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량은 2배, 완성도는 그 이상 ‘진·여신전생5 벤전스’

2021년 발매된 ‘진·여신전생5’는 오랫동안 뭇 게이머의 애간장을 녹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당시 닌텐도 스위치의 초기 프로모션과 맞물려 첫 PV가 일찍 나온 터라, 로고 공개부터 실제 발매까지 4년도 넘게 걸렸다. ‘페르소나 5’로 유입된 신규 팬덤이 과연 원조 ‘진·여신전생’은 어떨까, 궁금해하며 출시일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담금질 끝에 선보인 ‘진·여신전생5’는 메타크리틱 84점, 오픈크리틱 85점의 호평과 함께 전세계 누적 판매량 100만 장 돌파라는 기염을 토했다. 주된 평가는 시리즈 특유의 매력과 고유한 게임성을 현세대에 맞춰 계승 및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기대치가 높을수록 실망도 큰 법이라, 괄목할 만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부 미진한 요소는 옥의 티로 남았다. 새롭게 채택한 오픈필드가 지나치게 복잡한 반면 편의성이 떨어지고 흥미로운 배경 설정과 별개로 메인 스토리가 다소 급히 전개됐다. 이에 대해선 당시 필자가 본지 리뷰서 좀 더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다행히 아틀러스 역시 세간의 아쉬움을 모르지 않는지 어느 틈인가 추가 개발에 착수, 마침내 오는 6월 14일 ‘진·여신전생5 벤전스’를 한국어화 정식 발매한다. 이로써 신규 시나리오를 포함한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PC, PS4, PS5, XONE, XSX|S로 지원 기기가 대폭 확장된다.

본편 발매로부터 거의 3년 만에 선보이는 ‘진·여신전생5 벤전스’

소녀의 손을 잡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로

먼저 시나리오를 보자.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설정이나 서사는 은유, 함축된 내용이 많아 어디까지나 필자 나름의 해석임을 미리 밝혀두겠다. 그럼에도 아예 백지 상태로 플레이하기 원한다면 이 단락은 넘어가길. 대대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세계 각지의 신화, 전설, 민담 속 정령이나 요괴를 악마라는 개념으로 통합시켰다. 저 제우스나 오딘처럼 유명한 신과 영조와 성수, 심지어 요시츠네 같은 역사적 인물도 악마전서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법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지고천에 올라 다른 신들의 지혜를 빼앗고 악마로 격하시킨 탓이라는 게 ‘진·여신전생5’ 세계관이다.

이에 더하여 본작을 새롭게 대두되는 관계는 우(牛, 소)신과 사(巳, 뱀)신 사이의 문제다. 앞서 ‘진·여신전생5 벤전스’ 특별 방송서 코모리 시게오 디렉터는 “뱀은 용과도 동일시되며 세계 각지에서 숭배를 받지만, 어느 지역에선 토벌 설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 뱀을 토벌하는 존재가 우신이라 불리는 뿔을 지닌 신이나 그 권속으로 나타나는 데 주목했다. 즉 토벌하는 자와 토벌당하는 자의 관계도를 아틀러스가 독자적으로 해석해 담아낸 것이다. 본편이 우신, 뿔을 지닌 신의 시점에서 세계를 만든다면 이번에는 뱀신, 고통 받는 이들의 복수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법의 신과 격하된 악마들, 그리고 저마다의 창세를 꿈꾸는 인간들
‘진·여신전생5 벤전스’는 신세력 카디슈투를 통해 이 구도를 흔든다

본작의 부제 ‘벤전스(Vengeance, 복수)’는 이러한 세계관을 잘 나타낸다. 스스로 고통받는 이들이라 칭하며 주인공 앞을 막아서는 네 명의 여마, 카디슈투는 대체 무슨 목적일까. 빛의 왕국을 바란다는 천사 만세마트는 믿어도 좋은 상대인가. 디아트에 흘러든 소녀 히로미네 요코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으며, PV서 공개된 주인공 나호비노의 또다른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새롭게 추가된 루트 ‘복수의 여신’편을 플레이하기 바란다. 진입 방법은 간단하다. 게임을 시작한 직후 어떤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소녀-물론 요코다-의 손을 잡는다’를 선택하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 점은 분기 시점이 게임 시작 직후라는 거다. 그간 아틀러스가 주로 취한 방법은 ‘페르소나 5 더 로열’처럼 신규 캐릭터와 함께 메인 스토리를 보강하거나 ‘에피소드 아이기스’ 등 후일담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반면 ‘진·여신전생5 벤전스’는 기존 내용을 ‘창세의 여신’편이라 명명하여 그대로 두고 아예 추가 루트를 하나 더 열어줬다. 물론 본격적으로 전개가 갈리는 건 중반부터지만 어쨌든 본편과 다루고자 하는 주제 자체가 다르니 보강의 개념은 아니다. 즉 2회차 리플레이 가치는 대폭 상승한 반면, 이번에야말로 기존 내용이 나아지길 바란 게이머라면 실망할 수 있다.

