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럼틀 타도 되겠네'…만화에나 나올 법한 '만화가의 집'
[기묘한 건축] 혹시 미끄럼틀인가요?…도쿄 주택가 한복판에 들어선 ‘만화가의 집’
작년 9월 일본 도쿄의 한 주택가에 독특한 모양의 협소주택이 들어섰다. 좁은 주택가 사이로 흙색으로 마감한 외벽의 전면부가 미끄럼틀처럼 비스듬한 경사가 나 있어 마치 땅에서 하늘로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집이다. 주택 이름 또한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가의 집’(A Japanese manga artist’s house)이다.
건축주는 만화가 지망생으로, 그의 배우자와 그가 키우는 반려동물 올빼미 두 마리를 위한 집을 짓기로 계획했다. 설계는 탄 야마노우치 건축사무소(Tan Yamanouchi&AWGL)에 의뢰했다.
건축가 야마노우치는 건축주와 상담을 나누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일본 만화가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변했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제작이 만화 제작의 주류가 되면서, 그동안처럼 작가의 아틀리에에 조수들이 모이는 것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만화가의 개인 주택이 회의 장소가 되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위한 스튜디오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건축가는 이 집이 앞으로 건축주의 창작 공간이자 만화 스튜디오 장소로 활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톡특한 아이디어를 발휘해 설계했다.
일단 외관은 마치 만화 속에서 볼 것 같은 디자인을 자랑한다. 서쪽 전면도로에 접한 입면은 미끄럼틀처럼 경사진 곡선 형태로 만들었다. 외벽은 전체를 흙색으로 마감해 건물이 땅에서 솟아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또 이 집은 창이 많지 않고 그나마 난 창도 크기가 작다. 둥글고 네모난 다양한 창들이 독특한 곳에 위치한 것도 독특하다. 창이 많지 않아서인지 무언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출입구도 어두운 편이다. 출입문을 터널식 아치형으로 만들어 이 집에 들어오면 터널 안으로 들어가거나 벽을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주변 건물처럼 큰 창이 없기 때문에 집 내부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구조는 아니다. 전면부는 2층, 후면부는 3층으로 설계했는데 군데군데 난 작은 창으로 빛의 통과를 조절해 주택 내부에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도록 했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과 생활을 위해 밝아야만 하는 공간을 창가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으로 분리했고, 이 공간들이 계단과 분할 평면 등으로 유연하게 이어진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집이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도록 하면서도 외부에 지나치게 개방되지 않게 사생활 보호를 강조했다”며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약간은 허구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집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글=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