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밤이 이렇게 뒤집힐 줄 누가 알았을까. 4점 차 리드를 틀어쥔 한화가 한국시리즈 문턱까지 다가갔다고 생각한 순간, 라팍 전광판에선 이름 셋이 계속 번쩍였다. 김.영.웅. 사자군단이 그토록 기다리던 ‘미친 선수’가 진짜로 나타났고, 경기의 기류는 그 한 방, 아니 두 방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6회말 1사 1·3루, 불리한 카운트 0-2. 김서현의 공이 생각보다 빨랐고, 첫 두 구에 타이밍이 꼬였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했다는 김영웅은 “그래도 직구로 또 올 것 같았다”며 낮은 코스를 기다렸다. 그다음은 모두가 봤다. 시속 153㎞가 홈런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였고, 비거리는 127m였다. 4-4 동점, 라팍이 흔들렸다. 그리고 7회, 한승혁의 초구 직구를 또다시 통타해 우중간 담장 밖으로. 연타석 3점포, 6타점. 한화가 두 경기 동안 힘겹게 쌓은 기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삼성은 7-4로 시리즈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이 경기를 풀 스토리로 쓴다면 앞부분엔 정우주라는 루키의 이름이 분명 들어가야 한다. 3과 1/3이닝 무실점. 어린 오른팔이 라팍의 초반 열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공을 던졌다. 한화는 그 위에 문현빈의 타점, 그리고 5회 쏘아 올린 우월 3점포까지 얹었다. 원태인을 상대로 4-0이라면, 보통의 밤엔 ‘이겼다’ 쪽에 손이 더 많이 올라갔을 점수다. 김범수가 4회 불을 잘 껐다. 박상원이 5회를 막았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벤치의 플랜이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을은 늘 ‘다음 한 수’를 요구한다. 6회를 앞두고 한화 더그아웃이 고른 카드는 좌타 라인을 겨냥한 좌완 황준서였다. 계산은 맞았으나 결과가 어긋났다. 김지찬 3루타, 김성윤 볼넷, 구자욱 적시타. 한 박자만 늦어도 경기의 추는 엇박자를 탄다.
한화의 다음 선택은 더 무거웠다. 마무리 김서현의 조기 투입. 올 시즌 33세이브로 팀의 2위 도약을 받쳐 준 주전 마감 카드, 그러나 후반기와 포스트시즌 들어 흔들림이 있었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구단이 ‘살려야 하는 선수’와 ‘지금 당장 이겨야 하는 경기’ 사이에서 겪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호출이었다. 첫 타자 디아즈를 땅볼로 묶었을 땐 좋아 보였다. 그런데 다음이 김영웅이었다. 2스트라이크를 잡고도 직구 승부를 택했고, 낮게 집어넣은 공이지만 바깥쪽 라인에서 배트 끝이 정확히 살아나왔다. 그게 라팍 우측 스탠드 최상단까지 꽂힌 동점 스리런이었다. 거기서 이미 분위기는 넘어갔다. 이재현과 강민호에게 연속 볼넷이 나왔고, 겨우 끊어낸 이닝 뒤엔 7회 또다시 김영웅의 초구 스리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진만 감독이 “선수, 지도자 생활 통틀어 오늘 같은 짜릿함은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경기장은 흥분으로 달궈졌다. 라인업을 돌리며 호흡을 가다듬던 삼성 더그아웃도, 벤치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박 감독도 그 순간만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대쪽, 김경문 감독의 표정은 무거웠다. 경기 뒤 “감독이 잘못한 경기”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디테일을 길게 늘어놓진 않았지만, 운영 쪽에서 아쉬움이 남았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한 셈이다. 무엇보다 팬들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한 장면은 하나였을 것이다. “폰세와 와이스는 어디 갔나.” 