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유튜브 평균 누적 조회수 2.5억회를 자랑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3인방(레오제이·소윤·아랑)의 얼굴이 시선 닿는 곳마다 있다. 각자 ‘픽’한 화장품을 든 채로 옆에 ‘셀렉트스토어’라 쓰인 글자와 함께다. 글로벌 뷰티테일(뷰티+리테일) 기업을 지향하는 레페리가 준비한 광고판이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거대한 얼굴 앞에서 포즈를 취하느라 바빴다. ‘셀렉트스토어가 뭐길래?’ 호기심이 절로 그 안으로 발길을 인도했다.
7일 뷰티 업계에 따르면 셀렉트스토어는 크리에이터가 장기간 품평과 비교를 거쳐 선별한 뷰티 제품들로 구성된 공간이다. 제품 수나 매출보다 ‘신뢰와 납득 가능한 선택’을 우선시하는 철칙에 기반한다. 지난해 10월 성수 1회차를 시작으로 올해 3월 여의도 더현대 서울, 5월 성수 XYZ 서울(5월22일~6월1일)까지 3회차를 완주했다. 남은 스케줄도 촘촘하다. 내달 스타필드(삼성·하남·수원)와 9월 롯데월드몰, 10월 바다 건너 도쿄 오모테산도까지 여정이 이어진다.
레페리를 창업한 최인석(35) 의장은 브랜드의 신뢰도가 물리 공간에서 구체화된다고 믿는다. 셀렉트스토어에 들어서면 크리에이터와 소비자가 제품을 매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그와 조직원들이 치열히 공간을 고민하고 설계한 결과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최 의장은 ‘K뷰티의 셀렉션 스탠다드’를 정립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뷰티 편집숍을 넘은 셀렉트숍의 개념. 아직은 낯설다. 그에게 레페리의 본질과 지향점을 물었다.

-레페리가 선보이는 셀렉트스토어란 무엇인가.
△ ‘셀렉트스토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브랜드 제품을 ‘셀렉트’하고, 그 이유를 콘텐츠와 공간으로 풀어낸 신개념 뷰티 리테일 프로젝트다. 단순한 팝업스토어나 큐레이션 공간이 아니라, ‘왜 이 제품을 소개해야 하는가’에 대한 크리에이터의 기준과 브랜드의 진심이 함께 드러나는 공간이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추천’과 ‘판매’의 중간 지점에서 책임감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 셀렉트스토어를 왜 가야 할까. 차별점이 궁금하다.
△ 화장품은 개체수가 범람하고 있고, 품질도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이 ‘진짜 우수한 제품’이고 ‘내가 믿고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인기순이나 판매순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 즉 수많은 제품을 써본 크리에이터, 나와 유사한 피부나 취향을 지닌 크리에이터가 선택해 준 제품에 더 큰 신뢰를 갖는다.
셀렉트스토어는 그렇게 선별된 제품만을 소수 정예로 소개한다. 그 결과 공간은 더 정제되고 여유롭게 구성되는데 이는 애플스토어의 방식과 닮아 있다. 소수의 제품만으로도 수많은 고객이 유입되고, 제품 체험, 브랜딩, 콘텐츠 소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셀렉트스토어의 방향 설정부터 오픈까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
△ 셀렉트스토어는 단순히 브랜드를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셀렉터의 실제 품평과 철학을 기반으로 ‘레거시(기존 상위 제품)’, ‘뉴니스(신제품 중심)’, ‘리디스커버리(재발견 기반)’로 구분해 셀렉션을 구성한다. 이후 선정된 제품 리스트에 한해 브랜드와의 입점 협의를 진행한다. 우리는 할인 유도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그에 합당한 마케팅 콘텐츠와 온오프라인 캠페인으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스토어의 기획, 공간 설계, 콘텐츠 제작, 가이드북 출간까지 모두 레페리가 직접 수행한다. 매 회차마다 셀렉션 가이드북을 발행해 뷰티 업계 내에서 셀렉트스토어가 하나의 권위 있는 인증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브랜드가 한국에서의 참여만으로도 세계적인 시선과 수출 기회를 함께 얻게 되는 ‘뷰티 산업의 모델하우스 플랫폼’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셀렉트스토어는 경험 중심의 공간 설계가 특징이다. 자회사 알렉스디자인의 공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 팬데믹 이후 ‘플래그십·팝업·VMD(비주얼머천다이징)’ 등 오프라인 실전 노하우와 뷰티·라이프스타일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2023년 인테리어 전문 업체 알렉스디자인을 인수한 배경이다. 알렉스디자인은 뷰티 브랜드 플래그십 경험은 없었지만, 상업 공간 및 오피스 공간 등에 뛰어난 감각과 설계 능력을 지닌 팀이었다. 레페리와 함께 뷰티 특화 공간 디자인을 진행하며 공동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후 알렉스디자인은 성수, 여의도 등 주요 회차의 공간 기획을 전담하며 크리에이터와 브랜드, 소비자가 함께 몰입할 수 있는 오프라인 경험을 완성해 냈다.
-레페리와 알렉스디자인을 통해 어떤 사업적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나.
△ 레페리는 뷰티 크리에이터와 브랜드의 콘텐츠 마케팅 역량을 갖고 있고, 알렉스디자인은 감각적인 공간 설계와 구현에 강점이 있다. 이 두 축이 결합되며 단순한 디스플레이나 팝업을 넘어, 실제 소비자가 설득력 있게 브랜드와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뷰티 제품을 가장 편안하고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단순히 매장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성과 피부 타입, 체험의 순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흐름과 결합된 유니크한 ‘뷰티 공간 UX’를 고안하고 있다.
-셀렉트스토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 우리는 셀렉트스토어가 단지 제품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뷰티 CES’처럼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트렌드를 교류하고 수출 및 문화적 파급력을 이끌어내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셀렉트스토어는 오히려 한국보다 글로벌에서 더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 최인석으로서 10년 뒤 모습은.
△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습관과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단순히 뷰티와 크리에이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 산업 안의 한계와 문제를 꼭 해결해 주고 싶다는 책임감 아래 일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누가 하라고 시킨 일도 아니고, 지금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산업 안의 모순, 한계, 불균형을 계속해서 해소하고 싶고 더 나은 구조를 만들고 싶다.
이런 태도는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 10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내가 속한 산업에서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존재들이 탄생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기를 바란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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