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심은경이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로 관객 앞에 섰다.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가 설국의 여관에서 낯선 시간과 감정을 마주하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 고요한 정서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온 미야케 쇼 감독의 세계관 속에서, 심은경은 말보다 감정이 먼저 전해지는 연기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작품이 공개될수록 또 하나의 질문이 따라붙는다. “왜 심은경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게 됐을까?” 최근 8년간의 행보만 놓고 보면 그 궁금증은 자연스럽다. 일본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현지에서 ‘실력파 배우’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심은경 본인의 설명은 의외로 담담하다. 일본 활동의 무게중심이 커진 직접적인 계기는 ‘의도된 선택’이라기보다 ‘상황의 결과’였다.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2018년 일본 작품과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뒤, 2019년 신문기자 개봉과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을 전후해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맞닥뜨렸다고 밝혔다.

시상식을 마치고 곧바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국경 이동이 막히면서 2년 가까이 일본에 체류할 수밖에 없었고, 이미 잡혀 있던 현지 스케줄을 소화하며 자연스럽게 일본 활동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일본으로 아예 넘어간 건 절대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는, 선택을 둘러싼 오해에 대한 단호함이 담겨 있다.

다만 일본행의 배경을 단순히 코로나로만 환원하기는 어렵다. 심은경은 한국에서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뒤, 그만큼 깊은 내적 흔들림도 겪었다고 여러 차례 털어놨다. <수상한 그녀> 이후 쏟아진 기대와 수상, 그리고 “내가 과연 그에 걸맞은 배우인가”라는 의문은 긴 슬럼프로 이어졌다. 연기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시기, 그는 스스로를 다시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배우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 일본이었다.

일본 영화계는 심은경에게 또 다른 의미의 무대였다. 그는 최근 <여행과 나날>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서 신인의 자세로 현장에 섰고, 언어 장벽 앞에서 연기의 본질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말이 아니라, 말 너머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일본어 연기를 통해 얻은 이 질문은 한국어 연기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여행과 나날>의 ‘이’라는 인물에 강하게 끌렸다고 설명했다. 거창한 커리어 전략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감독의 세계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영화계가 그에게 행한 씁쓸한 기억도 존재한다. 과거 대종상 시상식 후보 논란을 둘러싼 경험은 그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 제도와 관행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심은경은 <써니>로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유학 중이었던 그가 불가피하게 참석이 불가함을 통보하자 행사 당일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된 일이 있었다.

최근 그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 얼굴을 비추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심은경의 커리어는 ‘어디에서 활동하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품고 연기하느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