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 서울 잠실구장.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남았습니다.
LG 트윈스 2루수 신민재가 kt위즈 1번 타자 배정대가 타격한 공을 잡아낸 뒤 두 팔을 번쩍 듭니다. 29년만의 우승. LG트윈스가 무려 29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쥡니다.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LG 팬들은 유광점퍼를 둘러입고 LG를 외칩니다.
29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LG트윈스 선수단.
선수와 감독, 프런트의 혼연일체와 팬들의 간절한 염원이담긴 29년만의 결실. 이 아름다운 말 뒤에 숨겨진 LG의 우승 비법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 야구’입니다.
돈이 곧 성적이 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이제는 완벽하게 안착하는 분위기인 ‘스포츠+테크’가 바로 우승의 여러 공신 중 하나입니다.
최전성기 타격폼을 3D로 저장...야구는 ‘데이터’
지난해 초 LG트윈스는 스타트업 에스에스티컴퍼니(SSTC)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회사는 정밀분석 모션센서 장비와 분석 시스템을 보유한 스포츠 테크 전문기업인데요. LG는 이곳에서 ‘스포츠과학 3D 동작분석 서비스’를 제공받기로 했죠.
이 회사의 ‘SSTC 모션 Analysis 솔루션’을 통해 선수들의 투구폼과 타격폼을 3D로 저장합니다. 이후 각 동작의 개선점을 파악해 선수가 부상 없이 개인의 운동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죠.
LG트윈스 투수가 SSTC 시스템을 활용해 구속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SSTC>
특히 선수들이 최전성기라고 하던 때의 투구폼과 타격폼도 3D로 저장합니다. 특정 선수가 슬럼프가 왔을 때, 이전의 폼과 지금의 폼을 서로 분석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죠. 선수별 맞춤형 특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SSTC는 LG트윈스 이외에도 지난해 KT위즈와도 계약을 맺었고요. 올해는 NC다이노스와도 계약했습니다. NC는 “SSTC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선수별 맞춤형 관리, 훈련 효율성 제고 등에 활용해 선수들의 장기적인 성장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죠. 선수 특징별로 데이터를 축척해 부상 방지와 슬럼프 극복 등에도 활용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화이글스 투수 김서현 선수가 고등학생 시절 SSTC 시스템을 활용해 투구를 분석한 모습. <사진=SSTC>
데이터 야구. 이른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라는 표현을 야구팬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야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연구 방법론이죠. 야구 데이터를 수학·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개념을 통칭합니다.
영화 ‘머니볼(2011)’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를 도입한 MLB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진=머니볼 캡쳐>
야구 작가이자 통계학자인 빌 제임스가 만든 연구방법론인데요. 캔자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빌 제임스는 1980년대부터 통계로 야구를 분석하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정립했습니다. 이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영화 ‘머니볼’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역)이 세이버메트릭스를 처음으로 전면 도입했죠.
라이브스트리밍 기술 도입한 NC다이노스...흥하는 데이터야구
데이터야구, 즉 세이버메트릭스는 테크 기술의 발달로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선수의 심리가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니 과학의 도입은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는 차원입니다. 마치 로보어드바이저로 주가의 향방을 늘 예측해 수익률을 높이고자 하지만, 탐욕과 불안이라는 인간의 심리가 개입된 주식 시장의 예측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NC다이노스의 자체 정보시스템 플랫폼 ‘D-라커’를 통해 영상 분석을 하고 있는 신영우 선수. <사진=NC다이노스>
여하튼, NC다이노스는 올해 선수단 육성 시스템 강화를 위해 NC 퓨처스팀 선수들이 훈련하는 마산야구장에 ‘4D리플레이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4D리플레이 카메라 26대(그라운드 18대, 불펜 8대)를 설치한 뒤 다양한 각도에서 경기와 훈련 영상을 촬영해왔죠.
퓨처스리그의 홈경기와 훈련 모습을 PC와 모바일을 이용해 볼수 있는데 무려 5가지 각도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죠.
촬영한 영상은 투구, 타격, 수비, 주루 등 파트별로 편집한 이후 NC의 선수단 정보시스템인 ‘D-라커(D-Locker)’에 업로드 돼 선수단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게 결국 훈련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눈에 띄게 잘하는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도 쉽게 볼 수 있는 셈이죠.