게임 시작 직후 선택지가 주어지는, 말하자면 완전히 별개 루트다
‘복수의 여신’편에서 새로운 모습의 나호비노로 플레이할 수 있다

신규 악마, 스킬, 게스트로 더욱 풍성하게

‘창세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편이 동등한 별개 루트로 설계된 만큼, 어느 쪽을 먼저 즐겨도 무방하다. 분량은 양쪽 다 80시간가량. 초반 선택지서 ‘소녀의 손을 잡는다’를 골랐다면 미나토구 다아트서 유즈루와 조우할 때 히로미네 요코도 함께 만난다. 정확히는 주인공과 유즈루가 인사를 나누다 악마 글라샬라볼라스에게 습격 당하자 그걸 요코가 구해주는 흐름이다. 두 사람은 ‘진·여신전생5 벤전스’서 추가된 게스트 시스템을 통해 잠시나마 전력이 되어준다. 유즈루는 악마 소환 프로그램으로, 요코는 본인이 직접 마법을 시전하며 싸운다. 이후 본편처럼 유즈루가 떠나고 요코만 동행한다.

게스트 시스템은 스토리를 전달함에 있어 간단하면서도 퍽 효과적인 추가 요소다. 본편의 경우, 코시미즈로부터 동료 악마를 넘겨받는 등 간접적인 도움뿐이라 대다수 NPC의 존재감이 옅었다. 다아트서 고생하는 내내 거의 만날 일이 없다가 잠깐 귀환하여 컷신을 볼 때만 교류하는 처지다. 그러니 결국 운명이 교차하는 갈림길에 다다라서도 딱히 어느 누구에게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게스트는 다아트 탐색에 동행하며 메인 스토리는 물론 서브 퀘스트까지 자기 생각을 한 마디씩 얹어 진짜 동료라는 인상이 든다. 그렇게 주인공은 요코에게, 요코는 주인공에게 점차 감화되어간다.

게스트는 스토리와 밸런스 측면 모두에서 퍽 만족스러운 추가 요소
이따금씩 말을 걸어오기에 기존 NPC보다 관계 형성이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밸런스 측면에서 게스트는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춰준다. 쓸만한 악마가 부족한 초반에 디아, 지오, 아가, 무드를 지니고 타룬다, 스쿤다까지 배우는 요코는 최고의 전력이다. 게스트라지만 동료 악마와 똑같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르며 아이템도 쓰는데다 카무이로 슬롯을 늘려줄 필요조차 없다. 비록 전개에 따라 파티를 이탈할 위험이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쓸 가치는 충분하다. 참고로 ‘진·여신전생5 벤전스’에 기본 탑재된 추가 콘텐츠 ‘인수라와 9명의 마인’를 통해 다름아닌 혼돈왕 인수라의 게스트 합류가 실현됐다. 새로운 시스템 아니었음 불가능했을 꿈의 조합이다.

게스트 외에도 카라스텐구, 이프리트 등 반가운 얼굴과 진수, 비신과 같이 본편에 없던 악마가 다수 등장하여 총 270체가 넘는 풍성한 구성을 자랑한다. 냐미냐미, 오냥코폰, 아난시처럼 주로 아프리카 전승에서 따온 색다른 악마가 돋보인다. 쿠 훌린의 게 볼그를 비롯하여 전용 스킬이 크게 늘었고 지원 기기가 PC 및 거치형 콘솔로 확장됨에 따라 전체적인 조형, 연출이 선명해졌다. 아울러 복수의 특정 악마를 지녀야 발동되는 마가츠히 스킬이 추가됐는데, 마치 올해 초 ‘페르소나 3 리로드’서 호평 받은 믹스레이드가 떠오르는 퍽 괜찮은 추가 요소다.

신규 참전부터 반가운 얼굴까지, 무려 270체가 넘는 악마가 등장
쿠 훌린의 게 볼그처럼 전용 스킬이 늘어난 데다, 멋들어진 합체기까지

탐색도 육성도, 더는 어려운 게임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주된 추가 요소라면 나머지는 개선 사항에 가깝다. 일단 선호보다 불호가 강했던 다아트 탐색은 질적 향상과 양적 확장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지도의 고저차를 구분하기 쉽도록 수정됨은 물론 북쪽 고정을 풀 수 있고 원하는 아이콘만 켜거나 끄는 게 가능하다. 처음부터 마가츠카가 표시되어 동선을 짜기 용이해진 점 역시 긍정적. 그럼에도 건물 옥상이나 구석에 숨은 이츠즈카, 미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름 위 시야라는 기능도 생겼다. 평면적인 지도와 달리 -구글 어스처럼-3D 조형 그대로 시야만 높아지므로 탐색이 한결 수월하다.

