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할 것 같아" 체한 줄 알았는데 심장병?…'여성'만 진단 늦어지는 이유

한국 여성이 사망하는 원인질환 2위가 심장질환이다(2023년 기준). 그런데 심장질환의 진단·치료 가이드라인이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증상이 있어도 심장질환으로 진단·치료하는 시기가 늦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5일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연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장질환이 남성에게 많다는 이유로 이 질환의 진단·치료에 대한 연구가 주로 남성환자를 대상으로 설계·진행돼왔다"며 "문제는 남성환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 패턴이 여성에게서는 극소수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미 교수에 따르면 진료 현장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남성환자 대부분은 "가슴이 뻐근하다"고들 호소한다. 반면 여성환자들은 "가슴이 울컥한다", "답답하다", "체한 것 같다", "토할 것 같다", "숨이 찬 것 같다", "가슴이 우리하다", "돌을 얹어놓은 것 같다"고들 표현한다. 이 때문에 정신과 또는 소화기관의 문제로 오인해 심장질환 진단 시점이 남성보다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게다가 협심증이 의심될 때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면 남성 대부분은 협착 병변이 발견되지만, 여성에게선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협심증이 있어도 성별에 따라 미세혈관의 기능이 다를 수 있다"며 "게다가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심장 크기가 커지는데 여성은 커지지 않고 통통해지는 경향이 있어 똑같은 심장질환이 같아도 성별에 따라 증상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별 차이로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사례는 심장질환뿐 아니라 여러 질환에서 잇따른다. 심장질환 치료제인 '시사프라이드(Cisapride)'를 투여한 여성환자에게 부정맥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례가 보고됐다. 최근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가 남성에게만 효과적이고 여성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에서 성별에 따른 반응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자가면역질환은 여성 유병률이 남성보다 약 4배 높은데, 자폐증은 남성 발병률이 여성보다 약 4배 높다. 성별에 따른 유병률 차이가 뚜렷한 것이다. 이처럼 약물 부작용과 질병 발생률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의료연구의 '남성 중심 데이터' 한계가 심각하다는 지적 등 '성차의학'(sex·gender-specific medicine)에 대한 학문적·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성차의학은 사람의 건강·질병·상해의 치료·예방 등 의료 전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보다 정밀한 개인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최근 미국·캐나다·독일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차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기관 설립, 연구 적용 의무화, 법·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활발히 시도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부터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생명과학 연구에 성별 분석을 의무화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연구 전 과정에서 성별 차이를 반영하는 '호라이즌(Horizon)'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반면 국내에선 성차의학의 필요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일부 이뤄졌지만, 의료계와 연구 현장에서의 인식은 아직 초기 수준이라는 게 의료계의 평가다. 이에 국립보건연구원은 성차 기반 의료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 필요성·중요성 등 우선순위가 높은 질환군을 대상으로 △심혈관계 질환 △소화기계 질환 등 2개 질환 분야에 대해 '맞춤형 의료기술 최적화 및 임상 현장 적용 가속화를 위한 연구'를 올해부터 2028년까지 4개년 계획으로 착수했다. 정부가 총 37억5000만원을 지원한다.
그중 1차년도(5월1일~12월31일, 7억5000만원 지원)에선 박성미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나서며 '성차 기반 심혈관계 질환 진단·치료 기술 개선 및 임상 현장 적용'이란 주제로 첫 과제를 진행한다. 이 연구에선 허혈성 심장질환, 심부전, 급성 심근경색,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심혈관계 질환에 대해 성차를 반영한 예방·치료 개선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성차 맞춤형 예방·진단·치료·관리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박현영 원장은 "성차 기반 의료기술 개발은 단순한 연구 주제를 넘어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수명 연장과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기여할 것"이라며 "성별 불균형으로 인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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