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은행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독주하는 사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2위권의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이 가파른 적립금 증가세를 시현하며 국민은행과의 적립금 격차를 400억원대로 좁히면서 초박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까지 본격화되자 은행권의 경쟁도 적립금 유치 규모에서 나아가 운용 역량과 수익률 경쟁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1분기 말 국민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49조3510억원, 하나은행은 49조3037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은행 간 격차는 473억원에 그쳤다. 2024년 말 1조7747억원이던 격차는 2025년 말 725억원으로 줄었고, 올 1분기에는 더 좁혀진 셈이다.
하나은행의 추격 속도는 증가액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나은행은 1분기 적립금이 9224억원 늘며 은행권 증가액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 증가액은 8972억원이었다. 절대 규모에서는 KB가 아직 근소하게 앞서지만, 증가 속도만 놓고 보면 하나은행이 더 가팔랐던 것이다.
퇴직연금 유형별로 보면 국민은행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기반이 두텁다. 1분기 말 국민은행의 IRP 적립금은 20조4053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41% 수준을 차지했다. 확정급여형(DB)은 12조6712억원, 확정기여형(DC)은 16조2745억원이다. 국민은행의 개인 고객 기반 연금 자산관리 역량이 뒷받침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익률도 강점으로 꼽힌다. 국민은행의 IRP 부문 1년 원리금비보장상품 수익률은 22.11%를 기록했다.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높고, 빅5 증권사와 비교해도 KB증권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하나은행은 전 영역이 고르게 늘었지만 특히 IRP와 DC 성장세가 가팔랐다. 1분기 말 하나은행의 IRP 적립금은 17조4142억원으로 2025년 말보다 1조1521억원 늘었고, DC 적립금도 13조5794억원으로 3205억원 증가했다.
DB 적립금은 18조3101억원으로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기업 고객 기반과 개인형 시장 확대가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은행의 강점은 비대면과 대면 채널을 함께 넓힌 연금 영업 전략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모바일 앱 '하나원큐'로 연금자산 관리,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일임, 카카오톡 기반 포트폴리오 제공 서비스, AI 연금투자 인출기 솔루션 등을 앞세워 적립 단계부터 인출 단계까지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연금 더드림 라운지', '움직이는 연금 더드림 라운지', 기업 임직원 대상 '하나 무빙클래스' 등 오프라인 상담 채널도 병행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에서 여전히 하나은행을 앞서고 있는 데다 IRP 중심의 자산관리 경쟁력과 상담 기반 노하우가 강점으로 꼽힌다. 고객 성향에 맞춰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뿐 아니라 글로벌 테마 ETF, 배당주 ETF 등 퇴직연금 운용에 필요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이번 1분기 적립금 규모가 54조7391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삼성생명(53조4763억원)을 제치고 금융권 전체 1위에 올라섰다. IRP적립금이 20조8633억원으로 20조원을 넘어섰고 DC형과 DB형도 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은행권 최다 수준인 242개 ETF 상품을 제공해 고객 선택 폭을 넓히고 안정적인 장기 수익률을 올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7월까지 '기금형 퇴직연금' 세부 설계안을 마련하고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연금 시장의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단순 적립금 유치 경쟁을 넘어 장기 수익률과 자산배분 역량, 가입자 관리 체계가 더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서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시장이 '규모 경쟁'에서 '운용 경쟁'으로 옮겨가면서 은행권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제도 세부 내용에 따라 영업 방식이나 운용 체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단정하기는 이른 상태"라며 "관련 법안이 마련될 경우를 대비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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