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품 CPU 가치를 더욱 나락으로, 가짜 인텔 쿨러 등장
인텔이 PC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장에는 공식 유통사를 통해 판매 중인 '정품' CPU와 병행 수입품, 일명 비정품이 혼재되어왔다. 병행 수입품의 가격이 매력적인 시기도 있었지만 정품과 같은 수준으로 좁혀진지도 오래고, 그에 반해 제대로된 사후 지원을 보장할 수 없다보니 자연히 비정품을 구매할 메리트가 확 낮아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한때 PC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20만원 PC 같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야 하는 경우, 혹은 대량 구매하는 공공기관이나 기업 업무용, 학원 수업용 PC 같이 정품 여부보다 단가에 민감한 경우라면 비정품에 관심을 둘 수 있지만, 역시 불량 발생시 정품에 비해 번거로운건 여전하다.
아무튼, 이처럼 일부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비정품을 선택할 이유가 거의 사라진 현 상황에, 이러한 비정품의 가치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트릴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가짜 인텔 쿨러의 등장.
유통 경로만 다른 CPU, 미검증 업체서 만든 '가짜' 쿨러
인텔 CPU를 정품, 비정품으로 구분하긴 하지만, 어쨌든 CPU 자체는 인텔에서 제조한 동일한 제품이다. 어떤 제품을 사도 성능과 기능 자체는 동일한 품질이 보증된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가짜 쿨러는 말 그대로 '인텔'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정식 협력사가 아닌 정체 불명의 업체서 만든 '가짜' 쿨러라 당연히 냉각 성능이나 내구성, 지원 등 제품에 대한 품질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보다 대량 납품되는 조립 PC 업체를 겨냥해 무허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 번들 방식으로 판매되는 제품을 구매하는 DIY 유저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인텔 쿨러는 원칙적으로 가성비를 중시하는 Non-K 모델에 번들되는 특성상 이런 합본 판매 방식 제품 구매자 대부분이 Non-K 코어 i5나 코어 i3나 '인텔 CPU' 같은 메인스트림-엔트리급 제품 구매자일 가능성이 높다.
비용을 아끼려고 번들 제품을 샀는데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쿨러가 쓰였다?
작게는 과열로 인한 스로틀링에 CPU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현상부터, 크게는 CPU 고장 유발 가능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열'을 관리하는 쿨러의 품질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칫 CPU 뿐 아니라 메인보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이때는 메인보드도 정상적인 사후 지원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정품과 비정품이 구분되어 판매 중인 CPU와 달리, 불행히도 현재 시중에는 구매 단계에서 인텔 정품 쿨러와 가짜 인텔 쿨러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이라면 바로 확인하고 조치가 가능하지만 조립 PC를 대량 구매하는 경우 수량이 많은 만큼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다. 조립 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정품 CPU라도 조립 편의를 위해 미리 쿨러와 분리 보관하거나, 트레이/ 벌크 제품과 그를 위해 따로 구매해둔 인텔 쿨러가 섞일 경우, 따로 구매한 인텔 쿨러가 '가짜'라면 정품 CPU와 섞인 상태로 조립될 수 있기 때문.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나 착오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초기 불량을 제외한 문제는 보통 월 단위 이후 시간이 지나 발생하는데, 그때는 판매처와 구매자간의 책임 공방까지 발생할 수 있고, 자칫 소비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것이 가짜 쿨러다, 진짜 인텔 쿨러와 구별하기
현재 시장에 판매중인 인텔 쿨러는 대부분 1만원 이하에 팔리는 중이라 가짜를 생각하기에는 가격 자체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가짜 쿨러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큰데, LGA 1700 소켓용 Laminar RM1과 Laminar RS1의 가짜 쿨러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가짜 인텔 쿨러는 어떻게 생겼을까? 진짜 인텔 쿨러와 구별은 할 수 있을까?
다행히 매우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외형만 본다면 정품 쿨러와 가짜 쿨러는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쿨링팬 전원 케이블에 달린 라벨을 보면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품 쿨러의 경우 인텔 협력사(쿨러 마스터/ 니덱/ 폭스콘)가 표기되어 있는 것과 달리 가짜 쿨러는 제조국(MADE IN CHINA)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쉽게 확인 가능하지만 몇 가지 차이가 더 있다.
