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과 약점 갈림길에서, 최지민·김호령

12일 SSG와의 개막전에 앞서 선전을 다짐하는 KIA 선수들. 겨우내 준비했던 것들을 점검하는 무대가 시작됐다. <KIA 타이거즈 제공>

150㎞가 넘는 묵직한 공을 구석구석 코너로 집어넣을 수 있는 투수. 빠른 발과 손으로 빈틈 없이 공을 낚아 채고 타석에서는 쉽게 담장을 넘기는 타자.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런 선수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춘 선수는 흔치 않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약점은 있다.

반대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지 않더라도 프로 선수라면 자신 있는 강점 하나는 있다.

강점과 약점,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

신인드래프트가 끝나고 난 뒤 각 구단은 자신들이 선택한 선수들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당연히 긍정의 언어만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해학의 민족 아닌가? 팬들은 장난스레 프로야구 신인 평가를 번역(?)한다.

프로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스피드가 늘 것이다 = 공이 많이 느리다

싸움닭 기질이 있고, 배짱이 두둑하다 = 구속이나 구위가 부족해서 정면 승부하다가 자주 맞는다

변화구 구사,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다 = 공이 느려서 기교로 버틴다

투구 폼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 앞으로 구속이 나오면 좋고 아닐 수도 있다

피지컬이 좋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 = 지금은 몸만 좋다

타격 메커니즘이 정립됐고 컨택 능력이 좋다 = 파워가 없다

수비가 범위가 넓고 발이 빠르다 = 방망이 실력은 묻지 마라

성실하고 훈련 태도가 좋다 = 실력이 나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 기본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강점과 약점이 적절하게 섞인 평가들.

선수들과 지도자에게는 딜레마다. 약점을 줄여야 할 것인가? 장점을 키워야 할 것인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최상이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각자의 성향과 장단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최고의 구위에도 그렇지 못한 제구를 가진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자.

엄청난 구위의 공도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지 않거나 타자들이 휘둘러 주지 않으면 그냥 돌이다.

그렇다고 제구를 잡겠다고 힘을 빼다 보면 스피드가 떨어지고 난타를 당하기도 한다. 매력 없는 투수다.

타석에서는 천하무적인데 글러브를 들고 있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오로지 타격만 강조하다 보면 타석에서 만들어내는 점수 이상으로 상대에게 점수를 주게 된다.

수비를 강조하다 보면, 타석에서도 머리가 복잡해져서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될 수 있다.

이래서 밸런스가 중요하다. 야구의 핵심은 밸런스다. 투구 밸런스, 타격 밸런스. 그리고 실력의 밸런스.

선수들은 강점에 집중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키워보기도 하고, 약점을 지우기 위한 보완책을 찾아 노력하기도 한다.

강점을 키우다가 약점을 줄이다가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답을 찾는 것 같다.

제구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변화를 준비한 KIA 좌완 최지민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김여울 기자

KIA 좌완 최지민도 장점과 단점 사이를 오가다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최지민 하면 ‘까다롭다’라는 단어가 우선 떠오른다. ‘루키’ 최지민이 처음 라이브 피칭을 했을 때 선배들은 ‘뭐야??’ 이런 반응이었다.

왼손을 최대한 오래 숨겨뒀다가 던지면서 갑자기 공이 보인다는 게 타자들의 설명이었다.

디셉션이 좋고 팔 스윙이 짧고 빨라서 최지민은 스프링캠프에서 부터 눈길을 끌었다.

신인드래프트 당시 KIA의 보도자료에 언급된 최지민을 찾아봤다.

‘186cm, 94kg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최지민은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이 발군인 좌완 투수로, 올해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강릉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고 시속 143km의 공을 던지는 최지민은 입단 후 체계적 지도를 받는다면 구속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되며, 구속 향상이 이뤄지면 선발 자원으로 손색없다는 평가다’

체계적인 지도가 통한 것 같다.

최지민은 150㎞를 던질 수 있는 필승조가 됐다.

구속과 함께 눈에 띄는 단어는 ‘제구력’이다.

스피드는 훌쩍 늘었는데 제구는 지금 최지민에게 가장 큰 고민이 됐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최지민은 2024시즌에는 KIA 우승 반지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시원시원한 최지민의 모습은 아니었다.

최지민은 53.1이닝을 던지면서 51개의 볼넷을 남겼다.

마음처럼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지 않자 존과 싸우는 것 같았다.