지도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신감인지 다아트의 구조 자체는 더 복잡해졌다. 다만 짜증을 돋우는 복잡함이 아니라 아틀러스 특유의 유기적인 레벨 디자인이 강화된 모습이다. 기존 다아트 구조는 유지하면서 마가츠로라는 이동용 궤도를 곳곳에 추가하여 지름길로 쓰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와 연결시킨다. 횡적 이동은 달리기로 충분한 만큼 마가츠로는 종적 이동이 잦은데, 상술한 구름 위 시야 덕분에 특별히 곤란한 점은 없다. 그저 마가츠로에 타려면 우선 내비 악마가 발견해야 한다는 것 정도. 나아가 ‘복수의 여신’편에서 가게 되는 신주쿠구 다아트는 아름다운 풍광과 만듦새를 모두 잡았다.

구름 위 시야는 주변 지역의 종적 구성을 파악하기에 더 유용한 편
덕분에 마가츠로를 통해 적극적인 종적 공간 활용이 가능해졌다

자동전투 시 내성에 맞춰 스킬을 사용하고, 사교의 세계에 2신 전서 합체가 추가되었으며, 다아트서 아오가미형 신조 마인의 유해를 통해 그 허물을 몇 번이든 입수할 수 있고, 신약의 석판으로 주인공 능력치 초기화가 가능해지는 등 크고 작은 개선 사항이 숱하다. 귀중한 향 아이템을 주는 마가츠히 악마와 점점 더 보상이 커지는 연속 인카운터 덕분에 육성 피로가 줄기도. 반대로 인카운터를 원치 않을 때면 적의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신규 카무이도 유용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거의  언제 어디서든 게임 세이브를 지원하여 파티 전멸과 구간 반복의 공포도 옛말이 됐다는 거다.

저장이 자유로운 ‘진·여신전생’이라니 오랜 팬으로선 묘한 기분이다. 앞서 언급한 게스트 시스템과 더불어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 올해 초 ‘페르소나 3 리로드’ 리뷰서 비슷한 논지로 적었는데, 이제 아틀러스에 곧잘 따라붙는 ‘마니아틱’이란 수식어를 뗄 때가 된 듯하다. 핵심 소재가 오컬트라 좀 낯설 뿐이지 게임 플레이의 친절함, 편의성은 과거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만신창이로 아마라 심계 헤매다 마하무드온 얻어맞았을 때 진짜 개…임이 재미있다고 감탄하던 시절은 지났다. 소싯적 어두운 인상 탓에 아직 접한 적이 없다면 ‘진·여신전생5 벤전스’로 입문을 추천한다.

탐색뿐 아니라 전투, 육성, 교류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기능이 많다
무엇보다 용혈에 들르지 않아도 저장이 되는 건 오랜 팬으로서 충격

본편이 남긴 아쉬움에 대한 멋진 ‘벤전스'

금번 체험은 ‘복수의 여신’편 위주로 진행했지만 신규 악마와 편의기능 등 주요 변경점은 ‘창세의 여신’편서도 마찬가지다. 즉 이미 닌텐도 스위치로 본편을 즐겼더라도 다시금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한 셈. 엔딩 후 데이터 인계는 신생, 전생, 창생 세 가지 방식이 주어지며 특히 숨겨진 조건을 달성해야 열리는 창생의 경우 압도적인 강적이 등장한다. 그래도 데이터 인계 시 악마전서 및 합체 제한 해제는 물론이고 몇몇 동료 악마와 소지품, 카무이를 이어받으니 걱정하지 말자. 동일한 닌텐도 어카운트로 ‘진·여신전생5’를 플레이한 바 있다면 첫 회차부터 일부 동료 악마의 인계 및 클리어 루트에 따른 특전 수령이 가능하다.

요컨대 ‘진·여신전생5 벤전스’는 만족스러운 추가 요소와 개선 사항을 겸비했다. 본편서 지적된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더욱 강화하여 마침내 ‘진·여신전생’ 정식 넘버링 타이틀다운 완성도를 갖췄다. 최근 아틀러스의 방향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선보일 차기작이 어떤 모습일까 점쳐볼 좋은 단서이기도 하다. 참고로 6월 14일 한국어화 정식 발매를 앞두고 예약 판매가 진행 중인데, 총 54장 분량의 호화로운 악마 트럼프(W 5.8 x H 8.8 cm)가 특전으로 제공된다. 선착 구매 시 인게임 아이템 신단의 영옥과 붕괴주도 얻을 수 있으니 본작을 플레이할 요량이라면 서두르기 바란다.

이번에도 DLC가 있다. 주역은 ‘진·여신4F’서 존재감을 과시한 다그다
이번이 처음이라면 필구겠고, 본편 구매자라도 일단 추천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