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제타를 통해 바라본 한국인의 장보기 습관의 변화
필자는 온라인 장보기를 꽤나 즐기는 편이다.
'남자가 무슨 장을 보느냐...'라는 편견이 사라진지 진작이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에 혼자서 두부·대파·딸기 등을 살 때면 조금, 아주 조금 눈치가 보인다. 소심한 남자라고 평가해도 어쩔 수 없다.
반면, 온라인 장보기는 눈치 볼 일 없이 신나게 소파에 누워 할인도 받고, 1+1으로 기분도 좋아지고 참 좋다. 희한하게도 상품이 도착할 때보다 구매 자체가 너무 신난다. 소풍 갈 때보다 소풍 가기 전 들뜬 기분이 더 좋은 거랑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장보기는 결코 단순한 소비 행위만은 아니다.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우리 일상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과거 장을 본다는 행위가 직접 시장을 오가며 신선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몸의 노동’이었다면,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끝나는 ‘두 손의 여유’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내가 장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같은 수많은 소비자의 습관 변화가 곧 시장 전체의 질서를 흔드는 일이라는 걸 요즘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익숙하게 이용하던 온라인 장보기가, 한 때 마트 왕국이었던 기업들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 꽤 낯설다.
기존 유통업계의 추락과 쿠팡의 독주
유통업계가 어렵다. 최근 유통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바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이다. 홈플러스의 위기 원인은 여럿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들의 쇼핑 방식의 급격한 변화일 것이다.
전통시장 중심에서 대형마트로, 그리고 최근에는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으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크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쇼핑 문화였던 전통시장은 점차 소비자의 생활 패턴과 맞지 않게 되었다. 주차의 불편함, 일정하지 않은 품질, 그리고 대형마트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들과 차별화된 편리성에 밀려 소비자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1993년 이마트의 등장 이후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온라인 장보기의 확산이다.
스마트폰 보급과 모바일 인터넷 환경의 개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빠르게 변했고, 이는 결국 대형마트 방문의 횟수를 급격히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이제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장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빠른 배송과 신선도 유지, 편리함을 제공하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특히 쿠팡프레시, 마켓컬리, 오아시스 등 장보기 전문 플랫폼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기존 대형마트 중심의 주도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플랫폼들은 기존의 대형마트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배송 속도, 상품의 다양성, 그리고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었고, 소비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편리성과 효율성에 매료되어 기존의 대형마트를 떠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기존 대형마트들은 빼앗긴 시장을 찾아오기 위해 전용 물류창고를 만들고(이마트 네오센터), 점포 물류센터를 활용해 배송을 차별화하거나, 심지어 최근에는 본사를 임대료가 조금 더 싼 곳으로 이전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쿠팡이나 컬리로 바뀌어버린 고객의 구매 패턴을 바꾸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롯데마트의 승부수, 전격 제타작전 - ‘롯데마트 제타’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1일 자정, 롯데마트의 온라인 플랫폼이 새로운 승부수를 띄웠다.
온라인 전용 앱 롯데마트몰을 ‘롯데마트 제타’로 전환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새롭게 브랜딩하고 디자인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26년간 몸담으며 수많은 서비스 개선을 진행해봤지만, 이번 롯데마트의 변화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의 엄청난 변화들이었다. (변화라는 단어도 실은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탄생’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롯데마트는 2022년 영국 리테일 테크 기업 오카도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후 2년 동안 준비했다. 그리고 기존에 ‘대형마트 = 시장(없는 게 없는)’이라는 등식을 깨고, 신선식품 특화 플랫폼으로 전환하였다.
롯데마트 제타는 언급한 것처럼 영국의 오카도와 함께 만든 신선식품 플랫폼이다.
오카도(Ocado)는 2000년에 설립된 영국의 온라인 식료품 전문 유통 기업으로, 오프라인 매장 없이 100% 온라인으로 운영되며, 인공지능과 로봇 자동화를 기반으로 한 첨단 물류 시스템(Ocado Smart Platform)을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진보된 온라인 식품 유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쿠팡이 압도적으로 쇼핑 시장을 끌어가고 있는 지금, 아무리 오카도의 기술이 이식되더라도 고객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 역시 다른 커머스보다 쿠팡에서 구매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제타의 오픈을 기다렸고, 사용자 입장에서, 그리고 이커머스 전문가 입장에서 그 결과물이 궁금했다.
“그냥 장보기가 직진이네”
오픈 첫날(4월 1일) 롯데마트 제타 앱을 다운받아 사용해봤다.
투박한 첫 화면, 큼직한 글씨, 꾸밈없는 인터페이스. 얼핏 보면 마치 2010년대 초반의 쇼핑앱.