그 싸움의 결과, 볼넷은 늘고 최지민의 장점이었던 윽박지르는 공은 무뎌졌다.

팀의 불펜 상황도 녹록지 않다 보니 최지민의 위기는 곧 팀의 위기가 됐고, 나와 팀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난 시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막강 불펜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최지민과 정해영. /김여울 기자

올 시즌 어떤 성적표를 작성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즌 준비는 잘 이뤄졌다.

최지민은 ‘작은 변화’를 줬다. 투구판 밟는 위치의 변화다.

투수들은 투구판에 예민하다. 뭔가 잘 안 풀릴 때 투구판에서 답을 찾기도 한다.

최지민은 “원래 1루 쪽을 밟았다가 안 좋을 때 점점 3루로 옮겼다. 3루 쪽을 밟다가 다시 1루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제구 고민 끝에 발을 옮겼던 최지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공도 ‘하던 대로’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선배에게 질문을 하고 들은 답변은 “스트라이크 던지려고 살살 던지다 보면 더 안 될 수 있다”였다.

제구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원시원하게 최지민의 공을 던지면서 답을 찾기로 했다.

약점을 잡으려다 강점을 잊었던 최지민은 그렇게 균형을 잡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수비하는 김호령. /김여울 기자

강점과 약점을 이야기하면 우선 떠오르는 타자는 김호령이다.

무시무시한 타격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전설을 써 내려간 강타자들이 우선 떠오르는 무대에서, 김호령은 수비 하나만으로 이름을 알린 특별한 수비수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김호령은 그 어느 선수보다 멋진 스타트와 포구로 사람들의 눈을 정화시켰다.

누구도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공을 쫓아가 글러브로 낚아채는 순간에는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2016년 LG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때는 수비로 사람들을 울렸다.

9회말 1사 만루에서 김용의의 방망이가 움직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끝을 인정하던 그 순간, 김호령의 야구만 끝나지 않았다.

그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이런 기사를 썼다.

김호령은 2016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마지막 공을 잊을 수 없다. 많은 야구팬은 그 공을 향해 뛰어가던 김호령을 잊을 수 없다.

9회말 1사 만루에서 중견수 김호령을 넘어 날아가던 공은 KIA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러나 전진수비를 하고 있던 김호령은 뒤를 돌아 어느 때보다 빠르게 공을 향해 달려갔다.

선배 김주찬도 함께 전력으로 달려주었다.

그리고 어렵게 공을 낚아챈 김호령은 온몸을 던져 공을 던졌다.

혹시 모를 기적을 바라면서.

김호령은 “맞는 순간 알았다. 나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신 분들도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다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간절했다. 야구라는 게 혹시 모르는 것이다. 또 끝내기 상황에서 상대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어필할 수 있는 상황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며 마지막 공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바람과 달리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척으로 가는 꿈을 꾸던 김호령은 광주에서 12일을 맞았다.
수비로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김호령이 기대감을 갖게 하는 타자로 새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김여울 기자

수비 하나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던 김호령은 지난해는 타석도 호령했다.

연례행사처럼 “드디어 됐다”를 외치게 하던 빤짝 타격은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달랐다. 정말 ‘알아서’ 타격을 하는 모습이었다.

김호령은 타격의 정점에서 한탄을 했었다. 김기태 감독 등 자신을 지켜본 지도자들이 애타게 했던 말들을 진심으로 듣지 못했던 것을...

긴 시간을 돌고 돌아 김호령은 “그때 감독님 말 들었더라면”이라는 후회 속에 그때 이야기했던 타격을 하고 있다
.
극강 수비와 달리 김호령의 약점은 타격이었다. 하지만 타격이 약점이 아니라는 것을 안 지도자들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타격 능력을 엿봤지만 김호령은 그 재능을 제대로 끄집어 내지 못했다.

수비에만 집중됐던 시선 탓인지 타석에서는 작아졌던 김호령이 이제는 공격에서도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타자가 됐다.

매 순간 열심히 노력하고 달렸지만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던 타자 김호령이 드디어 방향을 잡았다.

타격은 김호령의 약점이 아니라 큰 장점 뒤에 가려져 있던, 그래서 놓치고 있던 장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약점과 강점은 경계가 없는 것도 같다.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 스피드는 강점이지만, 부상 위험을 높이는 약점이기도 하다.

경계를 나눠 약점과 강점을 따로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밸런스를 잡아가는 게 중요하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