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와 고속 인터넷 그리고 MP3 플레이어
지금의 PC는 성능이나 기능면에서 상상 이상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 계기야 여럿 있겠지만, 시작은 네트워크의 질적ㆍ양적 발전을 꼽을 수 있다. 머나먼 옛날 “삐~ 삐비비비비비비~” 소리와 함께 인내와 고난을 강요했던 전화 접속 모뎀 시절을 지나 바야흐로 1999년, 쾌적한 네트워크 생활을 가능케 했던 ADSL(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이 곳곳에 깔리면서부터다. 8Mbps(약 1MB) 정도의 초라한 속도이긴 했지만, 최소 수십 분이 소요되던 전화 접속 모뎀 시절과 비교가 불가할 수준의 혁신이었다. 전화 요금이 아니라 별도의 요금을 지불함으로써 부담을 크게 낮춘 것은 보너스라 하겠다.
이때부터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게 되었다. 전화 접속 모뎀 시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려받을 데이터의 크기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면,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는 용량과 데이터 크기에 상관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런 변화는 당시 우리가 감상했던 콘텐츠에 영향을 줬다. 그 시작은 나름대로 고 비트레이트(?) 음원, MP3 파일의 등장 아닐까?
MP3의 등장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단 몇 MB 용량의 파일 하나로 CD 수준의 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동안 최대한 좋은 음질의 음원을 PC에서 감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ODD에 CD를 직접 넣거나 리핑 작업으로 WAV를 추출해 틀곤 했다. 허나 이제 그 수고가 줄어든 것이다. 음원 압축 기술의 발전과 초고속 인터넷의 대역폭이 시너지를 일으켜 그야말로 MP3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음원을 어떻게 재생하느냐였다. 당시 고민이 개발자들에게 닿았는지 세상에 많은 미디어 플레이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휴대용 MP3 플레이어도 덩달아 전성기를 맞았으나 역시 PC 앞에 오래 앉아있는 유저들에겐 미디어 플레이어가 더 익숙한 소프트웨어였다. 이 당시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었는지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보았다.
Windows에 기본 포함됐지만, 그래서 외면 받았던 ‘WMP’
이름에서 알 수 있듯 Windows 운영체제에 기본 포함되어 제공됐던 플레이어다. Windows 3.1 시절부터 제공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플레이어라 하겠다. 초기에는 기능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다. Windows 3.1이 출시되었던 199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음원이 다양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 하지만 MIDI와 WAV 파일 재생이 가능해 당시에는 그럭저럭 음원 재생을 즐기기에 좋았다. 당시 음원 파일이라고 해봐야 둘 중 하나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Windows Media Player는 꾸준히 발전을 이어간다. 특히 Apple이 QuickTime Player를 선보이며 주목받자 빠르고 신속하게 동영상과 재생 코덱을 꾸준히 추가해 대응한 것이 계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Windows 98 출시 이후 WMP 버전이 6.4로 업데이트되는데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것은 좋았으나 너무 앞서 나갔는지 혹평을 받았다. 우선 시각적으로 개선이 이뤄졌지만, Y2K 밀레니엄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촌스럽다는 평을 받았다. 여기에 HTML 웹페이지 멀티미디어 삽입을 지원했지만, 당시 느린 PC 성능과 인터넷 속도가 발목을 잡았다.
이후에는 다시 각성했는지 UI를 다듬고 최신 환경에 맞춰 기능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미디어 플레이어가 되었다. 다양한 음원과 영상을 라이브러리와 목록 등을 활용해 재생하고 관리할 수 있다. Windows 운영체제 내에서 지원하는 대부분 코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순수하게 재생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리소스를 많이 차지해 지금은 외면 받고 있다.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다.