D-라커는 이미 2020년에 NC다이노스가 우승을 하면서 유명세를 탄 바 있습니다. 구단의 모기업인 엔씨소프트가 2013년 개발한 야구 전력 분석 시스템인데요. 이 플랫폼 위에 특정 상황과 경기별 영상 등 데이터가 축적돼 선수들 개개인이 자신의 수치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는 겁니다.
NC다이노스의 데이터야구 플랫폼 ‘D라커’ 화면. <사진=NC다이노스>
일례로,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NC 좌완 김영규는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한 선수로 알려져있습니다. 투구할 때 팔을 조금 올리거나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볼의 회전수나 시속·종속의 차이를 숫자로 확인했죠. 자신에게 가장 맞는 투구폼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아직 영건임에도 호투를 멈추지 않는 계기가 됐습니다.
KBO 구단들만 활발한 것은 아닙니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오타니 쇼헤이는 훈련할 때 팔꿈치에 검은색 밴드를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팔꿈치에 ‘펄스 스로’를 착용한 오타니 선수. <사진=닛칸스포츠, 스포니치>
‘펄스 스로’라 불리는 웨어러블 기기로, 팔꿈치에 부하가 얼마나 전해지는지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2018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오타니는 이 장비 덕에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절하며 연습량을 늘렸고요. 현재는 MLB 3년 연속 MVP 최종 후보의 성적을 내고 있죠.
분데스리가에 도입된 ‘아마존’의 기술...슈팅스피드도 측정
축구에서도 전자성능추적시스템(EPTS)을 도입해 선수의 신체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냅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포루투칼과의 조별리그 경기서 역전골을 넣은뒤 유니폼을 벗은 황희찬(울버햄프턴) 선수 덕에 한번 더 주목받게 됐습니다. 황희찬 선수가 입고 있는 검은색 조끼가 손흥민(토트넘) 선수의 안면보호대같다는 인터넷 짤들이 돌았는데, 실제로는 이 조끼 안에 EPTS가 들어있었죠.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 황희찬 , 손흥민 선수와 관련한 패러디물. <사진=온라인커뮤니티>
독일 축구리그(분데스리가)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기술이 적용됩니다. 분데스리가는 2019~2020시즌부터 AWS의 기술에 기반한 ‘분데스리가 매치 팩트(Match Facts)’ 솔루션을 도입해 선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죠. 경기 곳곳에 전 세계 1위 클라우드 플랫폼 AWS의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고성능컴퓨팅 등 차세대 혁신 기술이 숨어있는 겁니다.
분데스리가 매치팩트 솔루션 화면.
매치 팩트의 주요 분석 데이터는 ‘주요 공격구역’ ‘평균 포지션 트렌드’ ‘기대득점’ 등이 있습니다. ‘주요 공격구역’ 수치는 각 팀이 좌측, 우측 측면, 중원 등 어느 구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을 수행하는지 보여줍니다. 또, 선수들의 평균 위치를 보여주는 ‘애버리지 포지션’ 분석을 통해 선수 교체나 전술 변화가 전체 경기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죠. 경기 스토리가 훨씬 풍부해지는 겁니다.
“해리케인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쏜 골이 들어갈 확률은 6%도 되지 않았는데요. 역시 EPL 득점왕출신 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골 넣는 확률을 분석하는 ‘기대득점’ 수치는 감독과 선수가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도구로 전해집니다. 데이터에 기반해 경기와 팀, 선수를 분석하게 되면 리그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높아지게 되고, 결국 팬들이 경기를 즐기는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분데스리가 중계 화면 상단에 ‘슛스피드’가 표시돼있다. <사진=분데스리가>
최근에는 이 분석 툴에 ’슈팅 스피드‘도 포함됐죠. 슛이 시작될때부터 공이 최고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공의 위치 데이터를 평가해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것인데요. “축구 해설자가 시속 100km(시속 62마일) 이상의 빠른 슛이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등 멘트를 하기에도 용이해지죠.
시장조사업체 마켓US에 따르면 지난해 159억달러 규모였던 세계 스포츠 테크 시장은 연평균 18%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2032년에는 792억달러, 한화로 100조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제 테크 없는 스포츠의 시대는 상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스포츠에서 강조하던 ’투혼‘도 데이터에 근거해 펼쳐져야 진정한 ’투혼‘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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