한화는 전날 문동주를 2이닝 카드로 과감하게 써서 3차전을 잡았다. 4차전도 “총력전”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갔다. 실제로 폰세와 와이스는 더그아웃에서 출발해 6회부터 불펜으로 이동했다. 다만 그 시점이 너무 늦었다. 선발 루틴을 타는 외국인 투수를 6회에 급하게 풀어 7회부터 붙이겠다는 계획이면, 6회 선발 카드가 흔들릴 때 즉시 끊고 들어갈 ‘브릿지’가 더 강력했어야 한다. 김범수를 4회에 쓴 게 결과적으론 아쉬움이 됐다. 4-0에서 ‘경기 끝내기’를 생각했다면 6회 초반부터 폰세에게 2이닝, 와이스에게 1이닝을 맞물리는 변형 운용도 가능했다. 다 결과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단기전은 결과가 곧 정답표가 된다. 85% 이상의 승리 확률을 안고도 뒤집힌 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을 향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5차전 마무리는 김서현.” 표면적으로는 단호하다. 여기엔 두 가지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시리즈까지 길게 봐야 한다는 시각. 김서현 없이 올라가면 결국 다음 시리즈에서 손발이 묶인다. 둘째, 내부 사기. 마무리를 외면하는 순간 덕아웃 공기는 얼어붙는다. 감독이 선수의 실패를 덮어주고 다시 기회를 준다는 신호를 보내는 건 단기전에서도 유효하다. 단, 그 믿음이 팀 전체의 승리에 우선할 순 없다. 5차전은 시즌을 걸어야 하는 날이다. ‘마무리 고정’이 아니라 ‘경기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폰세 선발 예고, 삼성은 최원태. 승부는 예측 불가지만, 불펜 운용의 원칙만큼은 더 유연해져야 한다. 김서현을 다시 쓰겠다면, 그에게 맞는 매칭과 시나리오를 만들어줘야 한다. 주자의 유형, 타순의 구성, 카운트 잡는 방식까지 세밀하게. 그리고 만약 또다시 상황이 꼬이면, 망설임 없이 다음 조합을 눌러야 한다. 그게 단기전의 냉정함이다.

삼성 쪽에선 김태훈의 조용한 3안타도 빛났다. 1, 2차전부터 계속 흐름을 잇고 있다. 원태인이 흔들렸을 때도 타선은 고개를 들었다. 6회 구자욱의 적시타가 불씨였고, 김영웅이 들고 온 토치가 경기의 색을 바꿨다. 박진만 감독이 5차전 선발로 다시 최원태를 꺼내든 것도 일관의 연장선이다. “김서현이 나오기 전에 끝냈으면 좋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 멘트엔 자신감과 여유가 함께 묻어났다. 실제로 삼성은 이번 시리즈 내내 한화의 원투펀치, 폰세와 와이스를 공략했다. 폰세에게 6실점, 와이스에게 5실점. 그 기억은 5차전 초구부터 타자들의 방망이를 가볍게 해준다.

다시 대전으로 간다. 이틀 숨 고르고 서는 마지막 한 판, 문장은 간단하다. 한화는 ‘흔들리는 마무리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삼성은 ‘뜨거운 허리’의 열기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 한화 입장에선 초반이 중요하다. 폰세의 1회, 2회가 깔리면 벤치의 계산도 명료해진다. 6회 이전에 브릿지를 결정하고, 8회 이후엔 가장 뜨거운 팔을 고른다. 이름보다 상태가 기준이 돼야 한다. 삼성은 반대로 초장에 끈끈하게 들러붙어 투구 수를 늘려야 한다. 최원태가 2차전처럼 스트라이크존을 촘촘히 쓰면, 삼성은 또 한 번 ‘가을의 리듬’을 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수 싸움의 위에, 결국은 또 하나의 이름이 떠다닐 것이다. 김영웅. “야구 인생 최고 순간”을 본 이 청년이 사흘 뒤에도 같은 반짝임을 내보일지, 아니면 한화가 그에게 다른 퍼즐을 내밀지. 가을은 늘 한 사람의 저녁을 빼앗아가고, 다른 사람의 밤을 환하게 만든다. 4차전은 김영웅의 밤이었다. 5차전은 누가 주인공일까. 정답은, 그 순간마다 더 빠르고 더 과감한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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