굵직한 그 목소리 너머 뛰어난 기능을 갖췄던 ‘Winamp’
강렬한 번개모양 아이콘을 실행하면 목소리 좋은 형님이 “Winamp~ It really whips the llama's ass”라고 우리를 맞았던 바로 그 프로그램. Winamp다. 1997년 처음 등장했던 미디어 플레이어인데 등장 초기에는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진정한 전성기는 1998년 등장한 Winamp 2부터다. 스킨이 이미지로 되어 있어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데다 다양한 기능을 플러그인 형태로 지원하게 되면서 잘 사용하면 엄청난 미디어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단 무분별하게 설치하면 묵직함에 당시 시스템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것이 함정.
Winamp의 강점은 라이브러리 관리에 있었다. MP3 플레이어부터 당시 아이팟의 음악 관리도 가능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을 자유롭게 관리했다는 부분이 강점으로 꼽혔다. MP3는 기본이고 다양한 미디어 포맷을 지원해 편하게 드래그 앤 드롭으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ID2 태그 수정 기능을 지원함으로써 잘 사용하면 최고의 재생목록을 꾸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나만의 라이브러리를 강박적으로 관리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윈앰프는 그 욕망을 충족시켜 준 점이 인기의 비결이라 하겠다.
Winamp는 꾸준히 업데이트가 됐지만, 여러 기능을 추가했고 주력 개발자들이 떠나면서 오류와 리소스를 많이 차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무리한 유료화를 추진함으로써 사용자의 외면을 받았다. 다양한 무료 소프트웨어도 많은데 굳이 비용을 지불할 명분이 없었다. 이후 라이트 버전의 무료 사용판을 선보였지만, 이미 민심은 떠난 뒤였다.
음질 하나로 국뽕을 채웠던 ‘코원 제트오디오’
1997년 공개된 오디오 플레이어로 당시 쓸 수 있던 대부분의 오디오 코덱을 지원해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기본 재생 음질도 좋았고 일부 유료였지만 BBE, BBE+, BBE ViVA 등 음장효과가 매우 뛰어나 귀를 즐겁게 했다. BBE는 라이선스를 취득해 적용한 것인데 한 번 경험하면 다른 효과는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났다고 알려져 있다. 마치 전축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스킨도 차별화 포인트였다.
제트오디오의 또 다른 강점은 부가기능에 있다. 마치 CD를 재생하는 것처럼 음원의 앨범 재킷 이미지를 띄워주는 앨범아트 기능부터 편법이지만 리얼 오디오를 지원함으로써 유저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이후 코원이 제트오디오 기술을 등에 업고 MP3 플레이어와 고음질 플레이어를 선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뽕을 진하게 마셔도 아쉽지 않다.
다만 꾸준히 업데이트가 이뤄졌음에도 무료와 무료와의 괴리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장 효과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무료인 베이직을 설치했는데 기대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 이가 많았을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선택 가능한 음원 플레이어의 수가 무궁무진했기에 사용자가 분산되었고, 코원 자체도 전략을 당시 인기가 있는 MP3 플레이어 자체에 초점을 두면서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되었다.
범용성은 떨어져도 용량 때문에... ‘리얼 플레이어’
아는 사람들은 잘 아는 바로 그 플레이어. 인터넷 속도가 우리가 매우 만족하던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그 시절을 풍미했던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중 하나가 리얼 플레이어다. 리얼네트웍스가 자체 개발한 코덱 기반인 RM, RMVB, RMHD, RA 확장자의 파일을 재생할 수 있었다. 자체 포맷이라 타 플레이어에서 재생은 불가한 게 단점이지만, 화질에 비해 용량이 상당히 낮아 쓰임새가 다양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리얼플레이어는 낮은 비트레이트에 비해 품질이 제법 좋아 모뎀 시절에도 많이 쓰였고 이는 고속 인터넷 도입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어둠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경로로 이 플레이어가 적극 활용됐다. 이것은 논외이고 사실 오디오 자체도 작은 용량에 비해 음질이 제법 괜찮았기에 스트리밍용으로도 제법 쓰였다.
