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벙커 속 나스랄라 제거한 이스라엘의 JDAM  벙커버스터, 한국군도 보유…김정은 ‘촉각’

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2024.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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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옛소련 못 지켜줘…이스라엘, 정보기관 혁신에 장기간 투자
이란 방첩 책임자 포함 이중간첩 20여 명 포섭…네타냐후, ‘중동 신질서 구축’ 노려

(시사저널=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또 하나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난 32년간 이끌며 반미·반이스라엘 강경노선으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9월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헤즈볼라 본부에서 암살한 사건 말이다. 

미션 임파서블은 원래 '지극히 위험하거나 어려운 임무'를 가리킨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미국 방송 드라마(1966~73년, 1888~90년 방영)와 할리우드 영화(1996~2023년 1~7편 개봉)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하는 조직·인물을 가리키게 됐다. 작품 속 정보·공작 조직인 '미션 임파서블 포스(IMF)'에서 따왔다.  

9월27일 출격한 이스라엘 전투기는 베이루트 교외 다이에흐의 지하시설을 폭격해 지하 18m 정도의 벙커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나스랄라를 제거했다. 헤즈볼라는 다음 날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9월29일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던 나스랄라가 암살당한 베이루트 남부 교외 건물 잔해 위에 한 남성이 서있다. ⓒAP 연합

'미션 임파서블' 이스라엘의 나스랄라 암살

폭격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군이 이 작전을 위해 8대의 전투기를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2명의 이스라엘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에 이번 공격에서 몇 분 안에 80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됐다고 밝혔지만 어떤 폭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동원 전투기들이 15발 이상의 2000파운드(910㎏)짜리 마크(Mk)84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으며, 여기에는 정확한 폭격을 위한 통합직격탄(JDAM) 키트를 장착한 BLU-109 벙커버스터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BLU-109 벙커버스터는 강화콘크리트 1.7m를 관통한 다음에 터진다. JDAM 키트는 유도 부분과 꼬리날개로 이뤄져 GPS를 이용해 재래식 자유낙하폭탄을 표적까지 정확하게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이스라엘 전투기는 이번에 JDAM 키트를 장착한 BLU-109 벙커버스터를 연속으로 투하해 지하 깊은 곳까지 파괴하는 방식으로 나스랄라를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헤즈볼라의 발표를 종합하면 이번 폭격에선 나스랄라와 함께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 작전 부사령관 겸 레바논 주재 쿠드스군(이란의 해외 공작부대) 사령관인 아바스 닐포루샨과 2명의 하마스 고위 군사 지도자가 함께 숨졌다. 32년간 이스라엘의 암살을 피해 철저한 보안 속에 숨어 지내며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끌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과 강경 대응을 지휘했던 나스랄라는 이렇게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나스랄라의 소재를 파악해 공격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비난에 직면했던 이스라엘의 정보 공동체는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이 2006년 레바논 남부 침공 뒤 정보 부족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그 후 18년에 걸친 지속적인 개혁으로 헤즈볼라와 이란 등에 대한 정보력을 높였다고 설명한다. 꾸준히 인적정보(HUMINT)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위성과 통신감청 그리고 레이더와 신호분석, 사이버 정보를 결합해 중동 적국들에 대한 감시 수준을 높여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추락한 명성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단기간에 걸쳐 '특단의 조치'를 한 게 아니라 장기간 꾸준히 투자하고 칼을 뼈든 결과가 최근의 성과라는 이야기다.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레바논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은 이란에 심어둔 첩자를 통해 나스랄라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CNN 튀르키예어 방송에 출연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에 따르면 이란 정보기관의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를 감시하는 방첩 요원 20여 명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는 이중간첩이었으며 이들은 2018년 조국의 민감한 핵 관련 문서 1000여 건을 모사드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2021년 모사드 감시 책임자를 포함해 20여 명의 정체를 확인했으나 그들은 이미 이란을 탈출해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보공동체의 전문가들은 기술에 무게를 뒀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정보의 수집·분석·공작 기법을 융합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얻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예로 이스라엘군의 정보공동체가 정찰위성이나 정찰기 등을 동원해 수집한 신호정보(SIGINT)와 영상정보(IMINT)를 능동적으로 결합해 영상을 보면서 해당 지역의 통신을 입체적으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목표물 추적에 이용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 연합