우선 인증 정보가 다르고, 라벨 반대쪽 'M'으로 시작되눈 문자에 가짜 인텔 쿨러는 '.'이 들어가지만, 정품 쿨러는 바로 숫자가 이어진다. 직접 비교하기 전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지만, 가짜 인텔 쿨러의 케이블 폭이 조금 더 두껍기도 하다.
쿨링팬 중앙에 새겨진 인텔(intel) 로고도 차이를 보인다.
정품 쿨러의 경우 모든 문자의 굵기가 동일하지만 가짜 인텔 쿨러는 'e'의 획이 다른 문자보다 얇고, 정품 쿨러는 하단에 등록 상표를 뜻하는 작은 원문자 Ⓡ이 새겨진 것과 달리 가짜 쿨러는 아무것도 없는 단순 마침표가 찍힌다.
쿨링팬을 써멀블록에 고정하는 나사도 차이가 있다.
정품 쿨러는 혹시 모를 진동을 확실히 잡고 더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긴 나사가 사용되었지만, 가짜 쿨러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짧은 나사가 사용된다. 어느쪽이 더 안정적일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겠다.
이처럼 외형으로도 진짜 인텔 정품 쿨러와 가짜 인텔 쿨러를 구별할 수 있지만, 쿨링팬 프레임을 분리하면 알 수 있는 가짜와 진짜의 차이가 또 있다.
사진 좌측이 Laminar RM1의 정품 쿨러, 우측이 가짜 쿨러다. 얼핏보면 동일하게 느낄 수 있지만 어딘가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중앙 구리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짜가 더 깊게 파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측 결과 윗면에서 중앙 심까지의 깊이는 정품이 0.71mm, 가품은 1.76mm다. Laminar RS1도 마찬가지로, 정품의 깊이는 0.42mm인데 비해 가품의 깊이는 0.81mm로 더 깊다.
진짜 인텔 쿨러에 비해 가짜 쿨러는 열버퍼가 부족해 그만큼 성능이 부족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가짜 쿨러는 RM1과 RS1 모두 12V 0.35A 스펙의 팬이 사용되었다. 정확한 스펙 정보를 알길이 없어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정품 쿨러는 RM1(쿨러마스터)에 12V 0.3A, RS1(니덱)이 12V 0.23A 팬이 쓰인 만큼, 팬의 기본 특성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가짜 인텔 쿨러 팬의 동작 속도가 더 빠르다.
가짜 인텔 쿨러가 팬을 더 빨리 돌리면 열 버퍼가 줄어든 만큼의 냉각 성능은 보완되겠지만 쿨링팬의 수명 단축과 소음 증가, 고장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고, 이는 CPU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 게다가, 방열판 자체의 크기를 줄인 가짜 인텔 쿨러의 팬 신뢰성, 방열판의 품질도 정품 쿨러에 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력 없는 비정품 CPU, 가짜 인텔 쿨러에 디메리트 증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말이 있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행복은 모든 요인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환경에서, 불행은 그 중 하나 혹은 다수가 어긋나며 발생한다고 보면 되겠다.
CPU 구매와 관련해 비유해 본다면, 비정품은 매력을 찾기 어려운 가격, 불확실한 서비스에 가짜 인텔 쿨러라는 복병까지 마주치며 불행한 PC 생활의 대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3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인텔 정품 쿨러와 달리, 가짜 쿨러는 제조/ 유통사도 불확실해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에 반해 문제가 생겼을 때 공식 유통사를 통해 빠르게 3년 간 무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서비스 기간 중 제품 단종시 차상위 모델로 교체, 정품 등록 이벤트, 3사 어느 곳에서나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행복한 PC 생활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조립 PC를 사더라도 정품 CPU를 선택했다면, 판매자가 의도치 않게 가짜 쿨러를 사용해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명확한 만큼 소비자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정품 CPU로 행복한 PC 생활을 이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