다. 수주잔고는 약 150억 달러(약 20조원)다. 일부 고성능컴퓨팅 고객은 인텔에 대규모 선급금을 이미 지급했다.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MS 외에 다양한 AI 반도체 기업이 인텔과 협력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2023년 말 엔비디아 역시 자사 AI 반도체를 독점 제조하는 TSMC에 이어 인텔을 추가 협력사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MS와의 협력은 자사 파운드리 공정에 대한 기술적 우려를 벗고, 대규모 매출을 초기에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MS는 2024년 연간 500억 달러(약 66조원) 이상을 AI 서버 구축에 투입할 예정으로, 특히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마이아 100과 코발트 100의 공격적인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MS는 구글이나 아마존, 메타에 비해 뒤늦게 자체 AI 가속기인 마이아 100 개발에 나선 만큼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뛰어든 인텔과 손을 잡은 것"이라며 "인텔 파운드리가 제대로 돌아갈지 아직 시장의 우려가 큰데, MS라는 대형 고객사의 주문이 이러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새로운 공정 청사진도 발표했다. 2024년 말 양산 예정인 18A에 이어 2026년 14A(1.4㎚급)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암(Arm)과 시놉시스, 케이던스 등 반도체 설계자산(IP), 설계자동화(EDA) 기업과의 협업도 확대하기로 했다.
빅테크 고객 급한 삼성, 메타와 손잡나

삼성전자 파운드리 역시 자체 AI 칩을 제작하려는 수요를 발굴하고 있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이 제한적인 엔비디아 반도체 대신 맞춤형 자체 AI 칩을 제조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 AI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웍스(PFN)로부터 2㎚ 공정 기반 AI 반도체를 제작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엔비디아를 비롯해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부터 데이터센터 업체인 구글, 아마존까지 TSMC에 주문을 맡기면서 아직 첨단 공정에서는 대형 양산 실적을 쌓지 못한 상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장을 모색하려면, 인텔과 손잡은 MS처럼 빅테크와의 협업이 절실하다.
이달 말 이뤄질 이 회장과 저커버그 CEO의 만남을 두고 삼성전자와 메타 간 AI 동맹이 이뤄질 거란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저커버그 CEO의 방한은 지난 2013년 이후 10여 년 만이다. 아직 두 사람의 회동 여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회장과 저커버그 CEO의 회동 여부에 대해 "별도로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메타는 현재 자체 AI 반도체인 '메타 훈련·추론 가속기(MTIA)'의 차세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연내 발표가 예상되는 2세대 칩은 '아르테미스'로 알려졌다. 메타는 올해 35만 개에 달하는 엔비디아 GPU와 자사 AI 반도체를 서버에 병행 탑재할 계획이다. 아르테미스의 제조를 담당할 파운드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선보인 1세대 칩은 TSMC의 7㎚ 공정에서 생산됐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와 이를 보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그리고 두 칩을 한 번에 패키징하는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첨단 반도체와 고성능 메모리반도체를 모두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전략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와 패키징 등 공급에 병목을 일으키고 비용을 높이는 요소가 있는데 삼성전자의 턴 키 전략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좋은 방식"이라며 "다만 개발 기간이 길고 매우 높은 품질이 요구되기 때문에 고객들이 이미 검증된 TSMC 공급망을 쉽사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은 삼성전자의 수주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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