롯데마트 제타의 첫인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플랫폼의 첫 인상은 디자인이 좌우한다. 그런데 기대가 큰 탓인지, 제타의 첫인상은 매력적이지 못했다. 나 같은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기대에도 한참 못 미쳐 보인다. 세련미나 미적인 감각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는 듯한 인상이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우리나라 고객들의 눈이 얼마나 높은데, 좀 실망스러웠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컬리의 감각적인 톤 앤 매너나 기존 효율적인 인터페이스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너무 올드한 거 아닌가” 싶었다.
얼핏 보면 제타의 홈 화면은 2000년 대 초반의 쇼핑몰이 떠오른다.
투박한 첫 화면, 그런데 이상하게 잘 읽혀
제타를 방문하고 나서 가장 큰 놀라움은 홈 화면의 디자인이다.
보통의 장보기 몰은 예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이나, 당장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멋진 과일 이미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제타는 당연히 기대했던 멋진 음식 이미지 대신 텍스트가 한가득이다. 텍스트도 세련된 모습이 아닌 최소한의 기본 폰트다.
기존 장보기 몰의 구매 습관에 길들여져 있던 필자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실망과 아쉬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래로 스크롤하는 순간 어? 그런데 상품들 쭈루룩… 사야 될 상품들이 간간히 보인다. 담아본다. 그리고 상품 옆에 바로 장바구니 담기 버튼이 너무 사용하기 편하게 위치해 있다. 마치 날 담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굳이 상세 페이지 안 가고, 바로 홈에서 장바구니에 담으니 편하다.
지나치게 큰 글씨가 촌스러워 보였는데, 투박한 줄만 알았던 글씨들이 조금 지나니 눈에 쏙쏙 들어온다. 사실 최근 노안 때문에 작은 글씨로 뒤덮인 핸드폰 보는 게 살짝 짜증도 났었는데 편하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상하다. 좋은데~~관심 없는 행사로 샐 일이 없이 장보기가 마냥 직진이다.
나를 꼬드기는 상품들이 지뢰밭같이 놓여 있는 기존 장보기 몰과 쇼핑 경험이 사뭇 다르다. 쇼핑을 마무리하고 결제까지 해보니, 롯데마트 제타의 그 ‘투박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느껴진다.
홈 화면은 직관적이며, 상품 옆에 장바구니 담기 버튼이 바로 배치되어 있어 상세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고도 빠르게 쇼핑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 사용자나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구성 덕분에 구매까지의 여정이 매우 짧아질 것 같다.
한 눈에 들어오는 큼직한 텍스트와 정돈된 배치는 시니어 사용자나 시력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듯 싶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능적으로 ‘딱 필요한 만큼’을 보여주는 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기존 플랫폼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용의 여유가 생긴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당일배송은 물론, 상품 카테고리별 구성이 군더더기 없이 잘 정리되어 있고, 구매 히스토리를 반영한 추천 기능도 나름의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 ‘직관적이면서 실용적인 앱’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듯싶다.
다만, 디자인적으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만 더 감각적이고 세련된 UI가 가미된다면, 지금의 기능성에 감성까지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도 ‘실속파 장보기 고객’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신선한 재료들만 골라 담은 도시락처럼, 제타는 군더더기 없이 본질에 충실하다.
‘예쁘진 않지만, 편하다’.
플랫폼의 본질은 ‘기능보다 경험’
요즘 대부분의 장보기 플랫폼은 엄청 좋은 기능과 엄청 먹음직스러운 사진들 등 기능적으로는 상향 평준화돼 있다. 하지만 사용자는 기능보다 ‘경험’을 기억한다. 그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작고 디테일한 ‘배려’에서 나온다.
롯데마트 제타는 디자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사실 꽤 촌스럽다), 사용자 경험 설계에 있어서 놀라운 디테일을 보여준다. 오카도의 힘인지, 롯데의 깊은 고민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는 단순한 UI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 UX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이라면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이고, ‘얼마나 빠르고 쉽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느냐’이다.
롯데마트 제타는 그런 점에서 꽤나 충실하다. 감성은 약할지 몰라도 기능은 단단하고, 무엇보다 사용자 입장에서 ‘필요한 걸 빠르게 해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이건 하루 이틀 써보다 말 앱이 아니라, 습관처럼 계속 손이 가는 앱의 조건이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이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다. 눈에 예쁜 것보다 손에 익는 게 먼저다.
롯데마트 제타가 보여준 전략은 분명하다. ‘잘 팔리는 앱’보다 ‘잘 쓰이는 앱’이 되겠다는 것. 이제 중요한 건 앞으로의 디테일이다.
지금의 실용적인 뼈대에 감각적인 살을 더한다면, 제타는 충분히 새로운 장보기 플랫폼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타의 전략은 필자의 무릎을 치게 만든다. 디자인은 매력적이지 못하고, 투박하며, 심지어 촌스럽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디자인과 사용성은 별개였다.
예쁜 것보다 편한 것이, 결국 더 오래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