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의 여포' 기안84에게 닥친 또 한 번의 위기('음악일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예대상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가 프론트맨으로 나선 <태세계> 시리즈 또한 백상 예술대상 등에서 큰 평가를 받았지만 그 모든 영광의 꼭짓점에는 기안84가 있어야 했다. 러닝붐의 기폭제이며, 미술계의 새로운 스타이기도 한 그의 활약은 플랫폼의 변화와 융합, 그 안에서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예능신에 진정성이란 여전한 정답과 유튜브와 방송 예능의 결합이란 전기를 마련했다.
기안84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웹툰 작가에서 미술가로 주업을 바꾸고, MBC <나 혼자 산다>의 맹주로서 10년 가까이 관찰예능을 통해 시청자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는 늘 그 모습과 기대는 그대로였는데, 어느 순간 습곡작용을 받은 지층처럼 유튜브 예능과 방송 예능의 접점으로 솟아올랐다. <태세계> 시리즈 또한 엄청나게 새로운 콘텐츠, 패러다임을 바꾼 전환이라고 보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평범한 여행 예능의 틀을 갖고 있는데 그 출연자가 기안84라는 게 폭발력을 발휘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호감, 현지 친화적 어울림,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색다른 라이프스타일, 우연히 마주하는 좋은 사람 등 관광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특별한 여행 에피소드를 담은 여행 유튜브의 정서와 볼거리를 여행 예능에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다. <태세계> 시리즈는 크게 특이한 기획과 구성이 들어가지 않은, 어찌 보면 훨씬 간촐한 여행 예능임에도 새로운 시도와 특별한 볼거리로 평가되는 이유다. 여행 유튜브와 여행 예능을 모두 경험해본 시청자들에게 예능 속 인물을 여행 유튜버의 환경(혹은 세계)에 던져놓은 일종의 세계관 혼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욕설을 묵음 처리하는 정도 이외에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나 한혜진, 이시언, 빠니보틀 등과 함께하는 유튜브 콘텐츠에서의 모습이나 철저히 기획된 구성 안에서 플레이하는 <나 혼자 산다>에서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전혀 없다. 캐릭터의 진정성 하나로 별다른 기획이나 구성없이 리얼리티, 스토리텔링,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은 어차피 기안84에게는 늘 하던 일이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말하면 <태세계> 시리즈는 기안84의 캐릭터에 제목 그대로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스핀오프에다가 시즌4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볼거리를 그대로를 반복해서는 곤란한 시점이다. <태세계>와 기안84가 더 한 단계 높은 콘텐츠로 평가받고 롱런하기 위해서는 기안84가 찰떡같이 소화해주리라는 믿음으로 일단 높게 올리고 보는 한국 배구식 토스를 벗어나 기획 측면에서 새로운 작전이 필요한 순간이다.
기안84의 진정성은 캐릭터의 태도와 프로그램(에피소드)의 성격이 연동될 때 빛을 발한다. 그의 삶의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만큼이나 프로그램의 구성(출연진과 기획의도, 미션)이 단출할 때 그 진정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는 지난 백상에 함께 후보로 오른 예능 대가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유재석은 전 국민 누구와도 흥미로운 토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존이지만 프로그램을 함께할 팀을 구성할 땐 역할 분배가 확실한 수직계열화된 명확한 구도를 선호한다. 탁재훈은 이른바 함께 놀아줄 샌드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캐스팅에만 수개월 회의를 하고, 현지에서 몇 달 간 방송을 위해 사전 작업을 하는 나영석 사단의 꼼꼼한 프리 프로덕션은(촬영 전 사전 작업)은 전혀 필요 없다. 아니 필요 없음이 권장된다. 기안84는 가능하면 혼자 무언가를 수행할 때가 가장 빛나고 누가 옆에 오든 캐릭터 자체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스핀오프인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는 너무 방송적이다. 엄마의 말을 어겨가며 그토록 오래도록 품어온 가수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한 여정이란 '의미'는 오래도록 방송을 통해 기안84를 봐온 사람들에게조차 감응되지 않는다. 결혼식, 배 진수식 등 그간 계획 없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많은 웃음을 만들었던 파티 장면의 성공을 의식한 춤사위들은 초반 배치는 계산적이다. 특히나 브롱크스의 후드문화 체험이나 브루클린의 다양한 블록파티 경험은 이 시리즈의 장점을 깎아낸다. 방송이 아니면 과연 가능할까? 2화에서 유태오가 합류하기 전까지 말도 안 통하는데 무작정 찾아간 아프로 아메리칸 동네 한복판에서 힙합을 나눈다는 설정은 작위적이지 않으면 설명할 길이 없다.
현지와의 교류를 그 어떤 여행 유튜브 채널보다 기상천외하며 재밌게 담은 것이 지상파 예능 <태세계>만의 매력이다. 그런데 생존 영어부터 슬랭까지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데 흑인 후드 문화의 중심으로 찾아가 웃음과 문화를 담는 현지 교류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방송다운 설정이다. 그 '의도'마저 보인다. 맨해튼이 아닌 뉴욕의 라이프를 담는다. 유튜브 채널 희철리즘을 비롯해 국내외 여러 유튜버들이 관광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후드 체험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스핀오프에서 그려내는 방식도 그런 류의 콘텐츠와 비슷하다. 갱스터에 대해 새로운 면을 다루고 그들의 삶을 부정적 시선을 거두고 바라본다. 하지만 미국의 밤거리가 안전하지 않은 건 냉혹한 현실이다. 그들의 삶을 힙합, 웃음, 환대만으로 그려내는 건 현지 친화적인 게 아니라 너무나 정형된 그림이다.
최근 2~3년간 기안84의 급이 달라진 것은 그가 만드는 웃음의 방정식이 시대와 만났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혼재 속에서 예능 작법의 노하우가 무용해진 오늘날, 예능의 새 길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렇기에 작위적인 상황 속에 기안84를 데려다 놓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당연히 큰 틀의 키는 잡아줘야겠지만, 맨해튼 한복판에서 영어 한마디 못하는 상황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맨 것만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데, 다른 더 한 걸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아가 음원까지 발매했다. MBC 예능 특유의 음악 특집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의 잔상이 떠오른다. 노래에 대한 평가나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예전부터 봐온 그림이란 뜻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기안84의 자유로운 정신세계와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 여행 예능이 <태세계> 시리즈다. 기안84와 <태세계> 시리즈는 정상을 찍고, 숨고르기가 아니라 더욱 더 달릴 태세다. 궁금하긴 했다. 기안84는 자신의 유튜브, 친구들의 유튜브, 예능 방송을 통해 수년째 대거 노출되고 있고 그 빈도가 최근 대폭 늘었다. 아무리 방송가의 여포라고 해도 반복된 노출의 익숙함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갈 순 없다.
기안84는 <태세계>라는 시리즈를 가능하게 했고, <태세계>는 기안84의 입지와 영향력을 몇 단계 높였다. 한 명의 예능 팬으로써 이 운명 공동체가 익숙함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약을 함께 이루길 진심으로 바란다. 과연 이 시리즈의 진정성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그 핵심은 고생이 아니다. 여행 예능과 여행 유튜브 콘텐츠의 배합을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기획된 설정이 지금처럼 계속 늘어난다면 이는 과연 <나혼자 산다>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새로운 박수를 받을 준비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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