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자가 아파트 빼면 빈털터리”... 70대 독거남의 비극
불행한 말년 맞이하지 않으려면
[왕개미연구소]
“평생 혼자 살면서 뼈빠지게 일해 모은 돈으로 장만한 첫 집이다. 내 전부인데 먹고 살기 힘들다고 팔 수는 없다.”(70대 깡통 할아버지)
부산에 사는 70대 이모씨는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깡통 할아버지’로 불렸다. 공과금 낼 돈이 없어 전기, 가스, 수도를 하나도 쓰지 않는 바람에 궁핍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음식은 깡통에 불을 붙여 데워 먹고, 밤에는 촛불을 켜고 살고 있어서 화재가 날까 두렵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할아버지는 30년 동안 혼자 살아 온 독거노인이었다.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집에서 촛불과 난로에 의지하며 사회와 단절된 고립된 삶을 이어왔다. 최소한의 의식주만 유지하면서 끼니도 달걀 몇 개를 구워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어서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했다. 집 외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극심한 빈곤 상태였지만, 그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이 자가(自家)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재개발 열풍이 불면서 시가 8억원을 넘긴 고가의 아파트였다.
✅비현실적이어서 거짓말 같지만 실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의 신고로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 사회복지사는 “아파트를 팔아서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궁색해도 나의 전부인 이 집은 팔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오랜 시간 쌓아온 추억과 정체성의 일부였던 셈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들이 이웃돕기 성품이라도 들어오면 먼저 챙겨주고,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의 돌봄만 받았다.
사회복지사 신아현씨는 최근 펴낸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에서 할아버지와 사회복지사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묘사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집안은 낮이라 전기가 끊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환했다...대문이 열리고 누군가 고개를 내미는데, 내민 얼굴에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너무 깡말라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몰골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수년째 빨지 않은 듯 시커멓고,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어 한눈에 봐도 심각한 위기 가구였다.”
✅인생 말년에 더 중요한 현금 흐름
할아버지는 겉으로 보면 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소유한 어르신이었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궁핍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집은 자산으로 존재했지만, 금융 자산이 부족해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다.
은퇴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금융자산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소득이 끊기는 노년기에 오히려 금융자산 비중이 낮아지면서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들의 금융자산 비중은 총 자산의 약 2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반면 일본 등 선진국 고령자들은 현금·연금·저축과 같은 금융자산 비중이 60%를 넘어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외롭게 살던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사회 복지 최전선에 고군분투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끈질기게 구제하려고 애썼다. 신아현씨는 그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근처로 갈 일이 있어 할아버지 집을 들렀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가 싱크대 앞에 누워 계시는 것이 아닌가! 불길한 예감에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할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119에 신고했고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사망한 상태였다. 검시 결과 나온 사망 추정 시간은 며칠 전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입고 있던 더럽고 구멍 난 옷이 아니라 우리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있었다.”
결국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책임진 건 사회복지사들이었다. 아파트를 팔아서 현금을 손에 쥐었다면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다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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