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백인인가?

우리가 아는 추억의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발명품일 뿐, 안데르센 원작과는 꽤 다르다는 사실!

디즈니 르네상스의 첫 작품 [인어공주] (1989)

인어공주(2023), 흑인배우라 원작 훼손? 차별적 발상

우선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 바로 나왔던 반응들은 변명의 여지 없이 당연히 인종차별적이죠. 아주 간단하게만 생각해도 인어공주라는 환상의 존재를 백인으로 캐스팅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상이죠. 그건 전혀 피할 길이 없고요.

레게머리를 한 흑인 여배우라서 원작을 훼손했다고? 명백한 인종차별적 발상…! 사진 제공 디즈니, 인어공주, 2023.

한국이나 중국이 흑인이나 비백인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다 싫어하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블랙 팬서] (2018) 같은 경우도 흥행에서 성공했고, [알라딘] (2019) 같은 경우도 다 성공했거든요. 한국과 중국에서 실사판 [인어공주]에 관한 관객의 불만은 내가 추억하고 있는 그 버전을 엎어버렸다는 거거든요. 그 실망을 인종차별적으로 드러낸 셈이죠.

디즈니 영화 ‘블랙팬서’(2018)와 ‘알라딘’(2019)은 한국에서 각각 약 540만 명, 약 1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알라딘의 경우 미국, 일본에 이은 전 세계 3위의 흥행 성적.

추억의 원본? 디즈니의 해석(발명품)이었을 뿐

애초에 안데르센의 원전에서 디즈니화된 어떤 상상력을 발휘한 거라는 거죠. 지금 실사판 같은 경우도 또 다른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건데 그게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일종의 성서처럼 생각해서 벗어나면 안 되는 걸로 간주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전으로 삼는 게 하필이면 에리얼 공주는 젊은 백인 여성이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당연히 인종주의적인 발상이 당연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거죠.

해법? 원작을 계속 사람들이 찾아보면 되는 거예요. 원작을 찾아볼 수 있다면 다른 해석판은 얼마든지 나와도 된다는 거죠. 원작이 필요한 사람은 원작을 보면 되니까요.

자신이 살기 위해선 왕자를 죽여야 한다! 막내 인어공주를 돕기 위해 머리카락을 마녀에게 팔고, 그 대신 칼을 구해온 다섯 언니 공주들의 모습. 1899년 필라델피아 리핀코트 출판사에서 출간된 [안데르센의 요정 이야기] 중 헬런 스트라튼의 삽화. 이 삽화 역시 원본에 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출처: 뉴욕 공공도서관 사본, 퍼블릭 도메인, Helen Stratton – The fairy tales of Hans Christian Andersen (c1899) Philadelphia: Lippincott)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은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고, 애초에 더 실제 원작인 안데르센 동화도 인터넷 검색만 하면 원문을 다 볼 수가 있단 말이죠. 예를 들어 인어공주 캐릭터의 이미지라는 거는 원래는 장미 같은 피부의 요정에 가까운 이미지라고 원작에는 묘사가 돼 있단 말이죠. 즉, 원작 인어공주 이미지는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해석했던 빨강머리 백인 소녀 이미지도 아니거든요. 즉, 디즈니의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버전 역시 디즈니의 어떤 독특한 해석에 불과했단 말이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양성애자로 알려진 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특히 후원자 조나스 콜린의 아들이자 동성인 에드바르드 콜린(Edvard Collin)을 사랑했고, 콜린을 향한 애절한 사랑의 고백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애자인 콜린은 그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콜린과의 이룰 수 없는 관계가 ‘인어공주’의 줄거리에 반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인어공주는 푸케의 소설 ‘운디네’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설정을 차용하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공주가 여섯 명 있었는데 그중에서 막내가 가장 아름다웠다. 피부는 장미 꽃잎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으며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파란빛이었다. 하지만 다른 인어들처럼 발이 없었다. 몸 끝에 물고기의 꼬리가 달렸다.”
안데르센, ‘인어공주’, 1837., 김선희 번역, 2021. 중에서

원작은 원작대로 있는 거고, 거기에 대한 해석판이 있는 거고, 거기에 대한 또 다른 재해석이 또 하나 있는 거고요. 하지만 그 또 다른 재해석이 원래 원작뿐만 아니라 재해석했던 이전 판본을 또 참조하기도 하는 거고요. 그런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문화가 계속 발전하는 거죠.

이 글은 슬로우뉴스 민노 편집장이 김낙호 교수(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와 진행한 연재 인터뷰 코너 '캡콜드케이스'의 일부입니다.

Copyright © 슬로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