최첨단 ICT 기술 동원한 이스라엘의 정보전

이를 위해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만(이스라엘 군사정보기관) 산하에서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8200부대가 동원돼 관련 소프트웨어와 융합 기술을 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만에는 과거 집중력과 끈기가 뛰어난 자폐 병사를 동원해 이미지 정보 분석에 활용하는 9900부대도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곳을 찍은 사진들을 오랫동안 살피고 비교하면서 지극히 미세한 변화를 찾아내 적의 동향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이 대신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보공동체는 현존하는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목표물 추적 능력을 극대화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인공위성·정찰기 등으로 수집한 지표상의 사진·동영상·열정보 등 영상정보(IMINT)와 신호정보(SIGINT), 지리공간정보(GEOINT) 등을 결합해 고정 또는 이동 목표물을 인식·추적하는 방식으로 나스랄라를 찾아냈을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위해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Nvidia)가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에 구축한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용 슈퍼컴퓨터인 이스라엘-1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1은 이스라엘에 구축된 첫 슈퍼컴퓨터다. 엔비디아는 이스라엘-1을 연구개발과 업계와의 협력을 위해 가동하며 다른 기관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스라엘 정보공동체가 보여준 일련의 '기술혁신'에는 미국 지원의 흔적도 감지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무엇을 노릴까. 나스랄라 암살은 네타냐후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중동 신질서 구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기습으로 1722명이 숨지고 251명에 납치되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수세에 몰렸다. 정보·안보 능력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진 사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정보력·군사력 등 힘을 앞세운 적극적인 공세가 성과를 내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동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세력과 이란 및 대리자로 이뤄진 시아파 세력 간 세력 균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만들기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해온 가자지구 하마스는 물론 레바논의 헤즈볼라,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이란의 대리 세력 무력화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위협해온 세력을 제거할 경우 네타냐후는 국내 정치에선 물론 중동 정치에서도 '힘을 통해 평화를 이룬 사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된다.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 120석 중 64석을 차지한 네타냐후의 연정이 나스랄라 사망 이틀 후인 9월29일 우파 정당 '새 희망(4석)'의 추가 합류로 68석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올해 초부터 하마스·헤즈볼라의 지도자·고위 지휘관을 간헐적으로 제거해온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7월 이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사건을 연이어 벌여왔다.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7월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혁명수비대(IRGC) 영빈관에서 폭탄으로 사망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담성·은밀성·정확성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암살 공작이었다. 

8월5일에는 이스라엘 전투기 100대가 한꺼번에 레바논 남부에 출격해 헤즈볼라 로켓 기지를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8월25일 전투기 100대를 동원해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근거지의 로켓 진지를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대규모 기습 정보를 사전에 포착해 이러한 '예방적 선제 조치'로 무력화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9월17일에는 헤즈볼라가 보안을 위해 대원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나눠준 삐삐 3000여 대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이스라엘 모사드로 추정되는 공작기관이 트로이 목마 공작을 벌여 삐삐 내부에 초소형 폭탄을 숨겨둔 뒤 이날 특정 신호를 발신해 일제히 폭발시킨 것이다. 9월18일에는 헤즈볼라 대원들의 워키토키(무선 송수신기)가 폭발했다. 일시 통신장애를 겪게 된 헤즈볼라는 다른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최고 지도부의 보안에 문제를 일으켰다. 

9월30일 이란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시대위가 숨진 나스랄라의 대형 사진을 내걸고 반이스라엘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

'핵'도 '지하벙커'도 김정은 못 지켜

이스라엘은 9월21일 헤즈볼라의 특수전을 담당하는 레드완 부대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이 머물던 베이루트 교외 다이에흐의 숙소를 정밀 공습해 그를 제거했다.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나스랄라가 그다음 희생자가 되면서 중동의 세력 균형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이란은 하니예와 나스랄라, 레바논에서 폭격으로 숨진 자국 혁명수비대 지휘관의 죽음에 보복한다며 10월1일 180여 발의 미사일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이란으로선 '신은 위대하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 등의 정치적 구호와 목표 아래 함께 움직여온 대리 세력인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과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존재의 의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미사일이 대부분 이스라엘의 방공망에 요격되고 일부가 팔레스타인 주민이 거주하는 요르단강 서안 등에 떨어지면서 이스라엘의 '힘'만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그 때문에 국제유가와 전 세계 증시가 잠시 출렁이긴 했지만 공은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이란은 앞으로 네타냐후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주목할 점은 이번에 이스라엘이 나스랄라 제거를 위해 사용한 군사 장비와 정보 기술의 대부분을 한국도 보유·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공군은 JDAM 키트를 장착한 BLU-109 벙커버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영상정보(IMINT)·신호정보(SIGINT)·지리공간정보(GEOINT)의 하이브리드와 같은 첨단 정보기술은 한국의 발달한 IT 기술과 미국 등 우방과의 활발한 교류를 볼 때 충분히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철저한 보안으로 외부에 알려지지도, 알릴 수도 없지만 말이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외에는 IT를 비롯한 군사·정보 기술력에서 처지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옛소련을 지켜주지 못했고, 지하벙커도 나스랄라의 목숨을 구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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