그러나 리얼플레이어 기반의 파일은 타 플레이어에서 재생이 불가능했고 이는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MP3와 RA 파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둘 다 감상하려면 두 플레이어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 다만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여러 플레이어가 리얼미디어 포맷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희소성이 사라져버렸다. 뒤늦게 리얼플레이어도 타 코덱을 지원했지만, 스스로 쓰기 편한 플레이어를 쓰지 누가 이걸 쓰겠는가?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가볍고 단순했지만, 매우 강력했다 ‘Foobar2000’
2000년대 전후에 등장했던 미디어 플레이어는 대부분 화려하거나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앞세운 것이 특징이다. Winamp는 개인화가 강점이고 제트오디오는 전축 같았고 다른 플레이어는 전형적인 미디어 플레이어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그에 비해 2002년 말에 등장한 Foobar2000은 그 궤를 달리하며 주목받았다. 정말 단순함의 극한을 보여줬다고 할까?
단순한 모습과 달리 기능은 실로 엄청났다. 이 플레이어는 Winamp 개발자 출신인 피터 파블롭스키가 개발했는데 무료임에도 MP3는 기본이고 무손실 음원이었던 FLAC, OGG 외에 AIFF, ALAC 등 다양한 음원 코덱과 확장자를 지원했다. 별도의 컴포넌트 설치가 더해지면 지원 음원은 더 크게 늘어난다. 출력 장치도 설정할 수 있어서 WASAPI나 ASIO 등 제법 본격적인 설정도 가능했다.
태그 관리도 강점이었다. 매우 세부적으로 관리가 가능해 편리하게 음원을 정리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개인화도 화끈해서 마음껏 꾸미는 것도 가능했다. 메인 소스는 비공개였지만 SDK를 통한 플러그인 개발을 허용한 덕이다. DLL 파일을 추가해 외부 DSP나 VST 사용도 가능했다. 이런 것을 쓰지 않아도 된다. 플러그인을 많이 더하면 엄청 무거워지기 때문. 다만 플러그인을 많이 더하지 않았을 경우,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가벼워서 많은 이들이 선호한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난 2022년, 플러그인을 다수 만들던 개발자가 피터 파블롭스키와의 불화로 인해 개발 중단을 선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용자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기타 국산 미디어 플레이어’들
이 외에도 음원 재생에 특화된 플레이어, 우리나라에서 선보인 것들이 제법 많았다. 금방 잊혀졌을 뿐. 우선 영상 플레이어로 유명세를 떨쳤던 곰플레이어의 음원 전용 플레이어인 곰오디오다.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는데 다양한 코덱과 함께 MP3 파일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가사 동기화 기능을 지원했다. Foobar2000처럼 WASAPI와 ASIO 출력을 지원했던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업데이트가 이어지며 2010년대 후반에는 광고가 붙으며 불편함을 안겨줬다. 전용 음원 플레이어지만, 영상 재생용인 곰플레이어가 더 유명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기가 어려웠다.
알집과 알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스트소프트에서 내놓은 알송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는데 ‘알툴즈(ALTOOLS)’ 중 하나였다. 알집, 알약을 시작으로 캡처도구와 PDF 리더, 알드라이브 등이 알툴즈에 포함되어 있는데 여전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가사관리가 매우 뛰어난데 자체적으로 가사를 입력하고 수정과 심지어 음원과 동기화도 가능하다. LyricsEditor 프로그램이 알송을 지탱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데이터베이스가 그 어떤 프로그램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기능이 부실하고 여러 오류들이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렇게 인터넷 부흥기인 2000년대 전후에는 많은 변화와 함께 변화의 선봉장에 서려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음원 플레이어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인터넷 속도가 계속 빨라지면서 음원 플레이어 경쟁이 영상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해준(?) 영상 플레이어들을 알아보자.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글 / 해선마스터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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